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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점검 나왔습니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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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가스 점검 나왔습니다


정진화/ 공공운수노조 예스코도시가스분회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동네에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친구들은 가스 점검원이라고 했습니다. 친구들이 일하는 것과 우리 집에 온 예스코 가스 점검원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도 일을 하고 싶었는데, 너무 하고 싶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친구 다니는 회사에 이력서를 냈습니다. 이력서를 내고서 기다리고 있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가 와서 기쁜 마음으로 처음 회사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가스 검침 주소를 찾아서 고지서 송달, 집 안에 들어가서 가스레인지와 보일러 점검을 하고 고객에게 설명을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첫날 첫 집에 가서 “가스 점검원입니다. 가스 점검 나왔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고객이 계셔서 점검을 하려고 집에 들어갔는데, 많은 고객분들이 현관문을 잠그셔서 많이 두렵고 놀랐습니다(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됐지만요).

 

평일 낮에는 사람 없는 빈집이 많아 토요일, 일요일까지도 일하고 밤 10시에도 고객이 오라고 하면 갔습니다. 애기 아빠 오토바이를 타고 가서 점검하고 애기 아빠는 밖에서 저를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코로나가 번지던 무렵에는 고객들이 노마스크로 나와서 “저 자가격리예요.” 하시면서 침을 섞어 말씀하시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저희는 이렇게 코로나 때문에 가끔 무섭습니다. 문도 안 열어 주시고요.

 

정진화 씨가 서울 성북구 주택가에서 도시가스 계량기를 보며 검침하고 있다. 사진 제공_ 공공운수노조 예스코도시가스분회

 

처음에 입사했을 때 저의 점검 개수는 5203개(여섯 달 기준)였어요. 업무 강도도 세고 월급은 100만 원도 안 되는 금액이었어요. 그래서 그만두어야지 하고 있을 때 2017년도에 민주노총에서 박원순 시장 간담회가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무슨 얘기 하는지 궁금해서 동료들과 간담회에 들어갔다가 우리 일이 다른 데보다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도시가스센터는 3800개를 하는데 그것도 많다고 불평하는 것이었습니다. 간담회가 끝나고 사장님이 저희에게 한 사람씩 전화하여 간담회에 갔냐고 물어봤습니다. 나중에는 제일 오래된 언니를 자르겠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잘릴 거 노조 들어서 해 보자고 해서 노조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민주노총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분회장도 하고 있고, 저희 점검 개수도 4796개로 줄이게 되었습니다. 월급도 이제는 많이 올라서 200만 원이 조금 넘습니다. 밤에 고객 집을 방문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지난 5월 3일 노조 단합 대회에 함께 한 조합원들. 사진 제공_ 공공운수노조 예스코도시가스분회

 

하지만, 세대 점검만이 아닌, 가스 검침 집집마다 4796개 계량기를 보고 숫자를 입력해야 합니다. 고지서 송달할 때는 하루 종일 무거운 배낭을 메고 주소를 보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하루에 2만 보는 기본으로 다닙니다. 족저근막염을 아예 달고 삽니다. 한번은 계량기만 보고 검침하다가 정화조에 떨어져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고, 담을 타고 올라가서 계량기를 보다가 떨어져서 다리가 골절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검침하러 가면 골목에 바퀴벌레도 죽어 있고 고양이 사체도 나와서 깜짝 놀랍니다.

 

회사에서는 점검률 85퍼센트를 달성하라고 심적 압박을 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빈집들이 많아서 달성하기 힘듭니다. 또 작년까지만 해도 서울시에서 7~9월 무더위가 심하다고 검침을 아예 하지 말라는 주문이 내려와서 안 했는데 올해는 하라고 해서 당황했습니다. 저희 노조는 일부만 검침을 했는데 회사의 첫 번째 징계는 견책이었습니다. 두 번째 징계에서는 월급 감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의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점검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는 게 정말 좋습니다. 점검하면서 어머님들 만나서 얘기하고 커피 마시고 가라고 하시거나 점검 와서 너무 감사하다고 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할 것이고 노조 활동하면서 제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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