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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일하는 사람들 - 가장 낮은 곳

백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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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용돈벌이 삼아 일용직 노동자로 일한 적이 있다. 일명 '막일'. 일이 힘들어 그리 오래 하진 않았지만, 막일을 하며 경험하고 느낀 게 많다.

막일을 하기 위해선 먼저 인력사무소를 찾아야 한다. 막일의 첫 단계다. 하지만 인력사무소를 거치게 되면 품삯이 줄어들게 된다. 인력사무소가 수수료를 때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간혹 가다 인력사무소를 거치지 않고 자신들만의 모임을 만들어 직접 일거리를 가져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인력사무소를 거친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품삯은 인력사무소를 거치게 되면 7~8만 원 정도를 받고, 그렇지 않으면 원금인 10만 원을 받는다.

나는 인력사무소를 통해서 막일을 했다. 인력사무소에서는 '쓸만한' 사람들을 추려 그룹을 나눠 놓는다. 여기서 '쓸만한'이란, 장기근속할 것 같은 사람, 힘 좀 쓸 것 같은 사람을 뜻한다. 그다음은 새벽부터 사람들을 차에 실어 영일 신항만, 포스코 현대제철소 등의 현장으로 옮긴다. 사실 현장의 형태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데 내가 작업했던 현장은 제철소나, 항만 같은 곳이었다. 거기에 일거리가 없으면 공사판에서 작업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런 현장에 오전 6~7시쯤 도착하면, 잠시 몸을 녹이며 간단한 작업지시를 받는다. 그렇게 쉬다가 현장으로 가서 작업을 개시한다.


                                       


고된 노동이 두렵다가도 작업을 시작하면 몸이 어느 정도 적응을 한다. 그렇게 작업을 하다 보면 같은 그룹 안에서도 서열이 나뉜다. 인력사무소에게 일을 맡긴 사측은 관리직 직원(정규직)을 끼워 넣어 일용직들을 감독하게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관리직과 일용직 사이의 괴리가 생기게 되고, 일용직은 관리직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깐깐한 관리직에게 찍히기라도 하면 그날은 두배로 고생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일용직 사이에서도 짬밥에 따라 서열이 생긴다. 막일을 오랫동안, 꾸준히 했을수록 에이스 대접을 받게 된다. 다양하고 위험한 작업을 오랜 기간 동안 섭렵해온 사람이기 때문에 배정된 그룹에서 인정받는 것이다. 

정오쯤 점심시간이 되면 일용직들에겐 편의점 도시락 비슷한 걸 손에 쥐여 준다. 그러고는 땅바닥에 앉아 다 같이 먹는다. 일용직 노동자에게는 식당이란 게 없다. 일용직들 에겐 점심시간 주고 밥 주면 그걸로 된 거다. 관리직들은 식당에서 식사하고, 휴게실에서 쉴 수도 있다. 작업 시간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들의 점심시간은 막일꾼들의 세계가 적확한 계급사회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작업을 재개하면 너나 할 거 없이 다들 늘어진다. 땀 흘리고 먹은 점심은 식곤증을 부르기 마련이다. 그 시간이 되면 관리직들은 눈치 봐가며 일용직들에게 휴식 시간을 준다. 그때 연장 쥔 손으로 땀을 닦아가며 마시는 물은 천상의 맛이다. 그 뒤 작업을 대충 정리하고 오후 4시쯤 일이 끝나면 먼지를 털어내고 관리직들 몰래 함께 담배를 태운다. 이 때는 알 수 없는 동료애가 싹트며, 노동의 참맛을 함께 나눈다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고된 노동을 하루 이틀 함께 하다 보면 처음 만난 동료들과도 가까워지게 되어 있다.


함께 일했던 이들은 용돈벌이 삼아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막일을 자신의 ‘생업’으로 삼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정규직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들고 위험한 일들을 배정받는다. 그러다 보면 부러지고, 깨지는 부상은 물론이거니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는 이들이 생겨난다. 하지만 그들의 부상과 죽음을 그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다. 일용직 노동자가 되기 전에 안전교육을 받게 되어있지만, 막상 사고가 생기게 되면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결국 그 책임소재가 일용직 개인에게 떠넘겨진다. 산업재해보험이 있긴 하지만 일용직이라는 이유로 급여가 깎이기도 하고 그마저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과 함께 하다 보니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막일하는 사람들의 삶이 궁핍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고,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았으면 하는 측은지심이 들었다. '사회의 시선은 이렇듯 가장 낮은 곳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을 향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었다.모두가 이들을 외면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나도 그 집단에 속해 있다 생각하니 비참했다. 막일을 하는 동안 나는 그들과 동화되었던 듯 하다.하지만 늘 그래 왔듯 이 세상을 바꾸겠다는 다짐을 하며 훗날을 기약했다.

#아르바이트 #노동 #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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