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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1호 친절 기사의 해고투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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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1호 친절 기사의 해고투쟁기

안계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민주택시노조 강원본부 창영운수분회장

 

내가 택시 운전대를 잡은 것은 16년 전인 2007년이다. 그전에는 방수와 페인트 공사를 하는 업체에서 일을 했다. 그렇지만, 일을 하고도 임금을 제대로 못 받는 일이 빈번했다. 내가 노력해서 일하면 제대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부사관으로 일할 때 경험을 살려 택시 기사가 되기로 했다. 택시 운전 일은 내가 밤이고 새벽이고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힘든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점점 커 가는 두 딸과 막둥이 아들을 생각하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창영운수라는, 강원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택시회사였다. 차량만 90대가 넘는 강릉에서 제일 큰 택시회사에서 일한다는 게 든든하고 자랑스러웠다. 임금 체불 같은 부당한 일을 겪을 걱정 없이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본급은 30~40만 원이었지만, 밤잠 줄여 가며 일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창영운수에서 일하면서 밤에 잠을 잔 적이 없었다. 매일 아침 6시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 등교시킨 뒤 잠시 눈을 붙이고 오후 1시에 다시 운전대를 잡는 식이었다.

 

그러면서도 쉬는 날에는 택시 봉사대로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도 했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친구고 이웃인 강릉에서 시민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일했다. 비록 아침에 잠깐 아이들을 보는 생활을 이어 가면서도 ‘아빠는 친절하고 안전한 택시 노동자’라는 자부심으로 최선을 다했다. 지난 2014년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강릉시와 KBS가 선정하는 이달의 친절 기사로도 뽑혔다. 강릉시 1500대 택시 중 제1번으로 선정된 것이다. KBS 기자가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담아 보도하기도 했다. 지금도 내 차에는 경직된 얼굴로 친절 기사 인증서를 받는 사진이 붙어 있다.

 

강릉시와 강릉KBS에서 선정한 이달의 친절 기사 시상모습. 사진 제일 왼쪽은 최명희 당시 강릉시장. 왼쪽에서 세 번째는 잔뜩 긴장한 모습의 글쓴이. 

 

밤낮없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지만, 창영운수는 그만큼의 대가와 보상을 해 주는 회사가 아니었다. 택시 노동자들에게도 최저임금을 보장하라는 최저임금법 특례조항이 시행된 2010년부터는 임금협정을 바꿔서 10시간이던 하루 소정근로시간을 4시간으로 줄여 버렸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맞추기 위해서 소정근로시간은 계속 줄어들었다. 최저임금법을 개정해서 택시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려던 법률 취지는 회사의 꼼수와 그에 동조한 한국노총 노조의 합의로 부정되었다. 

 

많은 택시회사들이 그렇지만, 창영운수 역시 입사와 동시에 노조에 가입하게 된다. 바로 한국노총. 열심히 일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겠다는 마음으로 입사한 택시회사에서 버젓이 노조가 있는데도 소정근로시간 꼼수로 임금이 착복되었다. 택시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노동과 비참한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최저임금법이 개정되고, 택시발전법이 개정되어 제도가 신설되었지만, 회사는 노조를 이용해서 마음껏 꼼수를 부렸다. 택시발전법 제12조의 시행으로 유류비 전가가 금지되었지만, 그전에는 직접 가스비를 결제하던 것에서 따로 회사 통장으로 가스비를 입금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전액 관리제로 바뀌었지만, 줄어든 소정근로시간 때문에 기본급은 여전히 50~60만 원 수준에서 바뀌지 않았다. 반면 월수입은 계속 줄어들었다.

 

강릉 최고의 택시회사에서도 하루 15시간 넘게 일하면서 월급통장에 찍히는 돈은 최저임금보다 적었다. 이런 상황을 바꿔 보자는 동료 노동자들 5명과 민주노총 소속 전국민주택시노조 창영운수분회에 가입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소정근로시간을 불법으로 단축해 체불된 임금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이었다. 2018년부터 2020년 5월까지 법정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돌려받는 소송을 제기했다. 1인당 3000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2022년 12월 대법원 확정판결로 최저임금 위반으로 인한 체불임금이 인정되어 미지급 임금을 돌려받게 되었다. 곧이어 2020년 6월부터 2022년 12월까지의 임금 미지급금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에 들어갔다(이 소송은 지난 10월 12일 1심에서 승소했다).

 

창영운수 대량해고 문제해결을 위한 강릉공동대책위원회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_ 창영운수분회

 

 

그러던 2023년 1월 하순. 창영운수 한국노총 위원장이 조합원들에게 회사가 1월 31일자로 폐업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 소식을 접하고 확인해 보니 1월 16일부터 18일까지 감차 신청 공고가 났고, 감차보상까지 완료된 것이었다. 법인 대표 또한 사장 부인 명의로 변경되어 있었다. 이어 회사는 ‘1월 27일까지 차고지에 택시를 반납하라’고 통보했다. 교섭 대표 노조인 한국노총에 항의를 했지만 “너네들 때문에 회사가 망했다”는 답변과 함께 문전박대를 당했다.

김홍규 강릉시장은 기존 감차보상비를 600만 원 증액하기 위해 예산 전용까지 해서 한 대당 5000만 원, 모두 45억 5000만 원의 보상을 해 줬다. 창영운수 폐업을 위한 가장 중요한 감차보상이 설 연휴와 주말을 제외하면 평일 기준 단 7일 만에 공고부터 보상까지 모두 완료되었다. 91명의 노동자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되는 대량해고 사태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문제는 노동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나중에 시의회에서 답변하기도 했다. 

 

대법원의 체불임금 확정판결 직후 일사천리로 진행된 창영운수의 갑작스러운 폐업 배경에는 대규모 임금 체불에 따른 배상 비용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 다른 노동자들까지 체불임금 민사소송을 이어 갈 것을 우려해 강릉시에 전 차량 감차 의사를 밝히고 강릉시는 감차보상액을 증액해 주면서까지 이를 도왔다.

 

회사는 급작스러운 폐업에 대한 보상으로 기사들에게 300만 원을 지급하며 사직서를 종용하고, 이 문제에 대해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확약서를 받았다. 사직서를 쓰지 않고, 퇴직 보상금을 거부한 6명의 창영운수분회 노동자들은 투쟁에 나섰다.

 

회사에서 서명을 요구한 사직서. 사진 제공_ 창영운수분회

 

유례없는 감차가 폐업과 대량해고로 이어진다는 것을 뻔히 알고서도 아무런 대책 없이 감차를 추진한 강릉시에 우리의 고용 문제 해결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강릉시장에게 지금까지 8번의 면담 요구를 했지만 시장은 우리들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강릉시는 집회 신고를 한 시청 앞 현수막을 트집 잡아 철거를 지속하고 35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시청 앞 천막도 부과금을 납부하라는 계고장을 발부했다.

 

강릉시청 앞 농성장. 지난 3월 27일 이후 매일 이곳에서 8개월째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 여름 강릉은 전국에서 가장 무더운 곳이었다. 우리 해고자들은 실업급여를 받으며 해고투쟁과 구직활동을 하면서 여름을 견뎠다. 실업급여도 이달이면 끊긴다. 곧 겨울이 다가온다. 주변에서는 “눈 맞고 투쟁하면 안 될 텐데….”라며 걱정한다. 지역의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 10월 18일 ‘창영운수 대량해고 문제 해결을 위한 강릉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강릉시에 고용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투쟁을 함께 벌여 오고 있다.

 

강릉지역의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10월 18일 창영운수 대량해고 문제해결을 위한 강릉공동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 사진 제공_ 창영운수분회

 

우리 6명의 조합원들은 우리의 투쟁을 지지하고 걱정하는 사람들과 함께 강릉시가 잘못을 인정하고 택시 기사로 고용승계 대책을 내놓을 때까지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싸울 것이다. 나 역시 더 이상은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눈감고 회피하고 싶지 않다. 민주노조와 함께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강릉 제1호 친절 기사라는 자부심을 이어 나가기 위해 나는 계속 투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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