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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자만 꺼내도 뒷걸음질을 쳤어요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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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자만 꺼내도 뒷걸음질을 쳤어요


박은영/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에이스손해보험콜센터지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강산이 변한 것도 모른 채 어느새 입사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일하면서 많이 정들었던 언니들, 동갑내기 친구들, 그리고 동생들도 있었습니다. 일상생활 중 하루를 가족보다 더 긴 시간 함께 지내 왔기 때문에 힘들 때는 서로를 의지하면서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오순도순 모여서 맛있는 식사도 같이하고, 남은 시간은 바람 쐬러 다니기도 하고, 어떤 날은 퇴근 이후에 힘들었던 하루 일과를 치맥(치킨과 맥주)으로 풀면서 달래기도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이런 평범한 일상이 2020년 코로나가 유행하면서부터 모든 게 바뀌고 말았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절반 이상이 재택근무로 전환되고, 사무실에 남아서 내근 업무를 하는 상담사들에게는 여러 가지 조항을 만들어서 지키도록 했습니다. 첫째, 점심 식사는 각자 자리에서 먹어야 하고 마스크는 식사 시간 이외에 모두 필수 착용하고, 둘째, 모여서 대화 금지, 셋째, 외부에서 점심 식사 금지, 넷째, 이래서 안 된 다 저래서 안 된다 등 규칙 같은 걸 만들어서 지켜야만 했습니다.


재택근무자와 내근 업무 상담사들은 회사에서 만든 모바일 체온 체크를 매일, 휴일과 주말에도 반강제 사항으로 하루에 3번 정도 2년 가까이 입력하고 있습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휴게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장시간 컴퓨터 업무를 하는 상담사들은 안마기에 지친 몸을 맡기고 잠시나마 쉴 수 있었는데, 이제는 먼지가 뿌옇게 쌓인 안마기가 구석에 처박혀 있고 작동이 되는지도 알 수가 없네요. 엉덩이를 잠시 붙일 휴게 공간 없이, 오로지 출근해서부터 퇴근할 때까지 독서실에 온 것처럼 업무를 하는 내 책상 내 의자에 긴 하루를 맡기고 있습니다. 

콜센터 노동자들이 쉬면서 사용하던 안마기. 코로나19 발생 후부터는 사용이 금지됐다. 사진 제공_ 에이스손해보험콜센터지부


재택근무로 인해 인원이 줄었다는 이유로 사무실은 절반 이하로 공간이 좁아졌고 모든 게 협소해져서, 그에 대한 불편함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상담사들이 겪어야 할 또 하나의 고충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불편함은 내근직 상담사의 몫이 된 것이지요. 버티는 건지 견디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젠 지금 이 생활이 평범한 건지 그 이전의 생활이 특별했던 건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합니다. 


내근직 사원뿐만 아니라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상담사들도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업무를 시작할 때 서버로 접속해서 일을 하기 때문에 전산이 멈추거나 느려지는 일이 잦음에도 불구하고 퇴근 시간이 지나서 일을 하면 일처리를 못하는 사람 취급을 하거나 재택이기 때문에 딴짓을 하느라 퇴근이 늦는다는 말도 듣곤 합니다.


회사는 코로나로 인한 적자라 하고, 업무 강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너무 힘들어서 퇴사를 하는 상담사가 속출해도 충원은커녕 퇴사자의 몫이 남아 있는 상담사들에게 배분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신입을 몇 명 뽑아도 바로 업무에 투입되는 게 아니라 3~4개월 정도 지나야 혼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까 말까 하는데, 그마저도 적응 못 하는 신입 상담사들의 퇴사는 비일비재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상담원들 중에서 퇴사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회사에 이익이 될 것 같은데 그런 기미는 보이질 않습니다. 싫으면 나가고 또 뽑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상담사들을 단순 아르바이트생으로만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상담사를 가족같이 생각해 달라고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힘들 때 귀 기울여 주고 상담사를 위한 진정한 마음을 보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회사에 대한 애사심을 가지게 말입니다 .


시간이 이만큼 지나서야 웃으면서 코로나 얘기를 하지만 2020년 3월 우리 사업장에서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는 ‘콜’ 자만 꺼내도 사람들이 뒷걸음질을 하더군요. 작년에는 저희 상담사들도 많이 무서워했고요. 구로 콜센터 로 인해 전 사원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했을 때 저 또한 백병원에 가서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으로 검사받으러 왔다”고 딱 한마디를 했더니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벌레 보듯 위아래로 훑어보고 구석으로 가더라고요. 

2020년 4월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민주노총 콜센터 관련 노동조합이 모여 서울 종로구 에이스손해보험 본사 앞에서 원청 책임 촉구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 제공_ 노동과세계


구로 콜센터 CS부서 많은 상담원분들이 코로나 감염으로 인해 병동이나 자가격리에 들어가 있는 동안, 그 업무를 누군가 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아웃바운드인 해피콜 부서에서 처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해 보지도 않은 인바운드 업무를 하게 됐는데, 해피콜 상담원들은 보험코드가 없는 상담원이었기 때문에 고객 전화를 받아도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없었고 사용하는 전산도 CS부서 상담원들보다 권한이 적을 뿐 아니라 다룰 줄 아는 게 없어서 욕먹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2주 정도만 업무 처리를 해 주면 된다고 해서 CS부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약속된 2주가 넘어가도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본인 업무가 아닌 타 부서 일을 하니 상담원분들도 지쳐 가고 있을 때쯤 회사에서 조건을 걸었습니다. 회사가 원하는 만큼 대신 일처리를 해 주면 수당을 주겠다고 했었는데 딱 2명만 회사에서 요청한 날짜까지 하고 나머지 분들은 너무 힘들어 중단하고 본인 업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CS 인입 전화를 받은 후 해피콜팀(아웃바운드팀)은 그동안 처리 못한 일에 대해서 2일에 한 번씩 몰아서 처리를 하기 때문에 2배로 힘들고 그렇게 고생을 많이 했는데도 회사는 뭐 하나 해 주는 거 없었으니 참 씁쓸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게 CS부서 상담원들이 건강하게 돌아와 업무 복귀해서 정상으로 돌아가니 그걸로 위안 삼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째 접어들 무렵, 아주 반가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회사에 노조가 생겼다는 말을 듣게 되었지요. 한편으로는 ‘정말 잘됐다, 꼭 가입해야지’ 하다가도 ‘아냐, 노조 가입한 걸 회사에서 알면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서 많이 망설였는데 유튜브 방송을 보고 많은 질문을 한 후 올해 3월 중순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지부장님과 부국장님과의 간담회를 갖고 더욱 결심을 했고 무엇이든 꼭 도움이 되고 싶어서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가장 뿌듯했던 건 10년 동안 다니면서 회사에 급여 인상을 해 달라는 말 한마디조차 못 하고 주는 급여만 받고 다녔는데, 노조 활동을 하며 처음으로 우리 힘으로 급여 인상을 이루었다는 점과, 앞으로도 급여 인상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또한 없던 유급휴가가 생겨서 이번에 코로나 백신을 맞는 상담사들이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명절에는 항상 스팸 하나만 달랑 받았었는데 이번 추석에는 처음으로 원청이 10만 원 상품권을 지급해 조합원분들이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소박하게도 말이지요. 


앞으로 10이라는 숫자를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10년 만에 급여 인상, 10년 만에 원청에서 10만 원짜리 추석 선물을 받았으니 다음 급여 인상은 10만 원으로 요구를 하면 이루어질까요? 

  • 효리 좋은글 잘 읽었습나다 지금은 재택 근무중인데 사무실에서 일할때가 생각나고 문득 그립기도 합니다 항상 화이팅! 입니다 2021-11-03 19:34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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