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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고, 너는 아들이야.

윤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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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인 나는 1969년생이며, 아들은 1991년생이다. 우리 부자의 나이 차는 22살이다. 22살의 나이 차는 한 세대로서 많은 것을 공유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위치는 분명 존재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선배처럼 아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친구도 선배도 아닌 어쩔수 없는 아버지였다. 대학 신입생에서 군대로, 대학을 졸업한 이후 사회생활(아르바이트) 그리고 취직까지 10년이 걸렸다. 쉽게 뽑힐것 같은 흔들리는 나무가 조금씩 뿌리를 내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다. 가슴 졸이며 지켜봤던 아들의 20대(20살 ~ 30살)를 기록해본다.

(브런치에 14개 꼭지의 글이 있습니다. 20개로 마무리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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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아버지고, 너는 아들이야.

 대학 신입생 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 친구가 생겼다. 2학기 기숙사에 들어가는 날, 학교 주차장에서 나는 여자 친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먼저 도착한 여자 친구는 주차장에서 짐을 내리다 우연히 만난 나에게 인사를 했다.  여자 친구는 나이에 어울리는 싱그럼움과 구르는 낙엽에도 해맑게 웃을 줄 아는 청량한 학생이었다.    

“언제부터야?”

“1 학기 때 같이 수업 듣고, 과제하면서 친구 하기로 했지.”

“그냥 친구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예쁘다.”

“예쁘지, 그래서 말인데 용돈 좀 올려주면 안 돼? 돈이 없어서 온종일 걷기만 해. 다리 아파 죽겠어.”

“잘 생각했어. 능력이 없으면 체력으로 데이트해야지. 열심히 걸어.”    

 

 학교 앞 식당에서 아들과 저녁을 먹었다. 아들은 쉼 없이 고기를 먹는 중에도 용돈 인상에 관한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주장을 펼쳤다. 나는 어느 정도 아들의 주장을 인정해 용돈을 소폭 인상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들은 소폭 인상에 아쉬움이 남는 눈치였다.    

“용돈을 버는 쉬운 방법이 있는데, 알려줄까?”

“나도 아르바이트하고 있거든, 더 이상 아르바이트하면 성적은 포기해야 해.”

“아르바이트하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너 여자 친구랑 데이트한 이야기를 해주면, 내가 들어보고 재미있으면 청취료를 줄게. 돈 벌기 얼마나 쉽니? 그냥 데이트한 이야기를 하면 돈을 준다는데 완전 꿀이지.”

“아빠, 변태야. 왜 아들 데이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해?”

“ 스무살의 사랑, 얼마나 풋풋할까? 궁금해서 그런다. 싫으면 관두고.”

“얼마 줄 건데?”

“이야기에 따라 다르지, 일단 기본요금은 만원이고, 재미있으면 금액이 올라갑니다.”

“이야기 다 듣고 무조건 재미없다고 하면 만원이잖아.”

“아빠가 그렇게까지 양아치는 아니지. 예를 들어 첫 키스 같은 간질간질한 이야기를 하면 기본 오만 원에 서사와 묘사에 따라 금액은 더 올라갈 가능성은 충분하지. 특히 묘사가 중요해.”    

 아들은 눈을 반짝이며, 벌떡 일어나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왜? 너 삼겹살 좋아하잖아. 더 먹어.”

“먹을 만큼 먹었어. 간질간질한 이야기를 하려면 분위기가 중요하거든. 나의 첫 키스 이야기를 삼겹살집에서 하기는 싫어. 요 앞에 조용한 호프집 있어. 분명히 말하는데 아빠, 양아치 짓 하면 나 가만 안 있는다.”    

 

 학교 앞 나름의 분위기 있는 호프집에서 아들은 오백 한 잔을 한숨에 들이켰다.    

“술도 못하면서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첫 키스 이야기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안 했거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사귀기로 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어.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기숙사 점호시간이 돼서 기숙사로 같이 올라갔지. 아빠도 알다시피 기숙사가 산꼭대기에 있잖아. 걸어 올라가는 길이 조금 무섭거든. 여자 혼자 가기가 만만하지 않아.”

“말씀하는데 죄송하지만 재생속도를 조금만 높여주세요. 1.25나 1.5 정도로 부탁드립니다.”

“제 이야기에 끼어들지 말아 주십시오. 다시 분위기 잡기 어렵습니다. 주의해 주십시오.”

“주의하겠습니다.”

“기숙사 올라가는 중간쯤에 딱 쉬기 좋은 벤츠가 나와. 거기에 앉으면 학교도 다 보이고, 멀리 시내도  보이는 야경이 좋은 곳이지. 우리 둘은 언제나 그랬듯이 거기에 앉아 야경을 감상했어. 그때 분위기가 키스를 하자고 하면 할 것 같은 느낌이 살짝 들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슬쩍 손을 잡았어. 손을 잡으니까 나를 쳐다보는 거야. 그래서 그냥 물어봤지, “키스해도 괜찮아?” 그랬더니 그 아이가 눈을 감는 거야. 그래서 첫 키스를 했지. 끝.”

“끝? 내가 그랬지. 서사와 묘사가 중요하고, 그중 묘사에 점수를 많이 주겠다고. 이건 묘사는커녕 서사도 엉성하고, 만원도 아깝다.”

“양아치 짓 안 한다며, 오만 원 줘.”

“왜 그런 거 있잖아. 첫 키스의 떨림. 그런 이야기를 해야 오만 원이지.”

“알았어, 그럼 다시 이어서 할게. 그 아이가 눈을 감는 거야. 그리고 입술을 살짝 벌렸어. 아랫입술이 살짝 떨리는 것이 보였어. 나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고개를 돌려 다가갔지. 그 아이의 떨리는 아랫입술이…. 여기까지입니다. 더 듣고 싶으면 액수를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이 새끼가 진짜 양아치네. 드라마야? 왜 끊어? 중간 광고야?”

“그러니까 얼마냐고?”

“알았다. 일단, 삼만 원 확보. 중간에 한 번 더 끊으면 만원도 안 준다.”

“알았어. 그 아이 입술에 점점 다가가다 입술이 만나는 순간, 나는 눈을 감았지. 그리고 키스를 했지. 그런데 문제는 언제까지 키스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키스를 하는데 내 콧소리는 또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창피하기도 하고, 살짝 눈을 떠볼까,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어쩌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

“보통 첫 키스는 종소리가 들리고, 하늘을 날고 그러는 건데.” 

“아빠는 첫 키스에 종소리가 들리고, 하늘을 날고 그랬어?”

“미안하다.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그 아이가 살짝 고개를 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도 고개를 뺐지. 고개를 빼고 눈을 떠야 하나 망설이다 실눈을 뜨고 바라보니까 그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야.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눈감고, 입 벌리고, 아마 침까지 흘리지 않았나 몰라? 아무튼, 잽싸게 고개를 돌려서 야경을 바라봤지. 굉장히 어색해지고,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는 거야. 그래서 한동안 그냥 손을 꼭 잡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야경을 감상했지. 끝. 얼마야?”

“조금 아쉽고, 주작 냄새가 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오만 원, 콜?” 

“콜. 오만 원 주시고, 그런데 주작 냄새가 좀 났지?”

“그래도 백 퍼센트 주작은 아닌 것 같으니까 오만 원 준다.”

“백 퍼센트 주작은 아니고, 구십구 퍼센트 주작이지.” 

“구십구 퍼센트? 너 진짜 양아치네. 난 아빠고 넌 아들이야. 어디서 아빠에게 사기를 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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