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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선생님의 황당한 계획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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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변산 일기

 

윤구병 선생님의 황당한 계획


안건모/ <작은책> 전 발행인, 《삐딱한 글쓰기》 《싸움의 품격》 저자


오늘은 9월 7일 화요일, 윤구병 선생님이 사 준 예초기로 논둑에 난 잡초를 제거하러 갈까 했는데 또 비가 온다. 그동안 땡볕에 김매는 일이 힘들었지만 하루 종일 하는 것도 아니니 할 만했다. 그런데 며칠 동안 비가 와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밭을 다시 갈아서 또 다른 작물을 심어야 하는데 비가 와서 밭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 벼도 쨍쨍한 가을 햇살을 받아야 하는데 계속 비가 내리거나 구름이 끼고 흐린 날이 이어져 햇살을 못 받고 있다. 벼 이삭이 패지 못하고 병들지나 않을까 공동체 식구들은 걱정이 많다.

 

마늘을 심는 변산공동체 식구들과 학생들.


내가 이곳에 온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그동안 공동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이제 조금 파악이 된다. 변산공동체 학생은 여섯 명밖에 없다. 가장 어린 중2 나이인 15살이 네 명, 고1, 고2 나이인 학생이 두 명이다. 그리고 청년들이 네 명인데 이곳에서 숙식하면서 ‘공동체식구’로 사는 청년은 둘밖에 없다. 그리고 나머지는 ‘어깨식구’라고 한다. 그 청년들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일하고 금토일은 이곳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왔다가 떠났다. 가장 많을 때는 학생 수가 20여 명, 어른 청년들이 40여 명, 모두 60여 명이 되는 때도 있었다. 다들 공동체에서 재미있게 살려고 왔는데 왜 떠났을까. 그렇게 많던 청년들이 하나둘 떠나고 남은 청년이 두 명이라니,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안건모 전 발행인과 변산공동체 학생들이 바둑을 두고 있다.

 

내가 여기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윤구병 선생님이 식당에 자주 오셨다. 나하고 바둑을 둔 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경기도 파주에 조성해 놓은 ‘평화마을’ 이야기도 해 주셨다. 나는, 변산공동체가 조금 침체돼 있는데 더 활기차게 살려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윤 선생님은 변산공동체도 이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말이 오간 뒤, 어느 날 윤구병 선생님이 회의를 하자고 했다. 회의할 사람이 젊은 청년 이명기 변산공동체 대표, 현재 공동체 살림을 떠맡다시피 한 달님, 두 사람뿐이다. 윤구병 선생님이 나도 참석하라고 했다. 식당에 앉은 자리에서 윤 선생님은 공책에 손 글씨로 쓴 ‘변산공동체 청년 농부 양성 프로그램’이라는 글을 보여 주셨다. 
 

그 글에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목적’과 ‘사업’에 관해 자세히 쓰여 있었다. 윤 선생님은 ‘주곡 자급’이라는 경제적 토대의 안정 없이는 ‘외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따라서 독립국가의 유지가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셨다. 그래서 ‘나라 살리기는 농촌 살리기가 최우선이라는 목적 아래 변산공동체가 남북 청년 농부 양성을 현실화하려는 뜻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강조하셨다.
 

사업 내용 중에는 수익 사업에 중점을 둔 계획이 많았다. 약초 효소, 젓갈, 감식초, 생약차와 호박 과자, 연근 과자, 둥글레 과자 들을 생산해 팔겠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도 약초 효소를 만들어 직거래로 팔았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그 효소를 식품안전법에 맞게 시설을 다시 갖추어 생산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생산노동’은 하루에 4시간, 주 5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 너무 황당했다. 시골, 특히 변산공동체에서 그게 가능할까. 아니, 청년들이 없는데 누가 이런 일을 한다는 말일까.


“어때요?” 윤 선생님이 물었다. 나는 이런 계획을 초안도 없이 몇 글자도 안 틀리게 공책에 손 글씨로 정리해 놓은 걸 보면서 감탄을 했다. 하지만 ‘좋은데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음, 뭐, 선생님이 하시는 일은 늘 황당하죠. 그런 황당한 계획이 잘될 때도 있고요. 그런데 선생님, 이건 최재형 대통령 후보하고 비슷한 공약인데요?” 
 

“뭐가?” 
 

“계획 마지막에 ‘구체적인 사항은 지자체와 협력하여 나중에 공시’, ‘구체적 프로그램은 나중에 제시’, ‘이 밖의 수익 모델은 나중에 의논 후 발표’라고 써 있는데 최재형 대통령 후보가 공약을 나중에 제시하겠다는 말하고 너무 비슷해서요. 그리고 공동체에 청년들이 올까요?”
 

내 우스갯소리에 윤 선생님이 그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알아요. 알아. 급하게 하다 보니. 하하하! 그리고 그때는 청년들에게도 기본소득 정도는 줘야죠.”


기본소득? 잘 집과 먹을 밥이 해결되고 ‘기본소득’이 있다면 올 청년들이 있겠지. 그렇다면 실현 가능한 계획이다. 그래도 하루에 4시간 노동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윤 선생님은 늘 황당한 계획을 세워 밀어붙이는 분이다. 하지만 결코 이루지 못할 공상은 아니라는 걸 안다. 실패한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도 안다. 단지 그걸 뒤에서 처리하느라 고생했던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는 게 사실이다. 설마 그게 이번엔 내가 아니겠지? 
 

며칠 뒤 다시 윤 선생님이 식당으로 오셨다. 윤 선생님은 나에게 “나는 이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에요.” 하는 말씀을 또 꺼냈다. 이번엔 그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만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윤 선생님이 덧붙였다. “그래서 모든 일을 급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어요. 며칠 뒤 이명기 대표하고 산들바다공동체를 견학하러 갑시다.” 
 

변산공동체에서 생산한 물품을 포장하는 윤구병 선생님(왼쪽)과 안건모 전 발행인.

 

그날이 내일이다. 마음이 바쁜지 아침 8시 반까지 가자고 하신다. 그러려면 빨리 자야겠다. 내일 또 무슨 일이 터지려나. 환갑이 훌쩍 넘은 나도 사실 죽을 때가 아주 멀지 않았는데, 이거 내가 이 나이에 코가 꿰이는 거 아냐? 일단 자고 내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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