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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공공간호사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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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공공간호사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향춘/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본부장

 

 간호사들은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투쟁 중이다. 2015년 메르스 때도 그랬고 작년 코로나19 발생 후부터 공공 병상 확충과 감염 병동 인력 기준 마련을 요구했지만 1년 반이 지나도록 정부는 제대로 된 방안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공공 병상을 확충했지만 문재인 정부에는 입원할 병상이 없어 집에서 대기하던 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간호사를 포함한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은 언제든 환자를 치료할 수 있게 인력 충원을 통한 준비를 요구했지만 수용하지 않았다. 작년 대구 확진자 발생 때처럼 정부와 간호협회는 다시 구인 광고를 낼 것인가? 그때처럼 근무 중인 병원을 뒤로하고 전국에서 간호사들이 몰려오고, 유휴 간호사들이 다시 병원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보는 것인지…. 최근 정부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코로나19 파견 의료진들 중 6개월 이상 된 인력은 다른 민간 인력으로 교체하라’는 공문을 보내 비난을 받았다. 올 초 두 번이나 임금 체 불도 했는데 업무 효율성 운운하며 팬데믹 최전선에서 온몸을 다해 방어선을 친 의료진에게 밥줄을 끊겠다고 한 것이다. 

 

 정부는 만성적인 간호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간호대 정원 확대, 지역 공공 장학생 제도 등 정책을 내놨다. 간호사 면허 소지자는 늘었지만 배출된 만큼 사직하거나 아예 전직 하는 바람에 간호사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한국은 OECD 평균보다 2배나 높은 40만 명의 간호사들이 면허를 가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간호사들은 18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간호사 면허 소지자는 많지만 병원 현장에서 실제 간호사로 일하는 사람들은 1/2밖에 되지 않는다. 취업하기 힘든 시대에 간호사들은 왜 직장을 떠날까? 취업을 준비한 기간보다 병원에 취업하여 머문 기간이 오히려 더 짧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 간호사는 미국에 비해 종합병원급 3배 이상, 병원 급 8배 이상의 환자를 보고 있다. 재원 기간은 짧고, 환자 중 증도는 높고, 인력 충원은 없는 상태에서 간호사들은 자신의 뼈와 살을 갈아 넣으며 일하다가 결국 소진(번아웃)된 상태에서 병원을 그만둔다. 신규 간호사는 ‘태움’과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응급 사직을 하거나 버티다가 병원을 떠난다. 숙련도 높은 경력직 간호사는 본인 담당 환자를 보면서 신규 간호사 교육까지 하는 등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지쳐 떠난다. 간호대 정원 확대로 매년 배출되는 신규 간호사가 일정 기간 사직 자리를 대체하다가 그만두는 악순환이 자꾸 발생하고 있다.

 

 지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역 의료기관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 낮은 처우에 간호대 졸업생들은 수도권으로 몰리고, 그로 인해 지역 의료기관에서는 간호사를 구할 수가 없어 일부 병동은 문을 닫기도 한다. 그런데도 정부와 병원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엉뚱한 정책만 펼치고 있다. 바로 지역공공간호사 법안이다. 작년 코로나 상황 시 계명대 동산병원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의료봉사를 한 인연으로 비례 1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최연숙 계명대 동산병원 간호부 원장이 지역공공간호사 법안을 입법했다. 법안 취지는 ‘지역의 부족한 간호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지역공공간호사 법안은 간호대학에 지역공공 간호사 선발 전형을 두고 선발된 학생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하되, 의료인 면허 취득 후 5년 동안 특정 지역의 공공보건의료기관에서 의무 복무하게 하며, 의무 복무 위반 시 지급받은 장학금을 반납하게 하고 의무 복무 미이행 기간 동안 의료인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이다. 

 

 지역에서 공부하고 지역에 기반을 둔 간호사들이 왜 수도권으로 몰리는지, 50퍼센트의 간호사가 왜 5년도 안 되어 그만두는지, 40만 면허 소지자 중 절반은 아예 현장을 떠났는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 없이 내놓은 정부 정책은 계속 실패 해 왔다. 간호사는 지역으로 갈수록 더 낮은 임금과 처우를 견디며 일해야 한다. 의사, 약사와 달리 간호사는 지역으로 갈수록 임금 수준이 낮아지며 심지어는 체불하는 공공병원도 있다.

지난 6월 23일 청와대 앞에서 의료연대본부와 행동하는 간호사회가 최연숙 의원이 발의한 지역공공간호사제법안 폐기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_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지 못하고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들을 억지로 붙들어 두겠다는 지역공공간호사 법안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학생을 장학금으로 유인한 뒤, 면허 취소로 협박하여 열악한 노동을 강제하는 반인권적인 법안이다. 심지어 이 제도에 지원하게 될 고등학생, 수험생 대부분은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노동조건을 전혀 모른 채 대학 장학금과 취업까지 보장해 준다는 허울에 속아 지원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신규 간호사 절반 이상이 1년 내에 그만두는 현실에서 의무 복무 5년을 채우지 않으면 간호사 면허까지 박탈하겠다는 법안은 간호사들에게 열악한 노동조건, 인력 부족, 직장 내 괴롭힘, 각종 건강 문제 등이 있어도 참고 버티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임금 체불이 반복되고, 담당하는 환자 수가 수도권이나 타 병원에 비해 많은 열악한 근무조건인 공공의료기관의 간호사 처우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 없는 상태에서 이 법은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지원하는 간호사가 없어 일부 병동이 폐쇄되는 지역 공공의료기관에 간호사 인력이 자동적으로 수급된다면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해 병원은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지역 간호사의 노동환경은 더 열악해질 것이고 5년을 버티기도 힘들지만 장학금 반납과 면허권 박탈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틴다고 해도 5년이 지나면 지역에 남아 있을 간호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지역공공간호사 법안은 모든 간호사의 처우를 더욱 나쁘게 만들고 지역에서 외부로 계속 간호사들이 유출되는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킬 뿐만 아니라 지역 공공의료서비스의 질을 악화시킬 악법이기 때문에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간호사들은 코로나 1년 반이 넘도록 거리에서, 일하는 일터에서 이런 상황을 알려 내며 인력 충원을 통해 의료서비스 질을 높일 것을 요구했다. 근무시간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업무량을 줄이고, 간호사 1인당 담당할 환자 수를 줄여 제대로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법제화할 것을 요구했다. 언제까지 ‘간호사 갈아 넣기’로 쥐어짤 것인가?

 

 간호 인력 부족은 간호사를 위험에 빠트리고 환자 생명과 치료 기간, 안전에 많은 인과관계가 있음을 수많은 연구 논문이 말해 주고 있다. 안전한 병원을 만들어 환자도 안전하고 간호사도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도록 간호 인력 배치 기준을 세워야 한다. 최소한의 간호사 배치 기준도 지키지 않는 병원이 있다면 강력히 처벌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응원보다는 공공 병상 확충과 간호사 인력 배치 기준을 마련하여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나지 않고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차 대유행으로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겨우 주먹으로 막고 있는 댐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협박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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