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읽기

[장려상] ‘나’이지만, 천천히…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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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생활글 공모전 수상작
장려상

 

‘나’이지만, 천천히…

최숙하

 


 22살에 한 수도권 대학의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곳은 비장애인 학생들도 살고 있는 여자 기숙사 건물에 마련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현관과 화장실에는 높은 턱이 없어서 전동휠체어에 탄 채 방으로 들어가 생활할 수 있었다. 화장실에도 안전 손잡이가 있어 혼자 휠체어 발판을 올리고 안전 손잡이를 잡고 서서 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대소변을 보고 난 뒤에는 ‘혼자서’ 뒤처리를 할 수 있었다. 샤워나 머리를 감고 빨리 옷 입기와 신발을 신는 건 그 당시의 활동지원사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이 도와줬지만,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매일 아침, 휠체어에 타기 위해 침대에서 가로로 엎드려서 다리를 조금 내려 발을 발판에 올리고 팔 힘으로 윗몸을 일으켜 앉은 뒤에 침대 오른쪽 팔걸이가 올라간 채 놓인 전동휠체어에 엉덩이를 걸치고 발과 다리로 버티며 전동휠체어 조이스틱 컨트롤러가 있는 왼쪽 팔걸이를 잡고 몸을 기댄 채 엉덩이를 조금씩 움직여 앉을 수 있었고, 밤에 침대에 누울 때는 발판에 발을 올려놓은 상태에서 오른쪽 팔걸이에 붙은 버튼을 눌러 올리고 윗몸을 침대에 엎드린 채 다리를 옮기고 누웠다. 온종일 휠체어에서 몸에 힘을 주고 돌아다녀서 피로가 쌓인 탓인지 다리와 골반과 발이 저려서 잠을 설쳤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장애가 심해진 건지 걱정은 되었지만, 초·중·고를 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에서만 공부하다가 20대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비장애인 학생들과 수업을 들으며 강의실을 옮겨 다녔고 책에 밑줄을 긋고 공부하며 학교에 적응하느라 재활 운동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주말이나 방학 때는 기숙사를 나와 부모님이 돼지를 키우며 살고 있는 슬레이트집에서 지냈다. 돼지를 키우는 사람이 많은 마을에 있었기에 늘 주변에 파리가 들끓었고 돼지 똥 냄새가 났다. 문을 열어 집 안으로 들어가면 시멘트 바닥이 보였다. 왼쪽에 갈색 신발장이 보였고, 시멘트 바닥 가운데에 신발 여러 켤레가 놓였다. 시멘트 바닥인 현관 앞에는 높은 턱이 있어서 거실 겸 부엌에 가려면 이 높은 턱을 지나야 했다. 거실 겸 부엌의 왼쪽에는 문이 있었는데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한지가 덧대어진 나무로 된 미닫이문을 열면 작은방과 안방이 있었다. 나는 작은방에서 엄마와 둘이 잤다. 두 사람이 겨우 누울 만한 방이었다. 침대 대신 전기장판이 세로로 깔렸고 위에 이불이 덮였다. 집에 제대로 된 화장실도 없어서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요강에 소변을 누거나 밖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에서 대변을 눴다. 나는 자연히 휠체어처럼 생긴 이동식 변기에 앉아서 대소변을 봐야 했다. 공간이 좁고 턱이 있는 집에서는 운동도 할 수 없었고 살이 찌면서 바닥을 짚고 혼자 앉을 수도 없게 되었다. 아침과 저녁에는 누워 있는 채로 기다리면 엄마나 아버지가 일으켜 주고 눕혀 주었기에 네발로 기는 자세를 할 기회조차 줄어들었다. 그저 이동식 변기에 앉아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부모님과 살던 집에서 이동식 변기에 앉아 있지 않고 바닥에 엎드려 있던 날이 있었다. 갑자기 대변이 마려웠고 이동식 변기에 앉으려면 책상을 잡고 서야 해서 네발로 앞으로 기어가 다리를 구부리고 윗몸을 올리려고 했지만 다리는 뻣뻣했고 양쪽 팔은 펴지지 않았고 윗몸은 계속 바닥에 닿아 있었다. 무릎과 팔이 너무 아파 소리치며 울다가 결국 바지에 대변을 쌌고 또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른 가족들은 볼일을 보러 나가고 그때 나를 도와준 사람은 아버지였다. 나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샤워해야 했다. 아버지의 억센 손이 나를 씻길 때 그 손이 싫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언제까지 뻣뻣한 몸으로 이렇게….'

 

 학년이 올라가면서 차츰 기숙사 생활 또한 힘들어졌다. 아침이면 침대에서 가로로 엎드려 다리를 조금 내릴 수는 있었지만, 몸이 기우뚱하고 넘어져 침대에서 혼자 몸을 일으킬 수 없었고 누군가가 일으켜 줘야 했다. 다리가 뻣뻣해 내 손으로 발판에 발을 올릴 수 없었고 누군가가 내 발목을 잡고 발판에 발을 올려 줘야 했다. 그렇게 발판에 발을 올린 후에는 좌석에 엉덩이를 걸칠 때도 넘어지지 않게 윗몸을 잡아 줘야 했고 이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불어난 몸무게로 인해 종종 발판이 망가졌고 어떻게 망가질지 몰라 이 자세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됐다. 이때부터 침대에 누울 때도 무릎을 굽히지 못하고 윗몸만 간신히 침대 쪽으로 숙인 채 다른 사람에게 다리를 올려 달라고 도움을 청해야 했다. 화장실에서도 안전 손잡이를 잡고 서서 바지와 팬티를 내릴 때 몸을 가누지 못했고, 다리에도 힘이 빠져 자꾸만 휘청거렸다. 혼자 침대에 눕고 휠체어에 앉고 휠체어에 탄 상태에서 창문 틈이나 안전 손잡이를 잡고 설 수는 있었지만, 휠체어에서 미끄러지고 몸이 바닥으로 떨어져 휠체어에 앉기 위해 다리를 굽혀 네발로 기는 자세를 하려고 무릎을 구부리면 엄청난 통증으로 인해 아팠다. 어찌어찌해서 무릎을 굽혀도 팔을 펴고 윗몸을 올릴 수 없었다. 나는 그때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점점 혼자 할 수 있는 일들도 조금씩 줄어갔다. 내가 만약 재활 운동에 더 신경을 썼더라면…, 달라졌을까?

 

 장애가 심하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던 내가 대학 졸업 후 7년이 지난 지금까지 할 수 있는 일은 장애인 재택근무뿐이었다. SNS 게시물을 공유하거나 SNS에 회사를 홍보했고 엑셀 파일에 검색한 기사의 제목과 인터넷 주소와 출처를 기록하고 대기업의 유튜브 영상 내용을 요약하고 교육자료를 정리하는 단순노동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고 싶은 책을 살 수 있는 것 외에 이 일은 나에게 의미가 없었다.

 

 나는 지금 수도권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아침에 눈 뜨면 천천히 몸을 가로로 엎드린 뒤에 침대에서 활동지원사 선생님이나 엄마의 도움을 받아 몸을 일으켜 의자 발판을 지탱해 주는 행어 브래킷에 다리를 걸친 뒤 손으로 팔걸이 잡아 엉덩이를 옮기고 위로 올라간 팔걸이를 내리고 몸이 미끄러지거나 넘어지지 않게 허리를 세운다. 샤워하고 난 뒤에 아침 9시부터 하루 네 시간씩 재택근무하며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1년 전부터 활동지원사 선생님이 도와준 덕에 다이어트를 하며 살이 빠지고 있고 앞으로는 자주 밖으로 나가서 세상을 보려고 무장애 여행 여행지를 다룬 책도 읽고 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거실의 안전 손잡이를 잡고 서서 운동도 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벌써 햇수로 6년째 한 장애인 야학에서 소설가 선생님에게 글쓰기 강의를 듣고 있기도 하다. 지난 몇 년간 내 모든 이야기를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 내가 가진 환상에 대해서만 글을 쓰곤 했다. 2020년 말에야 나에게 있었던 일과 내가 느꼈던 감정과 내 가족과 내 사랑과 내 생활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진짜 ‘나’에 관해 쓸 용기가 생긴 것이었다. 소설가 선생님의 ‘사람마다 사는 게 다르다’라는 조언에 조금씩 힘을 내고 있다. 글 쓰는 사람이 되려면 앞으로 해야 하는 게 많고 아직도 두렵지만, 이제는 그냥 내 감정에 솔직하면 된다는 걸 알기에…. 평생 휠체어에 의지하며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살아갈 ‘나’이지만, 천천히…, 살아가고 있다. 

 


수상 소감 ∞∞∞∞∞∞∞∞∞∞∞∞∞∞∞∞∞∞∞∞∞∞∞∞∞∞∞∞

 나는 만으로 32살의 뇌성마비 장애 여성이자 계약직 노동자이다. 지난 7년간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가 일하는 시간이다. 처음엔 경제적 자립을 꿈꾸며 일했지만, 점차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가 생겼다. 그렇지만 장애인 야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듣게 되고 <작은책>을 알게 되면서 내 삶이 바뀌었다. 노동자와 투쟁, 인간의 살아갈 권리 등을 <작은책>이 내게 알려 줬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눈물이 났고 그들의 투쟁과 노력으로 세상이 변화되고 있는 보고 용기를 내어 글을 써 보기로 했다.

 공모전에 글을 보내고 상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내가 상을 받게 된다니…. 믿을 수 없다.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슬플 때 함께 울어 주고 권리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 함께 외치는 <작은책>을 응원하며 이들이 가는 길에 힘을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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