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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는 언니들이 찾는 거야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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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권리는 언니들이 찾는 거야

 

김계월/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아시아나케이오지부장

 


나는 코로나19로 정리해고되었다가 긴 투쟁 끝인 800일 만에 인천공항 현장으로 복직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다시 가고 싶었던 현장엔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혹독한 일터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던 인천공항 그리고 동료들과 내가 사용했던 기내 청소용품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에 했던 내 일에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계월 언니”라고 부를 때 환한 미소가 고마웠다. 그 환한 미소가 내가 일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러나 현장은 해고되기 전과 달라진 게 많았다. 옛 동료도 있지만 처음 만나는 동료도 있었고 근무 형태, 근무시간 등 일하는 패턴도 사뭇 달랐다. 오랫동안 일손을 놓은 상태라 다시 힘든 노동을 해야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당당하게 복직한 나로서는 힘들어도 이 어려움을 이겨 내야 한다는 각오로 버텼다.

 

익숙한 손놀림 동작에는 역시나 고통이 뒤따랐다. 손가락 관절은 자고 일어나면 퉁퉁 붓고 펴지지도 않고 아프기까지 했다. 장거리 노선 항공기 청소는 오물이 많아서 오물을 빼내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어느 땐 오물이 많아서 넘치기도 하고 그 무게가 얼마나 무겁던지 손목이 시큰거리고 어깨는 갈수록 아파 오고 일에 대한 고통이 더해 갔다. 휴게 시간 빼고는 잠시도 손을 쉴 수가 없으니 현장은 정말 일터 지옥이었다. 동료들의 볼멘소리와 다들 여기저기 아프다는 이야기뿐이었다. 휘어진 손가락을 보여 주던 동료들을 보니 ‘앞으로 나도 손가락이 변형되겠구나’ 싶었다.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며 센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노동자로 산다는 것이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었다.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의 김계월 씨. 김 씨는 해고 후 799일만인 2022년 7월 18일부터 복직해 기내 청소 업무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_ 김계월

 

코로나가 조금씩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항공기는 여행객들의 수요로 점차 늘어나고 일손이 턱없이 부족한 회사는 신입 사원을 하나둘 뽑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퇴사하고 또 뽑으면 또 퇴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회사는 자구책으로 단기계약직 사원 수십 명을 뽑고 희망퇴직자들과 정년퇴직자들을 알바로 채용해 나가고 있다. 신입 사원들이 견디지 못하고 일터를 떠나는 현상은 기내 청소뿐만 아니라 항공사들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했다. 결국 63, 64세 고령의 노동자들로 채워져 가는 현장은 산재사고로 이어졌다. 물건에 걸려 넘어지거나 겨울에는 미끄러워 넘어지기도 한다. 지금은 노조가 있음으로서 산재 신청이 어렵지 않다. 예전에는 그런 거 할 줄도 몰랐다.

 

노동 강도는 코로나19 이전보다 더한데, 회사는 휴게시간을 가지고 반칙을 했다. 예를 들어 오후 근무(오후 2시~11시) 중 1시간 휴게시간을 일 시작도 안 한 상태에서 30분 먼저 쉬라는 거다. 그건 비행기가 없을 때다. 그럼 쉬는 게 아니고 일도 하게 된다. 팀장한테 ‘업무 개시 안 했는데 먼저 휴게시간을 주냐? 이거 불법이다’ 하고 따져서 그 다음날부터 바로 1시간 풀(full)로 쉬게 됐다. 건강검진을 해야 할 때 근무시간으로 간주하던 것도 잘못을 지적해 권리를 다시 찾았다. 어떤 반칙을 해도 부당하다 느끼지 못하는 동료들을 보면 안타깝기만 했다. 그제서야 “언니 때문에 좋아졌어….”라고 말하는 동료들을 본다. 나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권리는 내가 찾아 주는 게 아니야. 언니들이 찾는 거야.”

 

하지만 그 권리가 때로는 1노조(한국노총, 약 180명 추정) 앞에서 맥을 못 출 때는 좌절감이 들기도 한다. 코로나19로 3년 동안 임금이 동결됐는데 1노조가 2023년 임금협상에서 예전에 없던 속도를 냈고, 결과로 기본급 4800원이 인상됐다. 겨우 최저임금을 넘긴 임금이라니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전기료와 가스비 폭등 그리고 물가 인상은 마트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겨우 4800원 인상으로 어떻게 생활임금이 될 수 있는지? 제대로 된 임금협상을 할 수 없는 우리 소수 노조(5명)의 역할이 안타깝기만 하다.

 

지난 1월 27일 눈 덮인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사진 제공_ 김계월

 

얼마 전 2월 3일에는 정리해고된 지 997일 만에 우리 노조의 부당해고 대법원 승소 판결이 났다. 속이 다 후련했다. 부당해고 당했던 해고노동자들은 대법원 판결로 명예 회복 됐고 나는 당당하게 새벽 출근길에 나섰다. 이제 코로나19로 날개를 접었던 항공기들은 다시 날기 시작했고 공항은 다시 여행객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일상을 되찾은 노동자들은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자의 노동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어떤 경우에라도 자본가는 함부로 해고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부당해고 판결을 가볍게 여기지 말기를 바란다. 더 이상 이 땅에서 해고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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