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읽기

군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

월간 작은책

view : 1184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군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

남은아/ 공공운수노조 병영생활전문상담관지부 

 

저는 10년 차 병영생활전문상담관입니다. 2019년부터 아동·청소년 대상으로 상담사를 시작하였고, 지인의 권유로 장병 대상의 심리상담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3년 1월 국방부에 전문상담관으로 채용되어 강원도 화천에 위치한 최전방 부대에서 7년 이상 근무하다가, 이후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부대로 이동하여 근무하고 있습니다.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제도는 장병의 복무 적응을 돕고, 군의 악성 사고(자살, 군탈, 폭력 등)를 예방하며, 장병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2005년부터 국방부에서 운영하는 제도입니다. 전문상담관의 주요 업무는 주로 위기 상담(자살, 자해 등)을 진행하며, 심리상담, 심리검사, 기본권 침해 사례 및 복무 적응 곤란자 식별, 인명 사고 및 군탈 사고 예방, 자살 위기 개입, 자살 사고 사후 개입, 현역복무부적합심의 의견서 제출 등입니다. 전문상담관은 장병의 생명·안전에 기여하며, 군에서 필수 직책이고, 업무의 책임 수준이 군인 못지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에 비해 고용은 불안정하고 처우와 상담 여건은 열악한 상황입니다.

 

최근에 외국에서 학창 시절 대부분을 보내고 성인이 되어 귀국하여 군 입대를 한 이등병을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이등병은 상담실에 들어올 때부터 어리둥절하고 불편해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상담 초입부터 무슨 말인지 이해가 어렵다는 듯 반문을 이어 가면서 두루뭉술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등병에게 상세한 설명을 하면서 대화를 유도하려고 진땀을 빼던 저는 어느 순간 ‘이대로는 상담 진행이 어렵겠다’라는 판단이 들었고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라포 형성(친근감 및 신뢰로운 관계 형성)’마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상담관으로서 제가 느끼는 상태를 이등병에게 솔직하게 표현하였고 이등병의 불편감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이등병은 머뭇거리다가 결심을 한 듯 자신이 왜 상담실에 와 있는 것인지, 군 생활과 자신에 관련하여 상담관이 탐색적으로 물어보는 말에 얼마만큼 대답해야 하는지, 자신이 이곳에서 하는 말이 혹시나 불이익으로 돌아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복잡하고 불편한 심정이 컸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용기 내어 속마음을 표현해 준 이등병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이등병의 불안과 염려를 줄이기 위한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20~30분이 지난 후 이등병은 “제가 여기서 어떤 얘기를 꺼내면 좋을까요?”라는 말을 했고, 상담이 끝날 무렵 “상담을 또 할 수 있을까요?”, “군 생활 하면서 두세 번은 상담하러 또 올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pixabay

 

위 내용을 읽으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상담이 진행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본 것 같거나 상담이 잘 마무리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시겠지요. 상세한 설명이 없었지만 위 사례에는 정말 중요한 단어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인권’입니다. 이 인권에는 ‘내담자의 인권’과 ‘전문상담관의 인권’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등병은 자신의 동의가 없었는데 상담실에 온 상황이 불편하였고, 그래서 상담실에서 나누는 대화를 경계하고 있었으며, 더욱이 사적인 내용은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문상담관인 저는 군 지침과 부대 지휘관의 상담 요청에 따라 심리상담을 진행하였습니다.

 

작년부터 군은 각 부대마다의 특성은 무시한 채 전입병 전체 상담, 초급 간부 상담, 관심 장병 상담, 상담 기법 교육, 자살 예방 교육, 지휘관에게 보고 및 지휘 자문 등을 전문상담관이 수행하도록 일방적인 지시를 내리고, 했나 안 했나 확인을 하며, 그것을 전문상담관의 근무 성적 평가에 엄정하게 반영하도록 지휘관과 인사 실무자에게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전문상담관 1명이 담당하는 평균 장병 수는 943.7명이며, 1주 평균 출장 상담의 이동 거리는 113.1킬로미터입니다. 군에서 원하는 상담을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업무는 과중하며, 이러한 업무 부담으로 인해 집중 상담과 정신적 에너지 몰입에 방해될 정도로 심리 소진 및 질병을 앓고 있는 전문상담관이 많습니다. 또한 전담 부대에서 혹여 악성 사고가 발생할까 봐 24시간 대기 상태로 상담 연락에 대응하며, 위기 상담이면 언제든 내담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바로 심리상담을 진행합니다.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되거나 부대 이동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며, 상담사의 상담 윤리인 ‘상담의 비밀 유지’를 소신 있게 지키기도 어렵습니다.

 

국방부는 2022년 2월 22일에 장병의 인권 보호를 위한 군 인권 전담 조직인 ‘군인권개선추진단’을 신설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설한 취지와는 관계없이 장병의 심리상담과 관련하여 인권침해를 받는 것, 전문상담관의 노동인권 침해를 받는 것에는 둔감하고 방치하는 수준입니다.

 

2021년 6월 5일 공공운수노조 병영생활전문상담관지부 첫 간부 교육에서. 사진 제공_ 병영생활전문상담관지부

 

병영생활전문상담관 노동조합은 ‘사람을 살리는 소중한 일’을 하는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의 고용안정 및 처우 개선뿐만 아니라 국방부 전체 민주화 확대와 인권 향상을 위하여 2019년 12월에 결성되었고, 2021년 5월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하였습니다(공공운수노조 병영생활전문상담관지부). 초반에는 국방부와 각 군, 일선 부대의 군인들이 우리 노동조합에 대해 잘 모르거나 통제해야 할 조직으로 보았다면, 지금은 노조 활동을 보장해야 하고 부당한 처우에 노조가 개입한다는 것을 잘 알고 노조를 다소 견제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매우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정부 기관인 국방부와 동등한 파트너 관계로 논의하는 것에 어려움이 크지만, 그럼에도 2021년에 시작한 ‘단체협약서(안)’를 지속적으로 노사 교섭하며 이견을 좁혀 나가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은 "5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해야만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한 것은 일반 계약직과 차별”이라며 2021년 8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서를 제출했다. 사진 제공_ 병영생활전문상담관지부

 

전문상담관으로서 상담 활동을 하면서 마음이 흡족하고 보람을 느낄 때가 자주 있습니다. 상담 시간에 내담자와 깊은 대화를 하면서 통찰되는 여러 생각과 감정도 설레고, 심리상담을 여러 번 진행하면서 내담자가 성장하고 변화되는 것을 발견할 때에도 감사하고 감동적입니다. 내담자에 대한 조치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에서 지휘관과 상의하여 안전하고 적절한 조치가 잘 이루어지고, 내담자의 삶에 대한 의지가 향상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안도감과 보람을 느낍니다.

 

국방부는 대표적인 정부 기관으로서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이 전문가로서의 권한과 존중을 받으면서 독립적으로 상담 활동을 하고, 장병에 대한 안전한 돌봄 권한을 가지며, 상담 윤리에 따라 질 높은 상담 활동에 집중하고, 장병의 생명도 살리고 긍정적인 심리 치유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상담 환경과 여건을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노조에서도 계급에 의해 인권이 유린당하지 않고 사람이 중심인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는 국방부가 되도록 조력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2022년 8월 국회에서 열린 '국방부 병영생활전문상담관 노동실태 발표 및 노동조건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 사진 제공_ 병영생활전문상담관지부

 

  • 이현자 대한민국 병영생활상담관의 중요성이 느껴집니다. 입소한 군인들은 낯선 군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조직문화에서 오는 중압감이 얼마나 클까요? 저도 군생활을 시작하는 아들을 보내며 제대할 때까지 마음 졸였습니다. 병영생활상담관의 처우와 인권의 열악함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생생한 글을 읽으며 그 노고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응원합니다!!!! 2023-07-05 19:57 댓글삭제

자동입력방지 스팸방지를 위해 위쪽에 보이는 보안코드를 입력해주세요.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세요.

창닫기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