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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산재 신청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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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산재 신청

권동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공인노무사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산재뿐만 아니라 노동 상담을 하는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역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활동가들도 여럿 있다고 들었어요. 마지막 시간에는 자살과 산재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산재 노무사로 17년 이상 일하면서 가장 힘든 산재 사건은 사실 자살 사건이에요. 제가 2005년에 자살 사건을 처음 맡았는데, 그때 유명한 증권회사의 과장님이 업무 시간 중에 회사 체력단련실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어요. 그래서 유족들이 저를 찾아왔는데, 함께 온 배우자는 두 시간 상담 내내 저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다른 가족들만 얘기했고요. 그 눈빛, 슬프고도 억울한 그리고 분노 가득한 그 눈빛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어요. 다행히 산재가 승인되었고, 배우자는 저에게 감사하다며 전화를 했고, 그 짧은 통화가 마지막이었어요.

 

여러분이 자살 산재 사건을 처음 상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살의 원인이나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는지 등 왜 자살했는지를 분석하는 게 아니라 찾아온 가족들의 심리 상태가 어떤지, 아이들이 있다면 현재 상태가 어떤지를 물어봐야 해요. 고인이 자살 직전에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가족들이 ‘설마 자살할까’라는 생각을 가지지 못해요. 그래서 그 사건은 정말 견딜 수 없는 극도의 혼란과 충격 그리고 죄책감과 슬픔을 남기게 돼요. 상담자로서 가족들의 현재 심리 상태를 면밀하게 물어봐야 해요. 그리고 빠르게 심리치료 및 정신과 치료를 적극적으로 권해야 해요. 그게 가장 중요해요. 97퍼센트의 유가족은 심리·행동 변화를 겪게 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살을 하게 돼요. 

 

산재 법령의 규정이나 내용도 숙지해야 해요. 아시다시피 모든 보험은 ‘고의’에 의한 사고를 배제해요. 이는 우연성의 원칙에 반하기 때문이에요. 산업재해보상보험법도 제37조 제2항에서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 다만, 그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 능력 등이 뚜렷하게 낮아진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라고 규정하고 있어요.

그리고 시행령 제36조에서 ‘자해행위에 따른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을 두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업무상 사유로 인해 정신질환’이 있었는지 및 ‘업무상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것인지’가 쟁점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결국 업무상 자살의 주요 원인이나, 그것이 얼마나 증명될 수 있느냐가 핵심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살펴봐야 할 것은 자살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에요. 자살을 한 가족들은 당연히 산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요. 자살 산재에 대한 흐름과 판정 절차를 알지 못해요.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경찰의 조사 내역이에요. 한국에서 자살 사건이 일어날 경우에는 가장 먼저 경찰이 조사하게 되어 있어요. 경찰은 타살인지 자살인지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자살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은 하지 않아요. 만약 내방한 가족들에게 물어서 아직 수사가 종결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가족들의 탄원서 등의 형식으로 조사해야 할 사항이나 내용을 적극적으로 제출하는 것이 필요해요. 최대한 경찰의 내사 결과 보고서에서 직장 내 문제나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했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증명되는 것이 중요해요. 나중에 공단 조사 과정이나 판정위원회 판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조사가 끝났다면 수사 자료 일체를 정보 공개 신청해서 분석해야 해요. 만약 유족 이외의 동료나 사업주의 진술이 있었다면 협조를 구해서 진술 조서를 확보해 살피세요. 제삼자의 진술 조서를 보려면 당사자 동의가 반드시 필요해요. 통상 최초 진술 조서에 대부분의 진실이 담겨 있어요.

 

사진 제공_ 법률사무소일과사람

 

대부분 산재 사건이 그렇지만 자살 사건도 복합적인 사안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증거 자료를 분석해야 해요. 한국생명존중재단에서 발간한 <2022년도 심리부검 면담 최종 보고서>를 보면, 자살 사망자 980명을 분석했는데, 사망 전 스트레스는 평균 3.5개였다고 해요. 가족관계(61.3퍼센트), 경제(60.7퍼센트), 직업(59.2퍼센트), 부부관계(51.9퍼센트), 신체건강(29퍼센트), 대인관계(25.4퍼센트), 연애관계(13.3퍼센트)로 명시되어 있어요. 산재에서 중요한 것은 직업적 요인, 업무적 요인이에요. 유서도 중요하지만 보다 명확히 자살의 원인이 업무적인지 아닌지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고인이 다녔던 정신과 병원의 의무 기록지라고 볼 수 있어요. 병원의 의무 기록지뿐만 아니라 검사 결과지도 모두 발급받아서 보세요. 혹시 고인이 임상 심리상담사가 운영하는 심리상담소를 다녔다면, 일단 유족과 함께 찾아가 보세요. 면담 내역서는 발급해 주지 않아요. 다만 어떤 사유로 심리상담소를 다녔다는 내용은 발급해 줄 거예요. 그리고 고인의 물품, 특히 휴대전화나 수첩, 전자우편이나 SNS상의 기록 등을 확보해야 해요. 동료와 친구들과의 면담을 통해서도 문자나 SNS 내역을 함께 살펴봐야 해요. 이 과정에서 가족들과 함께 다니고 도움을 받으세요. 가족 면담 과정에서 사업주 태도가 우호적이었다면, 당연히 사업주를 만나서 협조를 구하는 게 중요해요. 그렇지만 다른 산재 사건보다 자살은 사업주의 부정적인 태도가 심하다는 점을 알아 두셔야 해요. 최대한 노동자가 과로했다는 증거, 직장 내 스트레스가 심했다는 내용, 직장 내 괴롭힘 등 진정 및 조사 자료 등은 아주 중요한 증명 자료예요.

 

자살의 원인이나 내역이 분석되었다면, 공단의 지침에 맞게 원인을 분석하는 이유서를 작성해야 해요. 공단은 현재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 지침’(2023. 9. 19)을 두고 있어요. 이 지침은 정신질병과 자살에 대한 산재 조사 지침이에요. 보면 아시겠지만, 자살 사건의 경우 자살의 증상 발현 시점, 수단, 직전 상황, 유서 및 경찰 조사 내용을 반드시 보고 있어요. 또한 정신질환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업무 스트레스 이외에 자살의 주요한 업무 스트레스를 크게 10개(①업무상 사고, ②폭언·폭력·성희롱, ③업무의 양과 질의 변화, ④업무의 실수·책임, ⑤민원·고객과의 갈등, ⑥회사와의 갈등, ⑦배치 전환, ⑧직장 내 갈등, ⑨업무 부적응, ⑩괴롭힘·차별)로 구분하고 있어요. 이 유형에 해당되는지와 이에 대한 증거가 있는지가 핵심이에요.

 

다른 사건도 그렇지만 자살 사건도 공단 담당자를 잘 만나는 게 중요해요. 사망 즉 유족 사건이기 때문에 공단 지사나 지역본부의 차장들이 사건을 담당하게 돼요. 노련하고 경험 있는 분들이 많지만 그래도 사건을 잘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것은 상담자로서 중요한 역할이에요. 그리고 지사에서 1차 조사 후 공단 본부 자문을 받은 다음에 판정위원회로 회부돼요. 작년 2022년에 자살이 산재로 신청된 건은 85건, 그중 39건이 공단에서 산재로 승인되었어요. 안타깝지만 승인율 45퍼센트로 점점 하락하는 추세이긴 해요. 그래도 여러분과 저는 가족을 설득해야 해요. 당신의 배우자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과 형이 나약하고 내성적이어서 자살한 것이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 사업주의 잘못된 노무관리, 장시간 노동과 과로, 민원인에 대한 스트레스 등’ 때문이었다고요. 무엇보다 자살에 대한 산재 신청은 노동자의 존엄성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길이자 방법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이상으로 장시간 강의를 마칠게요. 아무튼 오늘 부족한 강의를 들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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