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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도 불평등한 이 세상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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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햇살도 불평등한 이 세상

표광소/ 경비노동자

 

바람이 분다. 가로수가 흔들리고 나뭇잎이 날린다. 낙엽이 쌓인다. 깊은 밤 폭우가 쏟아진다. 갑자기 쏟아진 비가 하수구로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찻길에 물이 고이고 있다. 아파트 정문으로 빗물이 밀려든다. 우산을 쓰고 정문 밖으로 나선다. 하수구 빗물받이를 낙엽이 막고 있다. 낙엽들을 걷어 내지 않으면 빗물이 찻길에 점점 더 차오를 것 같다. 아파트 정문의 차량 차단기 아래 빗물받이 1개, 정문 밖 오른쪽 빗물받이 1개, 왼쪽 빗물받이 1개에 쌓인 낙엽을 걷어 낸다. 한 손에 우산을 들고, 한 손으로 빗물받이 3개의 낙엽을 치우고 있을 때 환경미화원 한 분이 나타난다. 한눈에 상황을 알아보고, 그분은 찻길 건너편 빗물받이에 쌓인 낙엽을 걷어 내기 시작한다. 정문 차단기를 넘어 아파트로 들던 빗물이 천천히 빠진다.

이런 일도 아파트 경비원의 업무일까? 사건·사고가 많은 위험 사회에서 아파트 주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경비원의 업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아파트 경비원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웃 어르신이 추천한 덕이다. 마포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그분의 소개로 2020년 8월에 경비원 기본 교육을 수료(경기대학교)한 나는, 그해 가을부터 여의도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한다. 자전거를 타면 집에서 일터까지 50여 분 거리.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선다. 서울 자전거(따릉이)를 타고 경의선 숲길·마포대교·여의도공원 등을 경유한다. 6시 20분경 관리실에서 출근을 체크하고 휴게실로 간다. 휴게실 냉장고에 도시락 반찬(1식 5찬)을 넣고, 도시락의 잡곡밥을 보온 밥솥에 옮긴다. 근무복을 입고 7시 20분에 근무 교대를 한다. 출근 체크와 근무 교대 사이 1시간은 휴게실에서 주로 책을 읽는다.

 

추석 하루 전날 첫 출근을 시작하여 추석 연휴에 근무했는데, 휴일수당이 없다. 왜 그러냐고 선임자에게 질문하자, 경비업은 ‘감시·단속적’ 노동이기 때문이란다. 퇴근 후 경비원 교육을 받을 때 쓴 노트를 찾아본다. ‘경비는 전문지식·힘든 노동·기술 등이 필수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감시·단속적’ 노동이라는 메모가 있다. 강의실에서 교육을 받을 때 얼핏 한 번 듣고 지나간 그 ‘감시·단속적’이라는 말을 현장에서 직접 겪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근로기준법을 찾아본다. 근로기준법 제63조(적용의 제외)를 읽고 읽고 읽는다.

경비업 종사자들의 노동이 ‘근로기준법’에서 소외된 현실을 확인하며 놀란다. 이럴 수가! 인구의 70퍼센트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에서 경비원들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합법적으로) 받지 못하고 있다.

 

나는 정문에서 24시간(격일제) 근무를 한다. 하루 종일 정문의 차량 차단기를 바라본다. 방문 차량 운전자에게 인터폰으로 “몇 동 몇 호 가십니까? 휴대폰 번호는 어떻게 되세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주차장 지하 3층에 주차해 주세요.”라고 묻고 수기로 기록하고 안내한다. (방문 차량을 단 1대도 누락시키지 말고 100퍼센트 기록하라는 업무 지시를 서면으로 받았다.) 똑같은 말을 한 사람이 하루에 100~200번 남짓 반복한다. 이런 동어반복을 하루 이틀 사흘 나흘도 아니고, 1주일 2주일 3주일 4주일도 아니고, 한 달 두 달 석 달 넉 달도 아니고, 1년 넘게(1년 6개월 넘게) 계속하며 언제부터였을까 자존감은 떨어지고 자괴감이 뼛속 깊이 배어든다.

 

2014년 11월 분신 항거해 사망한 경비노동자 고 이만수 씨. 고인은 압구정 신현대 아파트 입주민들의 갑질에 시달렸다. 사진 제공_ 노동과세계

 

수면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점심과 저녁 밥때는 밥 먹느라고 잠을 못 잔다. 낮 휴게 시간(14:00~15:45)에는 쪽잠 1시간 안팎. 그렇게 쉬며 밤까지 근무하고, 밤 휴게 시간(22:00~02:00)의 최대 수면 시간은 길어야 3시간 안팎. 심야 시간(02:00)부터 아침(07:20)까지 근무할 때 의식은 가수면 상태·깨어 있는 상태를 오락가락한다. 특히 새벽 3~5시에 근무할 때는 짙은 안개에 갇힌 듯 눈앞이 몽롱하다. 새벽 6시경에 겨우 의식이 돌아온다. 이런 근무를 오래 반복하면서 건강을 스스로 챙기지 못하면 한순간에 몸이 훅 갈 수밖에 없다. 

 

퇴근길은 졸리고, 배고프고, 춥다. 첫 출근하고 처음 얼마 동안 퇴근해 집에 도착하자마자 허기를 달래려고 폭식을 하고 곧바로 눕는다. 눕자마자 잠이 든다. 밤잠을 놓치고 아침에 든 잠은 오후까지 이어진다. 하루의 해가 폭식과 수면으로 저문다. 다음 날 새벽 출근 걱정에 밤늦도록 무엇을 도모할 엄두조차 못 낸다. 이런 양태의 24시간(격일제) 근무는 ‘48시간 근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퇴근 후 폭식·음주와 낮잠이 무한 반복되면 그야말로 ‘건강하지 못한’ 삶이 되겠다고 각성하며 대안을 궁리한다. 내가 생각한 대안은 지역의 경비노동자 모임 출석하기, 노동조합 활동하기,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기, 역사 공부 세미나 참여하기, 술 마시지 않기, 텃밭 도시농부 되기 등이다. 

2021년 10월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감시단속직 해제 촉구를 요구하는 규탄 집회를 열고 있는 경비노동자들. 사진 제공_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가족 건강을 지키려고 아내는 평소에 자연식 밥상을 연구하는 등 식단에 신경을 많이 쓴다. 경비원으로 출근하는 나에게 잡곡밥 도시락을 준비하고, 텃밭 농사로 키운 채소로 만든 반찬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서대문구의 경비원 모임에서 뵌 한 어르신은 24시간 근무 후 퇴근길에 한국영상자료원(마포구 상암동)에 들러 영화 감상하기·길거리 투어 등을 하신다. 다른 한 어르신은 퇴근길에 장애인 집에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하신다.

 

경비업 종사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24시간(격일제) 근무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고용불안이다. 갑(아파트 주민)과 을(경비업체)이 1년 또는 2년마다 계약을 하고, 경비원들은 갑과 을의 ‘갑질’과 ‘을질’에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만 60세 이상의 사람한테는 ‘촉탁’이라는 단기 계약서를 일방적으로 제시한다. 6개월 계약은 예사고, 1개월 계약도 한다. 오죽하면 경비원들이 근로 계약을 ‘파리 목숨 계약’ 또는 ‘파리 계약’이라고 하랴. 

 

내가 근무하는 아파트의 정문 초소에는, 겨울에 볕이 한 뼘도 안 들고, 여름에는 볕이 너무 잘 든다. 여름 햇살이 얼마나 잘 드는지 뜨겁고 무더워서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기 힘들다. 여름은 양지, 겨울은 음지의 추운 정문에서 근무하고 퇴근하는 하루는, 졸리고 배고프고 추운 겨울 길에 아파트 창으로 쨍 드는 햇살이 어찌나 찬란하고 따뜻한지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햇살도 불평등한 이 세상, 입주민들한테는 저렇게 따뜻한 햇살이 경비원들한테는 어떻게 한 뼘도 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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