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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헬기는 무엇을 실어 날랐나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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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그날 헬기는 무엇을 실어 날랐나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사무국장 

 

“일단 숨어.” “우산으로라도 막아 봐.” “비닐 날아가잖아, 꽉 잡아.” “경찰특공대다. 뭐라도 던져.” “바람이 너무 강해. 이러다 그냥 날아가겠어.” 

다급했다. 서로를 향해 지르는 요란한 말이 헬기 굉음에 노이즈캔슬링이 된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흡사 방백하는 배우처럼 목청 높여 고래고래 고함질러도 프로펠러 소리가 순식간에 빨아 먹고 윙윙거리는 헬기 원음만 토사물이 되어 공장 옥상을 뒤덮었다. 개업식 날 고객 끄는 인형처럼 헬기 바람에 팔다리가 휘적거린다. 급기야 헬기에서 패스트로프로 경찰특공대가 공장 옥상에 쏟아져 내렸다. 배틀그라운드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눈앞에서 구현되고 있었다.

 

2009년 8월 4일, 파업 노동자들이 위치한 도장공장 옥상으로 최루액을 퍼붓는 경찰 헬기. 사진 제공_ 노동과세계

 

헬기는 낮고 강했으며 집요했다. 본격적인 진압이 있기 보름 전부터는 발암물질이 가득 담긴 노란 최루액을 하얀 비닐봉지에 담아 요격하듯 파업하는 동료 머리를 노려 때렸다. 대퇴부와 종아리 그리고 어깨가 시뻘겋게 벗겨지고 진물이 났다. 치료할 새도 없이 우산으로도 막아 보고 깨진 스티로폼 조각으로 버텼지만 소용이 없다. 스트로폼은 눈 녹듯 녹아 버렸고 진물 위에 화상 자국이 선명했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노란 최루액은 2급 발암물질인 디클로로메탄이 주요 성분이다.

 

“왜 이렇게 빨리 죽냐. 이제 겨우 오십이고 좋은 날이 한창인데….” “아이고 억울해서 어떻게 이렇게 가냐 가기를….” 

장례식장을 나서는데 동료들의 말이 뒷목을 잡아챘다. 지난 7월, 석 달을 쓰러져 있다가 끝끝내 사망한 동료가 있다. 지난 2009년 파업 현장을 함께하고, 그 뜨겁던 햇살보다 더 많은 최루액을 함께 맞았던 형이다. 갑자기 쓰러졌다는 공통점이 있는 이가 올해만 벌써 세 번째고, 그 가운데 두 명은 이미 사망했으며 한 명은 6개월째 사경을 헤매고 있다. 이들의 죽음과 쓰러짐이 2009년 진압당한 파업과 강력한 연결고리가 있다 주장하면 억지일까. 쌍용자동차에 근무하는 3100명 가운데 암 환자가 180명이 넘는다는 사실 자체도 진압당한 파업과 관련이 없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쌍용차 파업이 끝난 지 13년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이 파업과 죽음에 대한 사회적 부검이나 프로파일링은 이뤄지지 않았다. 돌연사와 자연사 그 경계 어디쯤에 쌍용차 파업이 존재했던 팩트는 움직이지 않는데. 왜 이런 지경까지 끝없이 우리만 내몰리게 되는 것인가. 왜 유독 우리만 파업 후유증이 이토록 모질게 달라붙어 다닐까. 이 짧은 생각에 잠길 새도 없이 눈앞에 120억 넘는 손해배상액이 다가오는 첫 겨울보다 먼저 오고 있다.

 

경찰청이 2009년 파업으로 노조에 청구한 손배금액이 13년에 걸쳐 27억 원이 되었다. 이에 지난 8월 30일 쌍용자동차지부는 경찰의 손배소송 취하를 요구하는 당사자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_ 이창근

 

경찰이 쌍용차 해고자에게 청구한 손해배상액이 27억을 넘어섰다. 회사가 금속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손배 금액도 100억 가까이 불어났지만 일단 논외로 두자. 국가 손배 그러니까 경찰이 청구한 손배 금액은 2011년 당시 11억 7천만 원이었다. 법정이자 5퍼센트와 민사소송촉진법상 이자 20퍼센트가 덧붙여지니 27억이 되었다. 문제는 이 금액이 무엇에 대한 손해배상이냐는 건데, 헬기와 기중기 파손에 대한 책임이란다. 불법적인 진압 무기 훼손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특히나 2009년은 어떤 해인가. 이명박 정권이 2009년 1월 용산 학살로 최대의 위기를 맞았던 시기와 겹친다. 실정 숨기려고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뒤집어씌우고 누명 씌우기에 혈안이 되었던 시기와 일치한다. 헬기가 얼마나 낮게 날았기에 주 날개와 꼬리날개 그리고 운전석 유리창이 파손됐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시간 헬기가 실어 나른 것은 무엇이길래 그토록 오래도록 집요하게 우리를 괴롭혔을까. 발암물질 가득한 최루액 20만 톤과 중무장한 경찰특공대와 테이저 건과 고무 총탄을 비롯해 온갖 대테러 장비를 가득 실은 시커먼 컨테이너 박스였다. 이것은 정당한 공무인가. 이런 활동이 합법이기는 한 걸까.

 

경찰청으로부터 손배 청구를 당한 한 조합원이 소송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_ 이창근

 

2019년 민갑룡 경찰청장은 2009년 쌍용차 진압 작전에 대해 경찰을 대표해 사과했다. 그러나 불법 진압을 인정하고도 어떤 후속 조치도 없는 맨입 사과에 그쳤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모든 일이 이런 식이었다. 최근 대우조선하청지회 파업 이후 손배 가압류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른바 ‘노란봉투법’ 통과 의지가 어느 때보다 높다. 감사한 일이지만 쌍용차는 현재의 흐름이 성과를 낸다 한들 어떤 변화도 없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117명이 대법원에 낸 소 취하 결의서도 여전히 맥을 못 춘다. 어쩌면 좋나. 어떻게 하면 이 암담한 상황에서 작은 빛이라도 찾을 수 있나. 그래서 다시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말 못 하는 헬기와 뛰지 못하는 기중기에 대한 손해배상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시위 진압 한답시고 법에도 없는 장갑차 투입해 놓고 장갑차 백미러 깨졌다고 피해 금액을 시위대에게 청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쌍용차가 지금 딱 이 경우다. 폭탄처럼 커져 가는 손배 금액에 정말이지 쓰러질 지경이다.

 

우리는 피해 입었다 주장하는 파손된 경찰 헬기와 기중기를 찾고 싶다. 사진 자료 하나 없이 법원에서 인정된 그 실체를 알고 싶다. 이명박 정권이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과 폭력으로 매도하고 뒤집어씌우려 했던 그 모든 사실을 알아야겠다. 해당 수리비 견적서는 제대로 책정된 것인지, 헬기의 각종 부품 교체 주기는 또 어떻게 되는지 모조리 알아야겠다. 파손된 헬기를 직접 수리하고 교체한 작업자는 누구였으며 파손된 주 날개와 꼬리날개는 현재 어디에 어떻게 보관되어 있는지, 특히나 그날 우리를 죽음의 공포 문턱까지 밀어 넣었던 그 헬기와 기중기는 지금 어디서 어떤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파손했다는 사람을 특정하지도 못한 채, 모두를 뭉뚱그려 공동정범으로 몰아넣었던 그 진실을 알고 싶다. 경찰은 어떤 이유에서 사진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는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경찰이 사과를 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이 개탄스러운 현실 위에서 작은 진실의 조각이라도 꼭 찾아야겠다. 

 

“아빠, 선배 가압류? 뭐야, 그게?” “선배를 왜 가둬? 하하하~”

기자와 통화를 마쳤더니 고1 아이가 농담 삼아 묻는다. 경상도 사투리 때문인지, 손배가 선배로 들렸나 보다. 웃어야 하지만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해고 8년 만에 복직하고 그동안 실질적 가장인 아내 덕에 작은 아파트 한 채 있는 것이 전부인데, 손배 가압류 떨어지면 우리는 또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거리에서 삼십 대 푸른 청춘을 날려 먹었다. 더 이상 우리가 날려 먹을 청춘도 시간도 없다. 숱하게 싸우는 노동자들이 일산화탄소 같은 손배 가압류에 영혼과 육체가 잠식되어 시름시름 허물어져 가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 그래서 그날 우리 머리 위를 저공으로 비행하고 최루액을 뿌리고 고무 총탄과 경찰특공대를 끝없이 실어 날랐던 그놈의 헬기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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