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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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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엄쉬엄 가요

독립영화 이야기_ 고영재 감독의 <아치의 노래, 정태춘>

 

노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류미례/ 독립영화 감독

 

이번 달 소개할 영화는 <아치의 노래, 정태춘>입니다. 지난 5월 18일에 극장개봉했고 지금은 공동체 상영을 진행 중입니다. 변산에 있는 안건모 선생님이 변산공동체 상영 문의를 하셨고 같이 알아보다 보니 <작은책> 독자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어졌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가수 정태춘의 40년 노래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1978년 대중가수로 데뷔해서 투사이자 거리의 가수로 사람들과 함께했던 가수 정태춘의 노래 인생이 영화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40년간 자신의 길을 걸어온 노장 예술가의 사상과 음악을 담았다.

 

‘동시대인’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다른 자리에 서 있었지만 같이 지나왔던 시간. 고영재 감독은 그의 생애를 찬찬히 훑어 주는데, <시인의 마을>로 1978년에 데뷔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잠깐 비춰 주는 방송 화면 속 목소리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은 것에 또 놀랍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 접어들자 저의 기억이 하나씩 불려 옵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의 선율 위에 깔리는 고 김귀정 열사의 휘장 그림,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의 행렬, 행렬들. 그 화면들 뒤에서 정태춘 님이 말합니다.

 

“더 직설적인 표현, 더 사실적인 표현, 더 강력한 단어들, 그리고 거침없는 분노들, 이런 것들을 담아내야 되겠다, 하고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노래들이 나오기 시작했지.”

 

그 새로운 노래들이 모인 곳이 《아, 대한민국》입니다. 그 안에 담긴 <일어나라 열사여>, <우리들의 죽음> 같은 노래들을 저는 20대에 집회 현장에서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잊고 있었던 기억들, 아니 마음 깊숙이 묻어 두고 다시 꺼내지 않던 시간들. ‘20대에 나는 거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부끄러워했습니다. 그 시절을 밑천으로 정치꾼이 되어 버린 선배들이 부끄러웠고 ‘민중운동의 선봉대’라는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뭐라도 된 듯 떠들었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일상의 고단함에 몸을 맡긴 채 그 일상의 고단함 속에서도 빛나는 실천을 이루어 내는 평범한 사람들을 존경하며, 한편으로는 과거 투쟁의 경력들을 밑천 삼아 한자리를 차지하거나,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들을 멀리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만 만들어질 수 있고 그래서 말이나 글로 살아가는 것보다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에는 그렇게 묻어 버리기에는 아까운 저의 시간이 담겨 있었습니다.

 

예술가가 주인공인 영화는 영화를 보는 동안 그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아, 대한민국》은 대중음악 역사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 음반입니다. 정태춘 님은 삶의 반려이자 음악적 동지인 박은옥 님과 함께 이 음반을 계기로 ‘음반및비디오물에관한법률(이하 음비법)’에 맞서 투쟁을 시작합니다. 그 당시에는 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윤)의 심의를 통과한 음반만 유통될 수 있었습니다. 《아, 대한민국》에 실린 여러 노래들이 공윤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는데 특히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 화재로 죽은 지하 셋방 남매의 사연을 담은 <우리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런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가정의 부주의가 우선된 불행한 사태를 굳이 이념적 사회문제로 결부한 것은 대중가요로서 부적당하므로 전면 개작 바람.”

 

정태춘·박은옥 님은 사전심의제에 항의하는 뜻으로 두 장의 음반을 심의를 받지 않고 시중에 배포시켰고 이로 인해 형사입건되기도 합니다. 음비법에 대한 정면 도전인 거지요. 이후 두 사람은 ‘음비법은 위헌이다’라는 소를 제기해서 1996년 11월 ‘음반 사전심의는 명백한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받아 냅니다. 강헌 음악평론가는 이 두 사람의 노력 덕분에 현재의 한류가 가능했다고 평가합니다. 작가들의 상상력은 족쇄 없이 자유로워야 함을 두 사람은 몸으로 보여 준 것이지요. 1997년 6월, 60년 만에 창작의 자유를 누리게 된 음악인들이 사전심의제 폐지를 기념하는 공연을 엽니다. 이름도 ‘자유’라 붙여져서 사흘 동안 펼쳐졌던 이 축제에 정태춘·박은옥 님은 사흘 내내 출연해서 자리를 빛냈습니다. 저는 그때 민족예술인총연합에서 소식지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그 순간을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정태춘·박은옥 님 두 분 덕분에 60년 동안 지속되었던 음반 사전심의제가 철폐되었고 음악인들은 제한 없는 창작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정태춘 님을 공연장 밖에서 직접 만난 건 평택에서였어요. 정태춘 님의 고향은 평택시 팽성읍 도두리입니다. 정부는 미군기지를 이전하려고 팽성읍 도두2리, 대추리 주민들의 토지를 강제수용하겠다 나섰고 자신의 땅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는 주민들은 시민단체들과 함께 오래 싸웠습니다. 푸른영상 감독들도 거기 살며 촬영을 했는데 ‘여명의 황새울’이라는 이름의 2006년 5월 4일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푸른영상 식구들이 다 대추리에 갔거든요. 그때 거기서 정태춘 님을 보았어요. 대학 때 저희 과에 정태춘 님의 조카가 있었는데 그 애 얘기를 하며 괜히 말 걸어 보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사소한 기억으로 말하기에는 그 시간은 너무 참혹했지요. 새벽부터 진행됐던 행정대집행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멍을 남겼습니다. 하얀 천으로 서로의 몸을 묶고 저항하던 사람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끌려갑니다. 정태춘 님도 그렇게 끌려갑니다. 목에 하얀 천을 둘둘 감은 채. 그리고 자막이 뜹니다.

 

‘정태춘은 그 후 오랫동안 노래 만들기를 접었다.’

 

평택에서 겪은 폭력의 경험이 내면의 뭔가를 망가뜨렸던 걸까요. 평택에 오래 머물렀던 저희 푸른영상 동료들도 많이 힘들어하다 휴직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새롭게 곡을 쓰고 관객을 만나며 조금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가수 정태춘의 세계를 영화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이 반가운 것은 그 침묵이 깨지는 순간을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정태춘·박은옥 님의 데뷔 40주년 기념 콘서트가 준비되는 과정에서 고영재 감독은 기획사 대표로부터 ‘두 분의 음악 인생을 담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이 소중한 영화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현재 공동체 상영 진행 중입니다. 노래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들을 선사하는 이 소중한 영화를 소중한 분들과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문의: 박채은 프로듀서 teachoondoc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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