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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암으로 죽을 수 있다(2)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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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는 동생이 생선찜을 사와서 맛나게 먹었다. 식사하는 동안은 아무도 오빠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부모님을 집으로 보내고 동생과 제부와 같이 술을 마시면서 오빠 일을 꺼냈다.

언니야, 부모님이 부산에서 양양으로 급하게 이사를 해서 진짜 잘됐어. 지금 부산에서 두 분이 계셨다면 얼마나 힘들었겠어. 오빠가 뭔 말을 들어야지. 입원하는 과정에도 아버지 보고 자긴 안 죽는다고 소리치고. 정말 언니는 대단해. 오빠랑 어쩜 그렇게 화내지 않고 대화를 하냐? 화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쩔 수 없어. 진짜 천안은 답이 없다.”

나는 너와 제부에게 고마워. 앞으로 양양은 부모님을 전담하고, 나는 천안을 전담하는 걸로 하자.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같이 하더라도. 일단 선택과 집중을 하자. 앞으로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제부 정말 고마워.” 제부는 아이들끼리 놀면서도 혹시나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을까봐 조심해서 묻는다. “누님, 정말 그렇게 심각합니까? 요즘 암도 치료가 잘 되지 않습니까?”

나는 결과가 나와야 정확하게 알겠지만, 지금 오빠가 물도 제대로 못 넘기는 것을 보면, 많이 심각해 보인다고 했다.

엄마, 민호오빠가 미워. 왕솔이 오빠하고만 놀고, 나랑은 안 놀아줘.” 7살 민하가 엉엉 울면서 엄마에게 와서 오빠들의 만행을 고한다. 나는 여기 5살 안나가 있다면, 민하와 잘 놀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양양동생과 천안오빠가 1시간 거리에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다. 홍성에 막내 여동생이 살고 있지만 막내는 20살 넘어 입양을 했다. 오빠나 홍성동생이나 서로 좀 부담스럽다. 오빠는 누구에게나 부담스럽지. 아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아쉽다. 양양은 집에 티비와 장난감이 없어도 아이들이 잘 논다.

원래는 화요일 천안으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나는 하루 더 양양에서 쉬고, 천안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왕솔이는 양양에 두고 간다. 나는 열심히 왕솔이에게 양양 고모 집과 할아버지 집 주소를 외우게 했다. 민호는 형답게 왕솔이에게 주소와 집 비밀번호까지 적은 메모를 줬다. 동생 부부가 출근하고, 낮에 부모님이 돌볼 아이들이 많아 걱정이 됐지만, 왕솔이가 집에서 휴대폰과 티비만 보는 것보다 잠깐이라도 양양에서 지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새벽 4시 화장실을 갔다가 다시 잠자리에 누웠는데 눈물이 흘렀다.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떻게든 살아가게 된다. 토닥토닥. 8시 제부와 동생이 출근을 하고 아이들 밥을 먹이는데 왕솔이는 밥 먹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왕솔이는 앞니가 없기 때문이다. 왕솔이 3살에 치과에 가서 앞니 4개를 발치했다. 유치의 충치가 심해 영구치까지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치과치료를 꼭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치료가 수면마취를 해서 아주 위험했다. 왕솔이가 치료받은 어린이 치과는 3달 후 7살 아이의 사망으로 9시 뉴스에 나왔다.

왕솔이 치과치료를 할 때, 새언니는 만삭이었다. 치과에서 아이패드를 주고 치료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했다. 나는 새언니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 힘든 과정을 지켜보는 걸 그대로 뒀다. 그 이유는 어떤 말보다 이 경험이 앞으로 태어날 둘째는 다르게 키우겠지 하는 바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마음뿐. 오랫동안 오빠와 새언니에게 치아관리의 중요성, 무엇보다 사탕과 탄산음료, 주스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들 부부는 듣지 않았다. 나는 조카들을 보면 속상하니까 안 만나는 것으로 했다. 한 번씩 새언니가 올리는 페이스북 동영상과 사진을 보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걸로 끝냈다. 7월 초 동영상만 해도 가족이 랍스터를 사먹는 거였다. 아마도 코로나19로 긴급지원비를 받아서 쓴 거겠지만, 이게 마지막 가족회식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내게 로또 당첨번호를 확인해달고 만원치 로또를 보여줬다. 당연히 모두 꽝이다. 아버지에게 로또를 구입하더라도 천원만 그냥 재미로 하시라고 말했다. 지금 아버지 로또가 어떤 의미인지 알아 속상했다. 어머니는 천안에 있는 집을 처분해서 오빠 치료비로 쓰고, 부산에 있는 집을 오빠가 살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 나도 산 아래 있는 부산집이 오빠가 요양하고 살기에는 천안보다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은 어떻게든 오빠가 이 상황을 잘 견뎌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나는 부모님께 다시 힘줘서 말했다.

엄마, 아빠, 제가 오빠를 전담해서 돌볼게요. 그런데 여기서 엄마, 아빠까지 아프시면 제가 너무 힘들어요. 그러니까 두 분은 우리를 생각해서라도 더 건강을 챙기세요. 그리고 지금처럼 아니 앞으로 더 많이 하느님께 기도해요.”

그래. 기도해야지. 사베리오는 괜찮아. 좋아질 거야.” 어제의 불안을 떨어낸 아버지는 믿음으로 자식을 치유할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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