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읽기

나는 대한민국 국적 외국인 노동자

월간 작은책

view : 6111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나는 대한민국 국적 외국인 노동자

김기선/ 영어회화전문강사

 

 파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침. 잠그고 간 것 같은데 서랍 열쇠가 그대로 꽂혀 있다. 몇 년 전 같으면 누가 내 서류를 훔쳐 가기라도 한 것처럼 놀랐을 텐데 이제 안 그러는구나 알아차렸다. 내가 일터에서 이룬 것은 자기 발전이 아니라 불안에서 조금 더 벗어나는 것이었다. 12년이 흘렀다. 나의 검은 머리도 허옇게 변했다. 온갖 피케팅, 수많은 집회, 선전전, 소복 시위, 세종시 교과부와 광화문 상경 투쟁…. 정말 가정이 무너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모진 목숨을 스스로 내놓지 못하는 것과 같다. 정말 그럴까 했는데 딱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을 확인하는 긴 시간이었다.


 충북의 영어회화전문강사(이하 영전강)들은 12월 8일 충북도 교육청에서 무기한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내년에 폐교되는 괴산 목도고등학교에서 12년간 일한 영전강을 다른 학교로 이전 배치해 달라고 지난봄부터 요구했으나 교육청이 끝내 거부했기 때문이다.

 와중에도 교육청은 ‘한국은 왜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는가’라는 세미나를 열었다. 그들도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있으니 다행인가. 영전강은 출근하여 소통 메신저를 여는 순간부터 불평등에 마주한다. 무슨 연수, 무슨 시상, 무슨 보너스….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소식들이 올라온다. 상시지속 업무이지만 4년마다 퇴직금을 정산 받으며 해고 절차를 진행한다. 학교 회계직들이 교육공무직이라는 이름을 얻고 고용안정을 이루는 동안 영전강은 ‘초중등 교육법 42조 시행령’이라는 헌법의 기본권에도 어긋나는 조항에 묶여 꼼짝하지 못했다. 내 나라에 살지만 외국인 노동자 같았고, 폭력을 당하면서도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는 심정이었다. 바보스럽다는 자책도 들었지만 노동자에게 해고는 그만큼 무섭고 위협적이다.

 어떤 직업은 일생 단 한 번 합격으로 퇴직 후까지도 보장된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는 30년 경력의 유리공도 저 높은 다리에서 떨어져 죽는다. 30년의 땀과 자부심은 권력자의 취향과 판단, 재미에 따라서 한순간에 부서진다. 영전강의 12년 땀과 자부심, 총명함은 자책과 죄의식으로 굳어 버렸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왜 저항하기보다 무기력에 빠지는지 영전강들은 누구보다 잘 안다. 학교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는 이견을 말하기 쉽지 않다. 선생이라는 직업의 굴레도 마음의 병을 키웠다. 감정노동자에게 불안을 주고 나 몰라라 하는 격이었다. 폐교 문제 외에도 내년 4년 만기 해고 대상자 56명은 하루하루 불안하여 가르치기에 집중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영전강들은 교육청 점거에 나섰다. 교육의 본질은 자존감이고 자존감을 지켜 내야만 교육이 시작될 수 있다. 구부정한 자세로 아이들에게 당당함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 안의 학생은 교육시키지만 비정규직의 자식은 교육청은 모른다고 한다. 교육기관이기는 하지만 영전강이 어떤 비교육적 상황에 놓여도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괴산 목도고등학교 이건희 선생님은 지난 5월경 교육청으로부터 다른 학교로 이전 배치해 준다는 말을 듣고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말을 바꾸었다. 무기계약이 될 가능성이 있어서 안 된다고 한다. 죽을 곳이니 가지 말라는 게 아니라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곳이니 보내지 못한다고 했다. 미래의 일을 문제 삼아 안 된다고 했다. 원어민에게는 재계약을 하면 고맙다고 약 200만 원을 준다. 이것은 외세에 굽신하고 자국의 노동자들을 거지로 아는 식민의 잔재이다.

 교육청 직원들은 마치 인공지능 로봇처럼 움직인다. 인간의 온기 있는 판단은 하려고 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소중한 가정과 월급을 반납하며 주장 한마디를 해 보려고 파업을 하며 싸우는 중에도 그들은 안 된다는 말을 반복한다. 2010년 영전강 시작할 당시에 비해 별반 오르지 않은 임금은 이제 최저시급 수준이 되었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은 언감생심이고 교육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너무 다른 삶이다.

 폐교로 인해 해고되는 이건희 선생님을 나는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분의 카톡 사진에 어린 자녀가 있는 것을 보았다. 만난 적 없는 그 아이들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엄마가 해고된다면 그 한숨이 아이들에게 전해지지 않을 리 없다. 8년 전 내가 해고당할 때 나는 이성을 잃었다. 나의 폭언을 듣고 그길로 뛰쳐나가 버린 큰아이가 나는 두고두고 목에 가시처럼 걸리곤 했다. 나의 아픔보다 내 아이를 아프게 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사실 나에게 스승이다. 아이들은 나에게 지치지 않고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슬픈 일을 얼른 잊고 밝게 웃으라고 일러주었다.

 최근 충북에는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의붓아버지의 성폭행에 중학생 딸과 딸의 친구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 몇 년 전에는 청주CJB방송국에서 14년간 일하던 비정규직 PD가 해고당한 후 목숨을 끊었다. 이들은 살아생전에도 기나긴 고통을 호소하였다. 나는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자신을 긍정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라고 가르치고 싶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바득바득 대들라고 가르치고 싶다.

 우리는 가끔 이런 경험을 한다. 내 상황이 너무 부당하여 집에서 부르르 화가 났다가 교장선생님이나 교육청 앞에서 한없이 주눅 들던 경험. 이것은 나의 문제를, 집에서는 ‘나’로 봤다가 권력자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타인의 시선’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나는 영전강의 문제를 영전강의 시선으로 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던 영전강들이 자발적으로 역할을 나누어 지고 투쟁에 나섰다. 지난 12월 10일 농성장은 연대하러 온 동지들로 잔칫집처럼 북적였다. 매일 출퇴근 선전전을 하는 영전강의 가족들도 밤샘 농성장에 달려오고 피켓 시위 옆자리를 지켜 주러 왔다. 서로 돕는 즐거움을 가르쳐 준 일터를 나는 사랑한다. 투쟁의 목표가 승리만이 전부는 아니다. 혼자 해고되게 두고 싶지 않다. 누구라도 손잡아 준다면 해고되어도 덜 외롭지 않을까. 가족과 일터는 물리적 목숨처럼 소중하다. 우리 손으로 뽑은 선출직 교육감은 해고를 막아야 할 책임이 있다.

지난 12월 8일 충북 영어회화전문강사들은 충북도교육청을 점거, 밤샘 농성을 했다. 사진 제공_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충북지부

 

 “여러분이 포기한 권리는 어딘가에 쌓여 누군가의 흉기가 됩니다. 아이들에게 돌아가면 아동폭력이 됩니다. 단 1의 권리도 양보하지 마십시오. 그래야만 내가 떨어질 수도 있는 사회 안전 그물망이 팽팽해집니다.”

 나는 집회에서 세상에 태어나 가장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다가 스친 생각입니다. 물이 쓰레기 안에 있다고 해서 물이 아닌 게 아닙니다. H2O는 어디에 있어도 H2O입니다. 증발하여 날아오르고 내려와 다시 커다란 강물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있어도 여러분입니다. 우리의 상처는 우리를 오염시킬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소중한 일자리를 지켜 내야 이 지옥 같은 경쟁도 줄어들 것이다. 고시에 합격하지 않아도 헌법이 보장한 국민 기본권은 누릴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싶다.

 나는 싸운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 영어회화전문강사는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전국에 6300명 선발하여 배치했으나 현재 2천여 명 남음. 2017년 대전고등법원이 영전강 무기계약 인정. 국가인권위원회는 영전강 무기계약 전환 권고. 최근 대법원에서 교육감이 사용자임을 인정.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자동입력방지 스팸방지를 위해 위쪽에 보이는 보안코드를 입력해주세요.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세요.

창닫기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