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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교사도 레벨 업을 한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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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온 소식

 


보육교사도 레벨 업을 한다

 

이현림/ 만렙으로 가는 보육교사

 


공식 경력(경력증명서상) 16년 차의 보육교사 정도 되면, 산전수전 공중전에 인생 만사 무념무상 득도의 경지에까지 이른다고 한다. 2023년 3월이면 내 경력증명서에는 16년하고도 0개월의 시간이 새겨진다. 신입 교사 시절과 지금 나의 교사 생활을 돌아보자니, 보육교사도 돌봄의 기술이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성장하더라. 교사의 발달단계를 영유아 발달단계처럼 나누어 보자면,

 

 

0개월~1년 미만(기저귀 앞뒤도 모르는 시기)

“서… 선생님! 기저귀 앞이 어디예요? 선생님! 팬티요, 그림이 앞이에요?”

기본적인 기저귀부터 속옷의 방향까지, 아이 옷의 태그는 껄끄러움을 배려하여 겉부분에 위치한다는 것을 알 리가 있을까?(나도 4년 차에 알았다. 맨날 뒤집어 입혀서 미안해.)

“선생님! 약을 어떻게 먹여야 해요? 아이가 입을 안 열어요.” “선생님, 아이들 물건이 모조리 섞였어요. 뭐가 누군 건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이 어머님께 △△이 어머님이라고 했어요. 순간 어머님 표정이 찡그려졌는데, 사과 전화 드려야 할까요? 원장님께 섭섭하다 전화하면 어떻게 해요.”

“선생님… ○○이가 왜 우는지 진짜 진짜 모르겠어요. 온갖 걸 다 해 줬는데 그냥 울어요.”

이때는 교사도 울고 아이도 얼싸안고 운다.

“선생님, ○○이 엄마는 너무 무서워요. 맨날 원장님한테 전화하고, 원장님은 저를 호출하고…. 하… 제가 일을 정말 못하는 걸까요? 이 직업이 안 맞나 봐요. 그만두고 싶어요.”

화장실, 창고를 오가며 눈물로 1년을 채웠다.

신입 교사는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존재를 몰랐던 자식을 당장 오늘부터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이현림 씨가 어린이집에서 아동을 돌보고 있다. 사진 제공_ 이현림

 

1~3년 차(교육 프로그램이 짱이야 능력이야! 시기)

“선생님, ○○ 프로그램 진짜 좋은 것 같아요. 아이들도 집중하고요! 부모님들도 아이들 많이 배운다고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린이집에서 알려 준 노래, 율동을 집에서도 한다고 해요. 역시 영유아 프로그램 신상 나오면 배우러 가야겠어요. 근데 ○○이는 집중 못 하고 마구 돌아다녀요. 제 옆에 자리를 두고 같이 앉아 있게 하면 학대인가요? 다른 친구들은 방해된다고 난리예요. 맨날 ○○이 돌아다닌다고 말해요.”

“다른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집중 잘하는데 ○○이는 왜 자꾸 돌아다닐까요? 산만한 것 같아요. 머리가 아파요.”

“그리고 저 올해만 여기 다니고 다른 어린이집 알아보려고요. 이직하려면 호봉 낮을 때 하라고 하더라고요. 호봉 높아지면 취업 안 된다고요. 시립은 좋은가요? 월급 제대로 나온다면서요. 서류가 많다는 이야긴 들었어요.”

 

4~6년 차(교육 프로그램 ‘그까이 꺼 중요한 거 아니다’라는 연륜이 쌓이기 시작하거나 보육 현실에 식겁하고 도망가는 시기)

“선생님, 수업은 쉬운데 가정 조력이 너무 힘들어요. 아이가 왜 힘들어하는지 알겠는데, 부모에게 욕을 먹지 않고 이야기하는 방법이 있나요? 아이를 위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우리가 부모야. 네가 뭘 알아? 우리 ○○이 미워해서 그렇게 보는 거잖아.’라는 피드백이 와요. 그냥 모르는 체하고 아무 말 안 하면 그런 소리 안 듣잖아요. 부모하고 상호작용하는 게 너무 무서워요. 무조건 어린이집이 재미없어서, 선생님이 미운 표정을 지어서, 친구들이 안 놀아 줘서라고, 자꾸 원인이 저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시니 말을 못 하겠어요. 자존감도 떨어지고요. 원장님은 ○○이 부모님 보시기에 제가 ○○이 안 이뻐하는 것 같고, 다른 아이에 비해 잘 안 놀아 준다 생각이 드니까 부모님 입장에선 당연히 그런 소리를 하는 거라고 이야기하시는데, 너무 속상해요.”

 

실외 활동을 하는 어린이집 아이들. 사진 제공_ 이현림

 

7년 차 이상(아이 관찰의 내공이 탄탄한 현장의 ‘오은영’들)

“선생님, 저 요즘 다른 자격증 알아봐요, 다른 직업도 알아보고 있고요. 원장님도 제가 호봉 높다고 원 운영 어렵다 매일 이야기하시면서, 군식구처럼 대하시고. 아이가 이사로 퇴소하게 되면, ‘이사 가더라도 선생님이 좋으면 남아 있을 아이였어.’라고 하시네요. 아이들하고 있으면 너무너무 행복한데, 아동학대 사건 터지면 그냥 부모들도 마을 사람들도 저를 아동학대자처럼 보는 시선도 부담스럽고, 아동학대는 집에서 더 하는 것 같은 부모를 마주하는 것도 정신적으로 힘들고요. 제가 교사임에도 아이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게 너무 슬퍼요. 그리고, 아이 보호하다 제가 오히려 다칠까 몸 사리는 제 자신도 싫고요. 원장님에게 이야기해 봐도, 우리는 프로가 아니니 토 달지 말고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해 주라고, 아이의 마음이 뭐가 중요하냐고 해요. 아이가 퇴소 권한이 있는 게 아니라면서 결국 부모 눈에 드는 게 최고이고, 그런 교사가 능력 있는 거라고요.”

“선생님, 진짜, 그런가요? 삶을 공유하고, 전 아이들하고만 마주하는데, 잠시 보는 부모님들만 신경 쓰고, ○○이 아무 문제 없다 하면서 부모 마음 안심시켜 주면 되는 건가요? 그럼 ○○이는요? 부모랑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지금 어린이집은 정말 불가능이네요. 진짜요.”

 

이렇게 신입부터 시작한 교사들은 매년, 교사의 고민을 잔뜩 안은 채 부모와 다르지 않게 양육의 스킬이 성장한다. 다만, 교사의 성장은 수년 동안 같은 연령대를 경험함으로써 다수의 돌봄에 특화된 ‘연륜’이란 것이 생긴다.

이 연륜이 있어야만 아이의 다른 점이 다각도로 보이기 시작하고, 진심 어린 양육의 조언을 뱉을 수 있다. 연륜이 많은 선생님들이 현장에 많으면 많을수록 아이들은 척하면 딱 해 주는 선생님의 소통 중재로 속 시원한 소통을 경험하며 행복해할 것이다. 내 아이인데 멘탈 붕괴를 시작한 초짜 부모에게 여유 있게 웃으며 “부모님, 많이 당황하셨어요? 심호흡하시고 저를 전적으로 믿어 보세요.” 말하고 가정에서도 순한 맛으로 양육할 수 있도록 양육 스킬들을 서로 공감하고 교류하며, 교육 광고에서 홍보하는 우리 아이만의 맞춤 돌봄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해서 보육 현장에 7년 차 이상 된 현장의 ‘오은영’들이 호봉이 높아 운영비를 갉아먹는다는 취급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나라에서 임금을 보장하고, 아이를 위한 쓴소리를 부모나 원장에게 하기 위해 교사 자격증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보호 장치, 공익 제보에도 아이들 곁에 남아 교사로서 정년 퇴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마지막으로 원 방침이라는 사유로 교사에게 입 막고, 귀 막고 눈 감으라는 원장 중심의 소통 시스템 말고, 교사의 감각으로 가정과 소통할 수 있는 교사 중심의 정책이 열린다면 32만의 각각 다른 성을 가진 ‘은영’ 교사들이 굽어 있는 날개를 펴고 아이들을 위해 신명 나게 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 부모들은 자라나는 선생님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시길, 만약 희귀한 연륜 있는 교사를 만나게 되거들랑, 그들의 손을 잡고 “선생님이 제 아이의 어린이집에 계셔 주셔서 너무 다행입니다.”라고 이야기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그 말 한마디가 어쩌면 현장을 떠나려던 교사들을 돌아오게 하는 계기일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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