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읽기

엄마는 왜 아파요?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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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엄마는 왜 아파요?

이소정(가명)/ 삼성전자 전 근무자. 직업병 당사자

 

“야야, 이야기 들었다. 잘됐다, 잘됐어. 우리 친척 중에 하나도 거 들어가서 집 사고 차 사고 시집 잘 가서 지금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야. 거 들어가는 거 그렇게 어렵다더니 니가 착하게 살아서 그런갑다. 거 가서 돈 많이 벌고 누구보다 잘 살면 되는 거여. 요즘은 대학 나와도 아무 소용 없어. 잘 살면 되는 거여.”

졸업식보다 빠른 나의 입사 소식에 친구의 어머니는 누구보다 기뻐해 주셨다. 삼성. 20년 전의 이야기가 된 그 시작. 이제는 나의 아이에게 해 줘야 할 이야기가 되어 돌아왔다.

“엄마는 왜 아파요?”

몸이 자주 아픈 내게 어느덧 커 버린 아이가 질문을 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옛 동료에게 물었더니, 이런 말이 돌아왔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줘. 아이들은 이해할 거야. 네가 아픈 것보다 엄마가 옆에 있다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가 가난해서, 공부를 많이 못 해서 아프게 되었어. 그러니 엄마처럼 병원 자주 가지 않고 아프지 않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해.”

 

공부를 하라고 한 말이 아닌데, 하는 혼란과 나로 인해 아이들이 아플 수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커져 가고 있을 때, 이 책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희정, 오월의봄)이 나올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그 안의 이야기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고,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나 때문에 아프지는 않을까. 엄마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수군대지 않을까. 커서 왜 낳았냐며 원망하지는 않을까. 내가 모르는 병들이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나타나지 않을까. 여러 생각을 하며 책을 펼치지 못했다. 그래도 혹시나 무언가를 알게 되지 않을까 싶어 펼친 책에서 이 문구가 먼저 들어왔다.

“과학적으로는 정자가 난자보다 더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을 위험이 크다고 한다.”(199p)

내가 알고 있던 ‘상식’과는 전혀 다른 처음 듣는 이야기. 한참을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온전히 엄마들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 거구나.

“왜 몰랐죠? 몰랐던 게 너무 바보 같은데.”(177p)

너무 어려 배울 수 없었던 일에 대해서 우리는 자신의 선택을 원망하게 되었다.

“기업은 모를 만한 사람을 뽑아 일을 시키고, 알아도 어찌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고, 알면서도 모른 척하도록 길들인다.”(122p)

그때의 나는 회사가 원하는 착하고 ‘무지’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 ‘무지’로 인해 모성애라는 감정은 아픈 엄마라는 죄의식이 되었고 사랑으로 채워져야 할 자리는 미안함의 자리가 되었다. 아직까지 답을 찾지 못한 나는 이 죄책감을 다른 이들은 어떻게 견뎠을까 묻고 싶어졌다.

“엄마가 어려서 삼성을 다니게 돼서 너를 이렇게 낳았고, 아프게 됐다고 ‘정말 미안하다’ 했더니. 애가 ‘아니에요, 엄마. 낳아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하더라고요.”(87p)

동진 씨와 미선 씨의 그 대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지방에 사는 나는 아이를 맡아 줄 사람이 없기에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았고, 병원에 갈 때마다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를 힘들게 하는 어른이 되었다.


“엄마랑 병원에 가는 거 안 힘들어?”

“안 힘들어요.”

아이는 “엄마랑 같이 가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아이의 말에, 엄마들이 왜 나서게 되었는지 자식을 앞세운다는 엇나간 시선들을 맞설 수 있는지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가 아프든, 아프지 않든 아이들의 존재가 힘이 되어 준다는 사실 말이다.

“아픈 건 엄마 아빠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니야.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어.”(87p)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아프든, 아프지 않든 존재 자체가 큰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 역시.

 

이제서야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들이 생긴 것 같다. 어떤 일을 겪을 때 무지해도 괜찮다고, 다만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생각해 보라고.

“문제를 문제로 여기는 사람만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자기주장을 할 수 있으니까요.”(241p)

이 책을 덮으려는 순간 작가의 글을 보았다.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어. 이 말을 보고,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가 ‘나의 잘못’이 아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359p)

 

아이들의 모든 원인은 엄마에게 있다 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가가 말해 주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일했다고 우리들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작가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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