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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 한 접시.

이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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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 한 접시.


 며칠 전 박근혜가 탄핵되던 날, "한 잔 해야 하지 않겠냐?" 했더니 마누라가 흔쾌히 안주를 준비해 주었다. 걸쭉한 순두부찌개에다 꼬막 한 접시였다. 삶는 법을 새로 배웠다면서 권하기에 한 점 먹어 봤더니 맛이 기가 막혔다. 만 원 어치 한 접시를 그 자리에서 홀라당 다 먹어 치웠다. 마누라는 옆에 서서 내가 손 안대고 젓가락으로 집어 먹기 좋도록 계속 꼬막을 까 주었다. 쏘주 한 잔에 꼬막 한 개. 덕분에 잘 먹었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전에도 꼬막을 먹을 때면 항상 그래 왔던 일이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누군가 "신사임당하고 사냐?"고 묻는다. 신사임당. 대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 우리나라 현모양처의 상징. 최고액 현찰 5만원권의 주인공.

 사임당 신인선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명하고 어질고 착한 여인의 표상이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기가 센 여인이었다고도 한다. 남편 이원수와의 사이도 그리 좋지 않았다 한다. 혼인 당시 이원수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그저 근근이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사는 형편. 강릉 지방에서 행세깨나 했던 친정을 배경으로 둘째 딸이 구박받지 않고 편히 살 수 있는 남편감을 골라 준 것일 수도 있다. 남존여비의 유교 질서에서 그나마 돈이라도 있어야 큰소리 치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모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기록을 보면 이 시기 중세 조선에서는 이렇게 딸에게도 부모의 재산을 공평하게 또는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한 밑천 뚝 떼어주던 것이 유행이었던 듯하다. 여러 사료에 이런 예가 나온다. 이걸 두고 어떤 이는 "조선이 남녀가 평등한 사회였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일부 상류층에서 남아나는 것이 재산이고 돈이니 딸자식도 자식인지라 시집가서 주눅 들어 살지 말라고 한움큼 쥐어 주던 것일 뿐이다. 자식 수대로 나누어도 다들 먹고 살 만큼 부가 넘쳐 났던 것이다. 산과 들, 강을 경계로 소유권을 나누었다 하지 않던가? 지금도 재벌들이 딸에게 기업체 몇 개씩 뚝뚝 갈라 주고 있으니 다 그런 식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조선사회가 남녀평등? 그건 유학, 유교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는 말과 같다. 여성의 지위는 고려가 훨씬 더 높은 수준이었다.

 유교, 유학의 핵심은 엄격한 수직적 상하관계에 있다. 이 구도, 각자가 처해 있는 범위를 철저히 잘 지키는 것이 세상 질서가 유지되는 근본이라고 본다. 그들이 늘상 이야기하는 인()은 각자의 영역 안에서만 인정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자는 남자의 역할 여자는 여자의 역할 양반은 양반대로 노예는 노예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벗어나는 것은 천륜을 어기는 것이고 대역이 되어 삼족을 멸해 왔다. 통치 질서가 붕괴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남녀평등? 어림없는 소리다

 유교의 논리구조가 얼마나 치밀한지 한 가지만 보도록 하자. 우리가 많이 쓰는 용어 중에 '형제자매(兄弟姉妹)'란 말이 있다. 이 단어의 맨 처음에 나오는 형()은 남성중에서 연장자이고 두번째 제()는 남성 중 년소자를 뜻한다. 그 다음이 자(), 남성보다 손위 즉 나이가 더 많은 여성을 말하고 마지막 매()는 손아래 여성을 뜻한다. 그래서 매형이 아니고 자형이 맞는 말이다. '형제자매'란 말은 단순히 한 부모에게서 나온 자식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먼저이고 여성은 나중, 나이 많은 사람이 우선이라는 유교적 봉건질서가 깊게 배어 있는 말인 것이다. 한두개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고 있는 말의 상당 부분이 이런 순서를 갖고 있다.

 요즘 여성들이 힘들다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사를 한 번 들여다보자. 유교적 질서에 의하면 3품관 이상의 고위 관리는 증조부모까지 3, 6품관 이상은 조부모까지 2, 7품관 이하 서민은 부모 제사만 지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고려 정몽주의 제례 규정에 나오는 얘기다. 제후인 왕은 4대조까지, 황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해동 육룡이 나라샤'로 시작하는 용비어천가에 보면 목조·익조·도조·환조를 노래하고 있다. 태조 이성계의 4대조까지를 추존하는 것인데 왕이 되었기 때문에 4대조까지를 높이는 것이다. 조선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지금의 조선호텔 자리에, 하늘에 제사 지내는 환구단을 지었다. 이는 제후인 왕에서 하늘에 직접 제사를 지낼 수 있는 황제가 되었다는 것을 만방에 선포한 것이다. 북경에 있는 천단을 흉내 낸 것이기도 하다. 일제가 이 자리에 철도호텔을 지어 환구단을 없애 버렸다. 철도호텔이 지금의 조선호텔이다. 현재 조선호텔 한 귀퉁이에 황궁우와 돌로 된 북 몇 개가 남아 있다. 조광조를 비롯한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이 왕에게 소격서를 혁파하라고 그렇게 난리를 친 것도 제후인 왕은 하늘에 제사 지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던 것이다. 고려 때부터 유지되었던 소격서는 왕이 직접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이다

 지금 우리가 4대조까지 제사 지내는 것이 맞냐 5대조까지가 맞냐를 따지는 것은 이렇듯 다 유교 질서에서 온 것이다. 가정의례준칙의 영향도 있지만 억압 받으며 한이 맺혔던 양반에 대한 동경도 있다. 3, 4대까지 제사를 지내니 우리도 양반이다 뭐 이런 뜻. 유교적 봉건질서는 이렇듯 집요하다. 그 안에 남녀평등은 없다. 여성은 그저 대를 잇기 위한 생산의 도구일 뿐이다. 제사 자체가 수직적 상하관계를 사후에까지 연장 시키려는 꼼수 아닌가?

 이런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 의미 없다. 대대로 보고 배운 것을 뿌리치기 어려운 것뿐이다. 어렸을 때의 교육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누군가는 유교를 버려야 나라가 산다고 했다. 지금 수구꼴통들이 전교조를 죽이고 역사를 왜곡하려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수구꼴통만 그런가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진보진영의 조직체로 노동조합이 있다. 입만 열면 얘기하는 것이 '노동해방'이다. 그런데 그 노동해방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 노동시간 단축을 계속해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이 노동해방일까? 노동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재화가 나오고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자들은 자본가 계급 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노동운동은 자본가 계급을 지향하는가? 자본가 계급이 되려고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민주노총을 만들었던가? '노동해방'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잉여'의 개념을 모르고는 이해할 수 없는 철학적 사고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 그런 것 없이 집행권력에 대한 욕심만으로는 아무리 해도 술 먹고 호형호제해 표 많이 얻는 것이 노동조합 활동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포퓰리즘, 대중영합, 떼거리 요구라는 욕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내용을 채우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학습하고 실천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 그런 자들이 노동조합의 지도자연 한다. 자리만 보기 때문이다. 수직적 관계에서 높은 곳에서 명령만 내리고 대접만 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철학이 없고 고민이 없다. 노동해방, 백날 외쳐봐야 자신들도 모르는 걸 어떻게 해방시키냐는 말이다

 이것은 삶의 태도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고민과 번뇌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늘 달고 다니는 삶의 필수품이어야 한다. 어떤 스님은 "다 버리라!"고 하지만 그 역시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인 것이다.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늘 숙고하고 성찰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인간답게 살 수 없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시민단체가 스무 곳이다. 인간답게 살려는 노력 중 하나이다. 그 와중에 그래도 대기업에 다닌다고 동네 후배들이 돈을 좀 꿔달라 하는 경우가 있다. 오죽하면 그럴까 싶어 적은 돈이라도 능력이 되는 한도 내에서 도와주려 노력한다. 이제 한계에 와 있다. 엊그제 가입한 정당에서는 당비 말고 특별당비를 더 내라고 해 흔쾌히 그러마고 했었는데 다시 또 더 내란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쓴 돈이 너무 많아서 그렇단다. 마누라와 상의했다. 내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아무리 대기업에 다닌다고는 하지만 나는 차를 파는 영업사원에 불과하다. 조카같은 고객들에게 "사장님, 사장님" 굽신거리며 버는 돈이다. 언제 짤릴지 몰라 늘 불안해하는 삶이다. 우리 회사 직원들 가운데 맞벌이를 해 돈이 많은 사람들은 특별당비를 펑펑 낼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이제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 그거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인간사 모든 문제의 출발이 바로 돈 때문 아니던가? 능력되는 만큼만 소비하고 아니면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조직 역시 마찬가지다. 당을 지도 집행하는 간부들의 고뇌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번에는 내지 않겠다 했다. 이번에 내면 다음번에는 선거 치러야 한다고 내라 하고 뭐 한다고 또 내라 할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것도 더 많은 금액으로 말이다. 아직 당에 대한 애착도 없는 사람에게 말이다. 마누라는 자기도 나가서 돈 벌어오겠다 한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10만원짜리 선물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후원금 보내고 할 수 있는 일 찾아 노력해 왔다. 내 주변은, 골프와 해외여행, 명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년말정산을 위해 종교단체에 내는 기부금 말고 시민단체에 후원금 한 푼 내는 사람 보지 못했다. 벌벌 떤다. 거기에 휩쓸리지 않으려 늘 긴장하고 있다. 인간답게 살려는 노력이다. 분명 삶의 철학과 관계가 있다

 마누라와 나는 이렇게 살아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녀는 결혼 후 25,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사지 못하면서도 후원금 내는 것에 인색한 적이 없었다. 한 번도 뭐라 하지 않았다. 보석이며 치장하는 것에 도통 관심이 없다. 여자인데 왜 그런 것에 눈이 가지 않겠는가? 형편에 맞게 살려는 노력일 뿐이다. 이런 나를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는 마누라가 어여쁠 뿐이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만으로도 나는 고맙다.

 특별당비 더 내라는 말에 복잡한 심경이 되어 몇 자 적어 보았다. 선뜻 그러겠다고 하지 못하는 변명을 좀 하고 싶었다. 그녀가 수줍게 내미는 꼬막 한 접시를 맛있게 먹으며 든 생각이다. ? 그냥 가만 놔두어도 잘 사는 사람이다!

  • 작은책 이양훈 님 안녕하세요. 투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연락드리겟습니다. 2016-12-22 10:17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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