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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어떤 때인데 노조 패싱이라니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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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시대가 어떤 때인데 노조 패싱이라니

 

정민규/ 금속노조 시흥안산지역지회 한국와이퍼분회 수석부분회장

 


2022년 7월 7일 아침. 두통이 너무 심하다. 출근은 했지만 두통 때문에 모니터를 볼 수가 없다. 교섭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상황은 아니라 분회장님께 말씀드리고 조퇴를 했다.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자고 싶었다. 침대에 누운 지 한 시간이 지났을까? 막 잠이 들 찰나 전화가 울린다. 임진호 사무장이다.

“네, 사무장님….”

“수석… 회사가 긴급히 보자고 하네? 일단 수석 빼고 참석하기로 했어.”

“알겠습니다. 다시 출근합니다.”

사측이 요구한 긴급회의에는 참석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머리가 여전히 깨질 듯 아프다. 아마도… 우리가 예측한 ‘그것’이겠지…?

 

현장에 도착하니 좁은 구내식당에 주간 조 조합원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었다. 시흥안산지역 정현철 지회장님까지 오셔서 조합원들에게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신다.

"회사는 작년에 만든 고용협약서 때문에 절대 노조의 동의 없이 청산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한국와이퍼분회 조합원들을 흔들어서 희망퇴직을 유도하려는 계획으로 보이니 침착하시고 이 위기 역시 잘 넘어가도록 합시다.”

매주 금요일 한국와이퍼분회 조합원들은 경기 화성시의 덴소코리아 앞에서 거점 투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_ 한국와이퍼분회

 

그렇다. 지난 3년간 사측의 폐업 시나리오를 알아채고 한국와이퍼 동지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열심히 투쟁했지만 결국 회사는 ‘청산’을 발표하였다. 
사측은 2022년 12월 31일 영업을 종료한다고 발표하며 조합원들에게 조기퇴직 계약서에 서명하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했다. 그 내용은 조기퇴직에 서명하고 12월 31일까지 생산에 협조하며 민·형사상 소송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과 함께 이를 위반할 시 위로금은 없다는 노예 계약서였다. 청산에 대한 위로금이라면 전 조합원에게 지급하는 것이 당연한데 법적인 권리를 포기해야만 지급이 된다? 납득할 수 없다.

 

또한 같은 날 주주 회사인 덴소가 소유한 덴소코리아 와이퍼사업부를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와이퍼는 자동차 앞유리에 붙어 있는 ‘암’과 유리를 닦는 교체용 ‘블레이드’ 그리고 와이퍼를 구동시키는 ‘모터’, 그 모터와 암을 결합하는 ‘링케이지’ 이렇게 4가지 부품이 결합해서 현대에 납품되는데 ‘암’과 ‘블레이드’를 생산하는 우리 한국와이퍼는 청산이고 ‘모터’와 ‘링케이지’를 생산하는 덴소코리아 와이퍼사업부는 매각이라니? 이는 곧 우리가 생산하는 ‘암’과 ‘블레이드’는 다른 곳에서 생산하겠다는 말 아닌가? 바꿔 말하면 한국와이퍼는 단순하게 적자로 인한 청산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덴소코리아보다 낮은 연봉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인건비 문제는 아니다. 전 조합원 고용 보장이라는 부담? 우리는 분명 회사의 영속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그 과정에 부득이한 구조조정이라면 합의한다고 협약서에 명시했다. 품질? 한국와이퍼의 품질 대응이 경쟁사와 비교에 우위에 있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품질, 인건비, 인원의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그 정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무노조 경영’

덴소코리아 와이퍼사업부를 매각할 예정인 회사의 경영 철학이다. 물론 표면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매각처라 사명을 공개할 수 없지만 애프터마켓을 제외한 완성차에 납품되는 와이퍼 시장은 좁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다. 지금 시대가 어떤 때인데 노조 패싱이라니…. 국내 기업들의 노동자를 보는 시각이 이 정도 수준이구나 하는 생각에 답답함이 밀려온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우리는 우리의 싸움을 시작한다. 

지난 7월 7일 사측의 일방적인 청산 발표에 반발해 노동자들은 공장 내에 항의 문구를 붙였다. 사진 제공_ 한국와이퍼분회

 

7월 7일 사측이 일방적인 청산을 발표한 후 우리는 “청산, 공장 이전, 폐업 등의 경우 노조와 반드시 합의한다”라는 고용협약서 내용을 근거로 하여 여러 차례 청산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노예 계약서와 다름없는 조기퇴직제도 철회를 요구하고 무엇보다 이 모든 상황이 우리 한국와이퍼 노조와 합의 없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노조 패싱과 고용합의 파기를 규탄하는 집회를 진행하였다.

 

2022년 투쟁은 그동안 한국와이퍼 투쟁을 지지하는 많은 단체에서 함께해 주신다고 결의하였다. 경기지부 총파업도 한국와이퍼 집중 투쟁으로 전개하였고 앞으로 있을 대규모 집회의 중심에 한국와이퍼가 있다.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 발의를 위한 국회 토론회도 참석해 여러 국회의원들의 지지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와이퍼의 문제가 우리의 고용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땅에서 말도 안 되는 지원과 혜택을 받고 상황이 조금만 바뀌면 국내 노동자들의 삶은 무시하고 어떠한 제재도 없이 공장 철수해 버리는 외국 투자자본의 행태를 저지하는 투쟁으로 총력을 다하고 있다.

 

2022년 투쟁에서는 현대차에 항의하는 투쟁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기업과 대등한 위치에서 교섭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하고 합법적인 행위가 바로 쟁의행위이다. 우리는 쟁의행위를 통해 합법적인 파업으로 사측의 일방적인 청산 진행을 막고 단협에 의거해서 정상적인 교섭을 하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분명 재고는 바닥나고 현대차에 납품할 제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에는 지금도 한국와이퍼에서 생산하던 와이퍼 납품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주주 회사인 덴소가 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어디선가 대체 생산을 가동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단협 위반이지만 ‘선행 생산’이라는 말장난을 하며 현재 한국와이퍼에서의 생산은 중지해 버렸다. 교섭에서 한국와이퍼 경영진은 ‘선행 생산’에 대해 전혀 관여하거나 아는 바가 없다고 대답한다. 한국와이퍼는 생산을 하지 않지만 한국와이퍼 이름으로 납품이 된다? 웃기지 않는가? 과연 이런 상황이 고객사인 현대차의 승인 없이 가능한 일일까?

금속노조 경기지부 집단 교섭 대표들이 한국와이퍼 사장실 앞에서 항의 집회하는 모습이다. 한국와이퍼는 집단 교섭에 독단적으로 불참하고 있다. 사진 제공_ 한국와이퍼분회

 

한국와이퍼 투쟁은 계속 진행 중이다. 우리는 지난 3년간 열심히 준비해 왔다. 외투자본의 만행을 끊어 내고 현대차 역시 책임질 수 있게 만드는 투쟁을 우리 한국와이퍼가 할 것이다. 이 땅의 모든 노동자가 정당한 권리를 찾고 기업의 횡포에 굴하지 않는 당당한 모습으로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것에 한국와이퍼 투쟁이 보탬이 될 것임을 확신하며 이 글을 읽고 있는 <작은책> 독자님들도 한국와이퍼의 투쟁에 지지를 부탁드린다.

 

* 포털 창에서 ‘한국와이퍼’를 검색하시면 상황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민주노총 유튜브 채널에도 한국와이퍼 소식이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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