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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상] 어느 날, 학교 비정규직이 됐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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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생활글 공모전 수상작

작은책상

 

어느 날, 학교 비정규직이 됐다

박내현

 


 올여름 동네의 한 고등학교로부터 글쓰기 수업을 제안받았다. 나의 본업은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과 인권 활동이고 이 학교엔 3~4년쯤 꾸준히 수업을 나갔는데, 내가 이런저런 책 작업에 참여했다는 걸 안 어떤 분이 추천했다고 한다. 2학년 여섯 개 반을 매주 수업해야 하는, 평일 이틀을 꼬박 내야 하는 상황을 알기에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는데 ‘아이들에게 사회와 인권에 대한 글을 쓰게 해 보고 싶다’는 교사의 말에 넘어가서 수락하고야 말았다. 수업은 9월하고도 중순쯤에야 시작하려니 하고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학교 행정실이라고 하며 이런저런 서류를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서류에는 마약 검사, 공무원 채용 신체검사 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정교사 자격증도 있었다. 나한테 보낸 문자가 맞나 싶어 연락해 보니, 정교사 자격증은 없어도 되지만 나머지 서류는 준비해서 보내야 한다고 했다. 난생처음 공무원 채용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어디서 받아야 할지부터 골치가 아팠다. 인터넷에 열심히 검색을 해서 가까운 공단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갔더니, 10시간 전부터 금식을 해야 한단다. 다음 날 금식을 하고 가서 신체검사, 마약류 검사, 잠복 결핵 검사라는 무시무시한 검사들을 무사히 마치고 서류가 나오기까지 기다렸다가 준비한 서류를 보냈다.

 

 그새 담당자가 바뀌었다며 새로운 교사가 전화해 이런저런 안내를 받았냐고 물어보는데, 도통 모르는 내용이었다. 학사 일정표와 수업을 마친 후 작성해야 하는 서류 등을 안내받고, 안내받은 첫날 수업을 하러 갔다. 이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일주일 전부터 소화도 안 되고 머리도 지끈거리고 전날은 늦을까 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그런데 수업을 해야 하는 교실 앞에 갔더니 뭔가 이상하다. 쉬는 시간이어야 할 시간에 모두 고개를 숙이고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고 칠판에는 ‘시험 시간’이라고 적혀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교무실로 찾아가니 그날은 학력평가가 있는 날이었다. 학교 알리미에 등록이 되면 일정 변경이 있는 경우 알람이 가는데 어쩌다 내 연락처가 누락됐다고 했다. 그러더니 온 김에 계약서를 쓰고 가라고 했다. 얼떨떨하게 있는 내 앞에 학교 시간강사 계약서가 놓였다. 내가 이 학교의 시간강사로 채용되었다는 사실을 그날에야 알았다. 시간강사라 4대 보험은 안 되지만 산재보험은 들어 준다는 것도. 첫날 허무하게 발길을 돌리고 둘째 날 다시 학교를 방문했다. 무사히 8시 20분 1교시를 마치고 비는 시간을 어디서 보내야 할까 담당자에게 문의하니 5층에 가면 강사 대기실이 있다고 했다.

 

 강사 대기실, 이곳은 나 같은 시간강사들이 비는 시간에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창고처럼 생긴 곳을 정리해서 만든 듯한 허름한 공간에 들어서자 등 돌리고 앉아 있던 세 사람이 나를 힐끗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고 어색하게 주어진 자리에 앉았다. 내가 앉은 자리는 오후 늦게부터 상담을 하는 상담교사의 자리라서 다행히 나는 그 자리를 이용할 수 있었다. 슬쩍 옆자리를 둘러보니 내 옆은 수학, 그 옆은 국어 교과목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쉬는 시간, 한 분이 ‘지난 학기 선생님은 이제 안 오시나 봐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지난 학기 누가 뭘 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으니, ‘네, 그런가 봐요.’라고 애매한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글쓰기를 가르치면 논술인가요?’ 논술은 아닌데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망설이고 있자니 ‘제가 국어 교사라서요. 글쓰기라길래 궁금했어요.’라고 하신다. ‘국어요? 그럼 정규 과목을 가르치시는 거예요?’ 내 질문에 선생님은 재밌다는 듯,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정규 국어 과목을 가르친다고, 담당 교사가 행정 업무가 많아 다 가르칠 수가 없기 때문에 꽤 많은 강사들이 학교에서 정규 교과목을 나눠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깜짝 놀라 주변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내 물어보니, 나만 모르는 현실이었다. 학교에 정말 다양한 비정규직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규 교과목을 나눠 가르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똑같은 정규 교과목을 가르치는데 같은 교무실이 아니라 강사 대기실에 있다니…. 그럼 학생들은 궁금한 게 있을 때, 여기로 오나? 아니면 해당 단원을 가르치지는 않은 정규 교사에게 가나? 시험은 누가 내나? 머릿속에 십수 개의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강사 대기실에는 커피포트와 믹스커피 한 박스, 어디선가 쓰다 버렸을 거 같은 낡은 싱크대와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여기저기 수업하러 다니며 가 본 교무실의 풍경과는 분명 달랐고 심지어 바로 아래층에 있는 이 학교의 교무실과는 너무나 달랐다.

 

 사실 학교 비정규직은 나에게 익숙한 단어다. 학교에서 노동인권 교육을 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학교 안 노동자에 대해서, 학교 안 비정규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학교 비정규직에 대한 생각을 나눠 왔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학교 비정규직을 인터뷰한 글을 쓴 적도 있다. 그런데 정작 내가 학교에 와 보니 나는 학교 비정규직에 대해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비정규직이 되는 순간, 아니 심지어 내가 비정규직이 된다는 것도 모르고 어느새 비정규직이 되는 순간, 제대로 된 수업 안내도 제대로 된 휴게 공간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와 보고서야 알았다. 매주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 한 명 한 명의 글을 수정하고, 주 이틀 학교의 문턱을 넘지만 나는 어쩌다 한번 노동인권 교육을 하러 갈 때보다 더 학교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마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교과목 시간강사들은 어떤 마음일까 궁금했다. 
 

 강사 대기실은 조용하다. 서로 질문하거나, 학생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교무실에서 일어날 법한 대화는 이곳에 없다. 서로 벽을 바라보고 묵묵히 수업 준비를 할 뿐이다. 한 학기, 일 년을 보내고 나면 달라질까, 그럴 것 같지 않다. 두 번째 주에는 옆자리 수학 강사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도 반갑게 인사했지만 그뿐이었다. 우리는 나눌 대화가 없다. 다음 주에 학생들과 글쓰기할 주제는 ‘노동’이다. 학교 안 비정규직에 대해서 나는 또 얘기할 수 있을까. 노동인권 교육을 하는 활동가가 아니라 비정규직 당사자로서 나는 내가 겪은 부당함과 불편함을 얘기할 수 있을까. 
 

 다음 주에는 일단 대기실을 나올 때 인사를 건네 볼 생각이다. 침묵 속에 어떤 인사도 돌아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곳에서 짧게나마 함께 일하는 동료니까, 우리가 나눌 수 있는 대화가 그저 인사뿐일지라도 우리도 분명 학생들을 가르치고, 더 나은 수업을 위해 고민하고, 최선을 다해서 수업하는 학교의 구성원이니까.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도,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건네지 않는 인사.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또 뵐게요, 라고 인사하고 싶다.

 

 

수상 소감 ∞∞∞∞∞∞∞∞∞∞∞∞∞∞∞∞∞∞∞∞∞∞∞∞∞∞∞∞

작은책상 수상자 박내현 씨.

 

 마을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할 무렵,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의 활동 소식을 지켜보던 분이 <작은책>을 후원하고 싶다고 연락해 주셨습니다. 본 적도 없는 분의 따뜻한 말에 <작은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덥썩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 10년, <작은책>은 주소를 옮긴 후에도 매달 도착합니다. <작은책> 속에 담긴 작은 글들은 작지 않았습니다. 각자가 살고 일하고 싸우고 사랑하는 공간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 바빠서 제대로 읽지 못하다가도 매달 목차를 뒤적거리며 반가운 이야기들을 만났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지기도 하고, 나와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지닌 이들이 이곳저곳에 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10년의 활동을 여러모로 돌아보며 <작은책>과의 인연을 저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나도 나름 잘 살아왔노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고 싶었나 봅니다. 부족한 글을 <작은책>의 글로 선정해 주셔서 수없이 흔들리며 지냈던 시간에, 늘 후회가 많은 내 마음에, 놓쳐 버린 사람들과 기회에 덜 미안하게 해 주셨습니다. 저의 글도 누군가에게 가 닿겠지요. 청소년들을 만나고 마을에서 노동을 이야기하며 작은 공간에서 엄청나게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행복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나는 어디로 더 가야 하지, 더 가 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늘 주저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것이 혹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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