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읽기

[우수상] 아직은 요리사입니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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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생활글 공모전 수상작
우수상


아직은 요리사입니다

이동수

 


 여느 주말처럼 주방 구석에 간이 의자를 펼치고 앉았다. 오늘 점심은 얼마를 팔았을까? 다음 주면 10월인데 한바탕 주문이 몰아쳐 간 주방은 빠져나가지 못한 열기로 여전히 후끈했다. 잠을 청하려 작업대 위에 엎드리자 조리복 사이로 삭은 땀 냄새가 날카롭게 코를 찌르며 올라온다. 한 가지로 요약할 수 없는 다양한 음식 냄새가 내 몸의 땀내와 섞여 악취가 되어 있었다. 스스로가 불쾌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오늘도 갈등했다. 책을 읽을 것인지 잠을 잘 것인지. 큰맘 먹고 읽기 시작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두 달이 지났는데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책 뒤표지에는 제임스 조이스,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비롯,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인들의 찬사가 적혀 있었다. 그들은 내가 단순히 한 권의 소설을 읽고 있는 게 아니라 인간과 인생에 대한 중요한 탐구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 탐구는 대부분 10분을 넘기기 힘들었다. 저녁 장사를 온전히 하려면 아직은 독서보다 잠이 더 중요했다.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이어폰을 꽂고 잠을 청하려 했는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누군가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녀였다. 이제 막 두 달을 채우고 적응을 마친 인천 사는 28살  씨. 고개를 숙이면 쏟아질 것처럼 눈이 큰 그녀는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할 말이라…. 주방에서 직원이 셰프에게 할 말은 정해져 있다. ‘뭐(재료)가 다 떨어졌어요’, ‘언제 무슨 날 쉬고 싶어요’, ‘누구누구가 일을 거지같이 해요’, 그리고 ‘저 이제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같은. 그리고 꿀 같은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있는 관리자를 깨워서 전하려는 말은 들어 보지 않아도 뻔했다. 하지만 그 뻔한 티를 그녀 앞에서 내지 않아야 하는 게 내 역할이기도 했다. 그녀의 할 말은 예상대로였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그만두겠다’가 아니라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하지만 불확실함을 내포한 이 말은 경험상 단호한 의지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녀도 잠시 머뭇거렸지만 정확히 그렇게 말을 했다. 그녀가 갑자기 빠지면 당장 주방 운영에 차질이 생기는 상황이었지만 난 그만둔다는 그녀를 설득하고 싶지 않았고 그럴 만한 명분도 없었다. 이미 일하면서 보여 준 많은 행동들이 그만두겠다는 무언의 의사 표현이었던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난 “그곳에 가서도 지금처럼 잘하길” 그리고 “미안해할 필요 없다.”라고 간단히 얘기한 뒤 다시 엎드려 잠을 청했다.

 그녀는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며 우리 주방의 분위기가 너무 좋고 사람들도 정말 괜찮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말이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직하려고 하는 곳은 자신이 전부터 다니고 싶었던 곳이었고, 월급도 지금보다 30만 원이 많다고 커다란 눈을 글썽이며 얘기했다. 난 솔직히 그녀가 조금도 원망스럽지 않았다. 그녀는 고맙게도 열흘의 말미를 주었다. ‘커리어 관리를 잘해야 한다’느니, ‘월급을 많이 주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테니 잘 알아보고 이직을 해야 한다’는 꼰대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건 그야말로 하나 마나 한 소리였다. 20대 후반의 나였어도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으로 별 갈등 없이 이직했을 테니까. 박봉에 격무 그리고 온갖 스트레스가 하루 종일 사람을 괴롭히는 곳. 성공한 요리사조차 주방 일이 힘들지 않았다고 말하는 걸 난 아직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구조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할 거면 차라리 개인의 판단을 존중해 주는 게 관리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서운한 마음은 없었지만 갑자기 아득해지면서 이곳에 처음 들어오던 날이 생각났다.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을 돌이켜 보니 양손으로 헤아려도 두 번은 왕복해야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들락날락했다. 누구는 하루, 어떤 이는 이틀, 일주일, 한 달, 두 달 등등…. 1년을 채운 이들도 있었지만 결국 오픈 초기부터 남아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그동안 짜증, 증오, 절망, 체념을 얼마나 겪었던가? 난 이제 누가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는다. 내가 단단해져서 무던해진 게 아니라 닳고 닳아 버려 감정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그저 또 버티다 보면 누군가 들어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보내는 중이다.

 

 내가 이곳에 남아 있는 건 급여가 많거나 근무조건이 만족스럽기 때문은 아니다. 급여는 여전히 전 직장보다 100만 원가량 적고 출퇴근은 왕복 3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40대 중반의 경력이 단절됐던 요리사를 환영하는 곳은 별로 없다. 요즘은 셰프라고 하는 주방 책임자들의 나이도 점점 어려지는 추세라 나 같은 노땅은 정말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런 내가 이제 와 또 이직을 해서 적응을 한다는 건 스스로 커다란 각오를 해야만 하는 일이고 또 이직을 한다 해도 내 의지대로 일이 잘 풀리란 법도 없다.

 

 돌이켜 보면 식당 혹은 외식업체라고 하는 곳의 인력난이 없었던 적이 있나 싶다. 하지만 뉴스에도 연일 보도될 만큼 요즘은 그 상황이 심각한 걸 현장에서 절감하고 있다. 구하는 곳은 많고 일하겠다는 사람은 없다. 우리 주방은 7명이 채워졌을 때 제대로 돌아간다.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 흔한 연차 한 번 써 보지 못한 이유도 인원이 제대로 갖춰진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있기는 있었지만 그나마 얼마 가지 못했고 결원은 수시로 발생했다. 심지어 7명이 할 일을 4명이 쉬지 않고 돌아가며 한 적도 있다. 뻔한 이야기지만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우리 매장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했다. 짜디짠 급여, 부족한 복지를 탓하며 사장에게 그 책임을 돌릴 수도, 강압적인 주방 분위기를 만든 전임 관리자를 욕할 수도, 정부의 노동정책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해결책이 당장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주방에서 10년, 커피 공장에서 5년, 도합 15년을 식음료 관련 업체에서 일을 했고, 인력난을 비롯해 이 업계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고질적인 모순들을 한 번씩은 겪어 왔지만, 가장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해 봐야 퇴사 혹은 이직이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을 가장 잘 이해하는 직업이 아마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사실 별다른 선택권이 없다. ‘단결투쟁’도 일부 대기업 계열의 호텔 같은 곳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나같이 개인이 운영하는 매장의 요리사들에게는 휴가 이야기나 급여 이야기도 대단한 각오가 아니면 꺼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이직이 잦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루에 보통 10시간에서 12시간, 때로는 주 6일을 일해야 하고 여전히 사람의 일손이 가장 중요한 곳이 식당이다. 그러다 보니 가족보다 오래 봐야 하는 사람들이 사장 혹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고 집보다 오래 머무는 공간이 매장이다. 급여가 만족스럽다 해도 나와 성향이 맞지 않거나 근무 환경이 열악한 경우 많은 사람들이 인내보다는 이직을 선택한다. 요즘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내로라하는 맛집들도 일 년 내내 구인 광고를 올려놓는 곳이 허다하다. 그래서 식당 일을 오래 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빠꼼이’가 되어 간다. 그들은 하루만 일해 봐도 그곳이 오래 일할 수 있는 곳인지 아닌지를 본능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의 소유자들이다.

 

 세월이 좋아졌다기보다는 사람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요즘은 법정 근무시간을 준수하는 업체들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그런 업체는 대부분 최저임금 언저리에서 급여가 책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요리가 쉬운 것 같아 보여도 능숙해지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로 불확실한 미래를 내다보며 오랜 기간 인내하는 건 꼭 MZ세대가 아니라도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남들이 쉴 때 일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친구와 가족들과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고단한 일상에 파묻혀 그 문제들은 결국 개인에게 내면화되어 식당 일 오래 한 사람들은 ‘곤조’가 있다는 속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안 좋게 얘기하니 곤조지, 결국 그건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렇게 무심히 열흘이 지나갔고, 그녀는 새 직장으로 떠났다. 나는 그녀가 떠난 바로 다음 주에 6일 근무를 해야 했지만 운이 좋게 곧바로 한 사람이 충원되었다. 2주 뒤에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빈자리도 조리학과 실습생으로 채워졌다. 물론 이 평화가 얼마나 갈지는 나도 모른다. 나로서는 그저 새로 들어온 직원을 인간적으로 존중해 주고 업무를 빠르게 습득해서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줄 뿐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들이 실수를 할 경우, 그것을 말 그대로 실수로 받아들일 줄 아는 관대함을 발휘해야 한다. 성급한 일반화는 금물이지만 요즘 2~30대 친구들은 작은 질책에도 상처를 쉽게 받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상호 존중은 필수 덕목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직했던 그녀는 그곳에서 이틀만 일하고 그만뒀다고 했다. 동료 중 한 명이 그녀와 동갑이고 출퇴근이 같은 방향이어서 개인적으로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그 친구를 통해 그녀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그곳의 책임자가 수시로 폭언을 일삼아서 들고 나는 인원이 평소에도 많았다고 한다. 근무 여건 또한 이곳보다 열악한 데다 상급자의 태도에 실망을 했는지 빠른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그녀는 이곳을 떠날 때 문자로 나에게 그동안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갔는데, 안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지는 않았는지 그만둔 뒤 나에게 따로 연락을 주지는 않았다.

 

 그녀가 이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번의 선택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판단할 식견 또한 없다. 또한 그 매장 책임자의 폭언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있겠지만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도 처음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누가 봐도 직원에게 불합리함을 강요하는 매장인데 손님으로 미어터지는 곳이 있는 반면, 일도 많이 바쁘지 않고 직원 간의 팀워크도 좋은데 수시로 사람이 들락날락하는 매장도 있는 게 모순 같지만 현실이다. 안타깝지만 그 속사정들을 내가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부디 그녀의 다음 선택지가 성공적이길 빈다. 꼰대 같은 말이지만 잠시 방황을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그 경험을 발판 삼아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녀를 포함하여 이곳을 스쳐 간, 아니 함께 머물렀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친구들에게 보내는 내 바람이다. 그리고 그건 이미 퇴물이 되었지만 용기를 내어 다시 요리를 시작한 아직은 현역인 중년의 나에게 보내는 바람이기도 하다. 한 영화의 대사가 생각난다. ‘희망은 없어도 힘을 내길!’

 

 

수상 소감 ∞∞∞∞∞∞∞∞∞∞∞∞∞∞∞∞∞∞∞∞∞∞∞∞∞∞∞∞

 

 12월은 1년 중 식당이 가장 바쁜 시기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곳도 이런저런 모임을 하는 손님들로 점심 저녁 가리지 않고 북적거리는 중입니다. 글에서 썼던 ‘이 평화가 얼마나 갈지 나도 모른다’ 했던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면 반년 동안 열심히 일해 주었던 동료 한 명이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성실하고 능력 있는 동료여서 그 빈자리가 무척 크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한다는 말에 저는 진심으로 동료의 앞날을 응원해 주었습니다. 그 친구라면 새로운 곳에 가서도 인정받는 요리사, 믿음직한 동료가 될 거라 확신합니다.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저에겐 앞으로 더 이상 그런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곳에서 자리보전을 하며 후임자들의 앞길을 막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두렵고 불안하지만 조만간 좋든 싫든 거취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할 시기가 올 것 같습니다.

 

 수상했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 부끄러웠습니다. 공모전에 낼 글을 써야겠다 생각한 순간부터 이번에는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과정에 충실하자고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되돌아보아도 글을 쓰는 동안 스스로 납득할 만큼 충실한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을 교훈 삼아 앞으로는 더 이상 과정에서 부끄러운 글을 쓰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쓴다’는 어떤 작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다가올 2024년,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저 또한 제가 마주한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고 희망이 없더라도 묵묵히 견디며 조금씩이라도 써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도 변함없이 <작은책> 독자로서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작은책>을 만들어 주시는 그리고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의 건강을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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