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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지키는 의사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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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지키는 의사노조

 

김종명/ 성남시의료원 의사노동조합 위원장

 


의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도대체 왜? 궁금하고 생소할 것이다. 우리 사회 최고의 전문직 중 하나이고 고액 연봉으로 알려진 의사들이 모여 노동조합을 만들다니. 노동조합은 근로자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보호하고 향상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가 있다. 이는 헌법적 권리다. 그렇더라도 의사들은 고액 연봉자라 웬만해선 노동조합을 결성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의사노동조합이 5개 정도 있다. 종합병원 수가 400여 개이므로 의사노동조합은 매우 드물게 존재한다. 가장 먼저 만든 게 동남권원자력병원이다. 의사 한 명이 병원의 비리 의혹을 제기하였는데, 사측은 해당 의사를 일방으로 해고하였고, 이를 부당하게 여긴 의사들이 노동조합으로 뭉쳐 저항했다. 중앙보훈병원 의사노동조합도 꽤나 초기에 만들어졌다. 보훈병원 특성상 타 의료기관보다 의사들의 노동 강도가 세고 근로조건은 역대급으로 열악한 게 이유였다. 그 외 의대 교수들 노조도 있고, 진료교수 의사노동조합도 있다. 모두 병원의 비리를 드러내거나 부당하고 열악한 근로조건의 개선을 요구하고자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성남시의료원도 지난해 4월에 의사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당시 원장은 의사들의 근로조건을 대폭 후퇴시키는 근로계약 변경을 일방적으로 강요했다. 의사들의 반발이 매우 컸다. 동시에 원장의 고압산소 비리 의혹도 제기되었다. 원장은 공공의료기관의 경영자인데도, 개인의 수명을 늘리고자 의료기관의 시설을 사적으로 유용했다. 명백한 비리였다. 그런데도 원장은 오히려 비리 의혹을 제기한 의사를 문제 많은 의사로 몰아붙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의사들이 반발하고 의료원을 퇴사하는 선택을 했지만, 남아 있는 의사들 중 일부는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대항하고자 하였다. 개개인의 반발로는 원장과 싸우기가 어려웠다. 원장의 계약 변경을 받아들이거나, 그게 싫다면 병원을 그만두는 선택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동조합을 구성하면 조직적 대응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 노동조합으로 뭉치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으므로, 부당한 불이익 강요에 대응이 가능했고 원장의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뜻이 맞는 6명이 모여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노동조합 가입을 독려했다. 현재는 의사직 63명 중 32명의 가입으로 과반을 확보한 상태이다. 아직 많은 의사들은 의사노동조합이 생소하다 보니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가입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 정상화를 요구하며 병원 내 1인시위를 하는 김종명 위원장(위)과 조합원(아래). 사진 제공_ 성남시의료원의사노동조합

 

 

의사노동조합을 결성한 직후 사측과 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해야 했다. 그래야, 사측의 부당한 근로조건 변경을 문제 삼고 원상회복을 요구할 수 있었다. 의사노동조합은 의사직만 가입 가능한 노동조합이므로, 다른 대표 교섭 노조와 분리하여 독자적인 교섭권을 확보해야 했다. 우리는 지역 노동위원회에 분리 교섭권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를 하였고, 지역 노동위원회는 우리의 요구를 인정했다. 원장은 불복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항소했다. 거기에서도 우리가 승리했다.

 

동시에 우리는 원장의 비리 의혹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면서 대응했다. 시에는 감사를 요청하였고, 노동조합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자료도 제출하였다. 시민단체는 원장을 배임과 의료법 위반, 생명윤리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최종적으로 경찰은 생명윤리법 위반으로 판단하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시로부터 무능, 리더십 부재로 질타받고 있던 원장은 결국 사직을 선택하였다.

 

우리는 현재 사측과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임단협을 준비하면서 사측이 지금까지 의사직에 대해 단 한 번도 임금인상률을 반영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원장의 부당한 근로조건 변경에 대해서도 하나씩 하나씩 원상회복하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기본 연봉을 축소한 것도 다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경력 산정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전공의 경력도 인정받게 되었다. 이제 임금인상률도 다른 직종처럼 반영하게 하였다. 이는 모두 노동조합의 힘이다. 노동조합이 아니었다면 부당한 근로조건 변경을 되돌릴 수 없었을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지금 성남시의료원의 위탁을 반대하는 투쟁도 진행하고 있다. 성남시장은 공공병원인 성남시의료원을 대학병원에 민간 위탁하고자 한다. 성남시의료원은 공공병원 역사 최초로 시민들이 나서서 시민들이 만든 조례로 추진한 공공병원이다. 성남시의료원에서 성남‘시’는 도시가 아닌 시민을 의미한다. 정확히는 성남‘시민’의료원이다. 그만큼 시민이 주인이라는 공공병원의 뜻을 지니고 있는 시민의 재산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소속 성남시장은 성남시의료원을 대학병원에 위탁하고 싶어 한다.

 

성남시의료원은 전국 최초 주민 발의 조례 제정 운동으로 설립된 공공병원이다. 2003년 조례 청구서를 접수하는 당시 성남시립병원범시민추진위원회. 사진 제공_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우리는 대학병원 혹은 민간 의료기관에 위탁하는 것은 공공병원의 ‘공공의료’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여긴다. 민간 위탁은 공공병원의 공공의료를 후퇴시키고 수익성 중심의 운영을 하게 한다. 의사는 환자 중심의 적정 의료가 아니라 수익성을 목표로 진료를 강요받게 될 것이며, 환자는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게 될 뿐이다.

 

 

성남시의료원 전경. 2003년 전국 최초 주민발의 조례 제정 운동 후 2020년 개원한 공공병원이다. 사진_ 성남시

 

 

성남시는 수정·중원구 중심의 구도심과 분당·판교 중심의 신도심으로 구분된다. 구도심과 신도심의 의료 격차는 매우 심각하다. 신도심에는 분당서울대병원, 분당차병원, 분당제생병원과 같은 대학병원과 규모 있는 종합병원이 있지만, 구도심에는 중소 종합병원이 2개 있을 뿐이다. 심혈관 질환, 뇌혈관 질환, 중환자, 투석 환자, 중증 외상 등 필수 중증 의료를 담당할 수 있는 규모 있는 종합병원은 부재한 상태다. 성남시의료원은 구도심에서 지역 주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은 공공병원이다.

 

그러나, 지금 성남시의료원은 애초 기대했던 기능을 수행하고 있진 못하다. 지난해 원장과의 갈등으로 많은 의사들이 퇴사했고, 새로이 충원이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의사직 정원은 99명이지만, 현재 의사들은 63명에 불과하다. 그러니 응급실도, 심뇌혈관센터도, 중환자실도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공공병원의 실패 때문이 아니다. 경영 실패 때문이다. 문제 많았던 원장은 그만두었지만, 이후 3개월이 넘도록 공백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성남시는 위탁을 추진하고 있는 터라, 성남시의료원을 적극적으로 정상화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실정이다. 시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 공공병원이 제 역할을 하긴 어렵다.

성남시의료원 살리기 토론회(성남시의료원 위탁운영반대.운영정상화 시민공대위 주최, 2023년 2월 1일, 성남시의회 회의실)에 참석한 김종명 위원장. 사진 제공_ 시민공대위

 

지금 우리 의사노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요구는 의료원 정상화에 있다. 의료원 정상화 없는 의사노동조합은 성립하기 어렵다. 우리는 조속히 의료원을 정상화하여 시민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주길 바라고 있다. 우리는 시민 주도로 설립한 시민의 병원으로서 시민이 자긍심을 갖는 병원이 되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는 공공의료를 실천하는 공공병원의 자랑스런 의사로서 근무하며, 시민의 건강에 기여한 만큼 합당한 대우도 요구할 것이다. 우리 의사노동조합의 투쟁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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