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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도 이렇게 꼰대가 되는구나 싶었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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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온 소식


아, 나도 이렇게 꼰대가 되는구나 싶었다

 

곽영찬/ 입사 8년 차 LIG넥스원 선임연구원

 

나는 어릴 때부터 뭔가를 만들기 좋아했고, 남중을 거쳐 이공계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대, 군대를 다녀온 순도 99퍼센트의 연구원이다. 공부를 딱히 좋아하진 않았지만, 로봇과 설계가 재밌어서 교내 지능형 로봇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하였고 그러다 보니 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연구원이다. 난 연구가 하고 싶었고 그래서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였다.

 

2013년 봄, “LIG넥스원 최종 합격을 축하드립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기뻤다. 나도 뭔가 그럴싸한 걸 만들 수 있겠구나, 이제 내가 만든 무기가 출시되는 건가? 내가 만든 방산 제품으로 우리나라의 안보를 책임진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입사 1년 차, 출퇴근 왕복 3시간…. 결혼을 앞두고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1시까지 일을 하다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다.

 

입사 2년 차, 주 70시간을 넘기며 대전, 구미, 사천, 김해…. 열심히 졸음을 참고 내 자가용을 몰며 전국을 누볐다. 다른 팀 동료는 크리스마스 즈음 눈이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날, 출장을 가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본인 자가용이 반파 됐음에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본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일을 대신하는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 

 

입사 3년 차, 첫째가 태어났다. 회사에선 다른 사업에 문제가 생겨 TF가 꾸려졌고 난 차출되어 1년 가까이 대전과 구 미의 3만 원짜리 모텔을 잡고 생활을 했다. 주말부부가 되고 어떤 주에는 2~3주가 지나 집에 간 적도 있다. 일요일 아침, 장모님 댁에 있는 아이에게 달려가 “안녕?” 하고 인사를 했 는데 울기 시작한다. ‘아, 아이에겐 아빠가 낯설겠구나.’ 돌연 회의감이 몰려온다. 난 왜 이렇게 회사에 열정을 바쳐 일하는가? 이 책임감은 어디서 오는 건가? 내가 하는 일에서 연 구는 어디 가고 사업 관리만 남았지? 

 

입사 4년 차, 이제 이 생활이 익숙해지고, 갓 입사한 후배는 힘들어한다. “원래 그렇게 일 배우는 거야. 나 때는 더 힘 들었어.” 그 후배는 못 버티고 결국 퇴사를 했다. 아, 이렇게 나도 꼰대가 되는구나.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과연 이 회사, 괜찮은 건가? 이직 준비 가즈아!! 이력서를 작성하고 서류 전형 합격, 1차 면접을 오라고 하는데 고민이 된다. 다른 회사로 이직한다고 만족도가 올라갈까? 과연 행복해질 수 있는 건가? 더 이상 피하지만 말고, 어디로 도망가지 말고, 내가 힘들게 들어온 회사를 바꿔 볼 수는 없을까? 그래! 우리의 힘으로 회사에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노조라는 걸 만들어 보자!

 

회사 근처에 네이버 노조가 생겼다. 그곳에 연락을 해 봤다. “제가 노조를 만들어 보고 싶은데 어떻게 만드셨나요?” “아, 저희는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의 지회예요.” “아, 민주노총…. 네, 알겠습니다. 단독노조인 줄 알고 연락드렸는데….” “단독노조 설립하려면 노무사, 변호사 선임까지 직접 해야 하고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민주노총 하면 생각나는 빨간 머리띠와 집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이 정도면 나름 열심히 했다 생각하고 노조 설립 생각을 접었다. 빠른 포기였다. 사실은 겁이 났다. 통화가 끝나고 다시 단독노조 설립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2명만 있으면 노조 설립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역시 이론과 현실은 다르구나.’

 

그리고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되었다. 야근이 줄고, 으레 출근하던 주말 근무가 점점 줄어들었다. ‘이 정도면 할 만하다. 노조 그런 거 없어도 되겠네. 괜한 짓을 할 뻔했다.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입사 5년 차, 이제 나도 과장급이다. 회사는 순이익이 줄어들어 힘들다고 하고 과장급이면 이제 사업 관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연구원한테 사업 관리 업무가 맞는 건가 싶기도 한데, 사업 관리를 하다 보니 적성에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정체성에 혼란이 오고 기분이 묘하다.

 

입사 6년 차, ‘다들 이렇게 회사 생활 하는 거지 뭐. 원래 다 그렇게 사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튀지 않게 회사 생활을 하니 고과도 적절히 잘 나온다. 이 정도면 군말 없이 회사 다 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들처럼 회사 생활 하 다 진급하고 팀장 달고 그렇게 정년까지 버티면 되는 거라고 되뇐다. 튀지 말고 존버 가즈아!! 

 

그러던 어느 날, 국방과학연구소에서 폭발로 사망 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보게 된다. 한창 꿈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인데 안타깝다. LIG넥스원도 유도무기를 만드니 저런 일이 언제든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입사 7년 차, 블라인드 앱에 1차 임단협에서 사측이 말도 안 되는 임금 인상률을 제안했다더라. 얼마나 우리를 우습게 봤으면 그랬겠는가! 노조를 만들자! 내가 만들겠다!”라는 의견이 속속 나오기 시작한다. 돈을 목적으로 노조를 설립한다면, 돈이 해결된 이후 노조는 원동력을 상실하게 되고 그렇게 끝날 것이라는 걱정이 들어 민주노총 대표전화로 연락을 했다.

 

“LIG넥스원 연구원인데요, LG아니고 LIG요. 넥슨 아니고 넥스원이요. 상담 한번 받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LIG넥스원 규모라면 금속노조가 노조 설립 경험도 많고 적당해 보인다며 연결시켜 주었다. 나는 블라인드에 글을 올렸다. “저와 함께 노조 설립하실 분?”

 

닉네임만 아는 집행부의 첫 만남은 금속노조 사무실이었다. “사실 저도 노조가 뭔지 모르고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 만들려는데,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사무직 노조들과 연대를 하고자 화섬식품노조로 옮기게 되었고, 그렇게 올해 4월부터 2개월간 준비한 노조가 6월 23일 설립된다. 목표는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의사소통, 공정한 성과 보상 체계 마련, 안정적인 업무 환경 및 고용 보장을 위해 연대’ 세 가지를 걸었다.

지난 6월 화학섬유식품노조 사무실에서 찍은 초기 집행부들. 좌측부터 부지회장, 지회장, 수석부지회장, 사무장이다. 사진 제공_ LIG넥스원지회

 

난생 처음으로 홈페이지라는 걸 만들어 보고, 노조 심볼도 만들어 보고, 가입 신청서도 받아 보고, 많은 직원에게 가입 독려문이라는 것도 나눠 줬다. 글 주변이라곤 1도 없는 연구원들이 모여서 노조를 함께하자는 글을 작성하고 성과 평가에 대한 입장문도 작성하다 보니 항상 어색하고 가끔 욕도 먹는다. 노조법이라든지 단체교섭, 교섭 창구 단일화, 체크오프 등 생소한 용어가 많고 나조차도 잘 모르는 상황에 서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럴 때 면 화섬식품노조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한다. 자료를 찾아서 카드뉴스를 만들기도 하고 우리의 목표를 수립한다.

노조 활동으로 만든 카드 뉴스. 이미지 제공_ LIG넥스원지회

 

이제 시작이고 갈 길이 멀다. 누군가는 나에게 급여나 복 지가 그렇게 나쁘지 않을 텐데 왜 노조를 설립하느냐고 물어 보고, 누군가는 그저 남들처럼 회사 생활 하면 무난하게 진급하고 부족할 게 없을 텐데 굳이 왜 나서냐고 묻는다. 나는 연구를 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을 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나 자신에게 다시 자문한다. 

 

“그래, 나는 LIG넥스원의 연구원이다.” 

 

회사 앞에 걸린 화섬식품노조 네이버, 카카오, 스마일게이트지회들의 노조 설립 지지 플래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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