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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의사'가 내게 주는 것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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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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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의사'가 내게 주는 것


문정주/ 의사, 《뚜벅뚜벅 이탈리아 공공의료》 저자


2014년까지 십 년간 나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에서 우리나라 공공병원을 평가하고 지원하는 연구원으로 일했다. ‘공공의료 강화’가 목적인 뜻있는 정책 사업이지만 실은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습관처럼 바라보는, 그런 점에서 매우 미약한 일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의료는 ‘시장형 환경’에 갇혀 수익 논리에 지배당한다. 의료를 마치 상품처럼 거래해 의료기관이 얻는 수익과 의료적 성과를 동일시하며 공공성은 주변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정부가 관리하는 국민건강보험이 있어도 그 역할은 환자를 대신해 의료비를 내주는 데 머무를 뿐 시장형 환경을 바꾸지는 못한다. 시장에서 승자는 사립병원이다. 건강보험이 정한 진료비가 너무 박하다 하면서도 사립병원들은 규모를 키우고 숫자도 늘린다. 반면에 공공병원은 비효율적인 조직, 가난한 사람이 가는 곳으로 여겨지면서 전체 병원 중 겨우 5퍼센트인 미미한 숫자에서 늘지 않는다. 정부가 공공의료를 강화하려는 정책도 그저 명맥을 잇는 데도 버거운 상태로, 변화가 절실하다.


그래서 외국 의료제도를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우리와 다른 것을 알려 사람들과 함께 변화를 모색하고 싶었다. ‘전혀 다른’ 제도를 알리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싶어 이탈리아의 국영의료를 선택했다.
 

처음에 관심은 주로 병원에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병원이 어떠하며 여건이나 기능에서 우리나라 병원과 차이가 무엇인지 보여 주려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국영의료제도를 이해하게 될수록, 관심의 초점이 바뀌었다. 제도적 기반이 일차의료에 있음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의료 운영에 책임을 지고 누구에게나 예방과 치료와 재활의 전 범위에 걸쳐 의료를 제공’하는 국영의료에서 중심은 바로, 사람들이 동네에서 가볍게 상담하고 진료받는 일상생활 속 의료였다. 첨단 시설을 갖춘 큰 병원과 유명한 전문의가 많지만, 각 사람에게는 가까이에서 일차의료를 제공하는 가정의의 역할이 크다. 그래서 이탈리아 북부의 피에몬테주에서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가정의의 활동을 한 주간 견학해, 이번 글에 그 일부를 소개하려 한다.


긴 상담


이탈리아 일차의료 의원은 우리나라 개인 의원과 많은 점에서 다르다. 커다란 간판이 없고, 하루에 두서너 시간만 문을 열고, 복잡한 기계를 들여놓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긴 상담’이다. 한 사람당 짧으면 10분에서 길면 40분을, 가정의는 환자와 대화하는 데 쓴다. 온 정신을 집중해 귀 기울여 듣고 답한다. 이럴 때 시간의 주인은, 진료실의 주인은 의사라지만, 명실공히 환자다. 환자가 묻고 싶은 것을 다 물어야, 충분한 답을 듣고 작별 인사와 함께 일어나야 상담이 끝난다. 환자에게 돈 한 푼 받지 않는 일차의료 의원에서 무엇이 이처럼 긴 상담을 가능하게 할까.


첫째는 의사와 환자가 맺은 ‘관계’다. 가정의에게 환자는 이미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 ‘잘 아는’ 사람이고 환자에게 가정의는 ‘믿을 만한’ 의사다. 집으로 왕진도 오곤 했던 그는 환자 자신을 여러모로 이해한다. 반겨 주는 가정의와 마주 앉아 환자는 거리낌 없이 이야기한다. 증세 또는 찾아온 이유, 생활환경, 검사나 치료에 관한 질문과 자기 의향, 나아가 가족의 건강 문제 등. 가정의에게는 환자의 이야기가 진찰 소견만큼이나 중요하다. 치료에 무엇을 고려할지, 생활환경이나 일터에 위험 요인이 있는지, 자가관리가 가능할지, 전문의에게 의뢰해 세부적인 진료와 검사를 받게 할지,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밑거름이 된다.

 


이와 같이 신뢰받는 의사-환자의 관계를 국영의료에서는 제도적으로 보호한다. 누구나 자기 가정의를 선택해 등록해야 국영의료 카드를 발급받고, 가정의가 처방한 치료약과 의료용품이 약국에서 무료고, 가정의가 의뢰한 검사나 전문의 진료는 병원이나 진료센터에서 약간의 본인부담금만 내고 받을 수 있다. 선택한 가정의를 언제든 바꿀 수 있으나 대부분 사람들은 거의 바꾸지 않는다. 고향에서 평생 사는 것이 보통인 이탈리아에서 의사-환자의 유대 관계는 수십 년간 이어지기도 한다.


둘째는 아플 때 쉴 수 있는 사회적 제도다. 이탈리아는 국영의료 제공에 더해 유급 병가를 국민에게 보편적 권리로 보장한다. 제조업, 서비스업, 농업, 수산업, 예술 공연 등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아프면’ 병가를 낼 수 있다. 정규직뿐 아니라 비정규직, 수습 직원도 마찬가지이며 실직했더라도 고용이 종료된 뒤 두 달 이내에 병에 걸리면 같은 보장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건강보험을 통해 의료 이용이 보장될 뿐, 유급 병가는 공무원과 일부 공공기관 직원만 받을 수 있고 일반 직장인들은 ‘업무상’ 아플 때만, 다시 말해 업무 중 다쳤거나 업무의 영향으로 병이 났을 때만 병가를 신청할 수 있다(근로기준법 제78조). 일반적인 질병으로 치료받거나 요양하려 하면 자기 연차휴가를 써야 하니 이탈리아에 견주면 국민의 권리가 크게 제한된다.


일을 쉴 수 있어야 진료받고 상담도 한다. 걱정 없이 쉴 수 있게 법으로 보장하는 나라에서 사람들은 아프면 병가를 내고 가정의를 만나 이야기도 나눈다. 불안해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시간을 넉넉히 들여 질문하고 의논한다.

 

상병증명서


어느 오후, 삼십 대로 보이는 여성이 어딘지 불편한 자세로 진료실에 들어온다. 두툼한 옷을 껴입었는데 평소 힘든 일을 하는지 손이 거칠다. 허리가 아프다며 진찰받고는 무언가를 부탁한다. 처방전을 쓰던 가정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 앞으로 옮겨 앉아 뭔가를 작성한다. 온라인 ‘상병증명서’다. 환자 이름, 주소, 병명, 예상되는 요양 기간 등이 입력된다. 가정의가 국립사회보장공단에 이 증명서를 보내면 환자가 유급 병가를 인정받고 상병수당을 지급받는다. 발병한 지 4일부터 20일까지 임금의 절반, 21일부터 180일까지 임금의 3분의 2가 지급된다.


상병수당은 유럽에서 사회보장의 기본이다. 19세기에 노동자는 장시간 일하고도 겨우 푼돈을 임금으로 받았다. 다치거나 아파서 일하러 나가지 못하면 당장 생계비가 떨어져 어린 딸을 성냥팔이에 내보내기도 했으니, 1845년에 출간된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가 당시 노동자 가정의 절망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 뒤 1880년대에 최초로 독일에서 아픈 노동자에게 생계비로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가 시행돼 빈곤 가구의 생계를 보호했다. 20세기 들어 의학이 고도화하면서 국가가 직접 의료를 제공하거나 의료비를 보장하는 의료보장이 발전하게 되었는데, 병을 앓는 노동자에게 생계비가 필요하다는 데는 변함이 없어 상병수당도 유지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공적 재원을 통해 상병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 이스라엘, 스위스, 미국뿐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무급’ 병가가 보장되고 스위스와 이스라엘은 기업의 재원으로 노동자에게 유급 병가를 주도록 국가가 규제하므로 전혀 제도를 갖추지 못한 나라는 실제로 우리뿐이다.


상병수당이 없는 나라에서 살아왔으니 내가 상병증명서 발급 광경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놀랐던 것은 X선 촬영이든 혈액검사든 아무런 검사 없이, 아무런 증빙 자료도 없이, 가정의가 직접 써넣는 문구로만 증명서가 완성된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 효력을 갖는 문서가 되려면 거의 예외 없이, 의사의 진찰 소견이나 판단에 더해 진단검사를 시행하고 결과서를 첨부하게 하는 것과 달랐다. 가정의에 대한 사회적 신뢰, 일차의료에 대한 법적 신뢰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당신의 담당 의사에게 가세요


‘상병수당을 어떻게 받을 수 있나’라는 제목으로 게시된 이탈리아 국립사회보장공단의 안내문 첫 줄에 이렇게 쓰여 있다. “당신의 담당 의사에게 가세요.” 내 담당 의사, 우리식으로 바꿔 말하면 ‘우리 의사’다. 우리에게도 ‘우리 의사’가 있게 되기를, 아픈 사람이 쉴 수 있고 아플 때 ‘믿을 만한 의사’를 만나 긴 상담을 받는 여유가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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