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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고생담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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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고생담

정인용/ 학교도서관 사서

 

 저는 학교도서관 사서입니다. 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예요.
2007년부터니까 올해로 15년 차가 되네요. 2000년대 초반에 정부는 학교도서관 활성화 정책을 내놓고, 거의 모든 학교에 도서관을 짓기 시작했어요. 빈 교실을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하거나 공간이 없는 곳들은 새로 짓기도 하고요. 그렇게 만들어진 학교도서관에 ‘책’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고, 도서 관리 프로그램들도 개발되었어요. 어떻게 하면 좀 더 아늑한 곳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학교도서관은 점점 진화해 갔습니다. 어느덧 학교도서관은 학생들에게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면서 쉼터의 역할도 함께 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학교도서관에서 일할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1학교도서관에 최소 1명의 사서(교사)라도 두어야 한다고 법(학교도서관진흥법) 개정 투쟁까지 하면서 바꿨는데, 여전히 학교도서관에 ‘사서’ 배치율은 6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답니다. 
 

 사서는 ‘전문 인력’이라고 하지만, 처음 학교에서 일을 시작했을 땐 1년마다 계약과 해지를 반복해야 했고, ‘도서관 업무’가 아닌 온갖 잡무까지 하는 바람에 도서관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인 경우도 있었어요. 처우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에서는 1유형(임금 체계가 1, 2유형으로 나뉘어서 기본급이 다릅니다)이랍시고 기본급을 조금 더 받는데, 보험과 세금 제하고 나면 겨우 100만 원, 최저임금도 안 되는 급여를 받았더랬습니다. 명절이 되어도 수당 한 푼 없고, 해가 바뀌어도 경력 인정조차 되지 않아서 1년 일하나 10년 일하나 같은 월급을 받았습니다.


 노동조합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마찬가지였겠죠. 2009년 전회련(전국회계직연합회, 현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전신)이 만들어지고 사서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함께해야 우리의 노동조건도 처우도 나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인식 개선을 위해 노동조합은 참 많은 일들을 해야만 했습니다. 학교도서관 사서들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대규모 토론회를 국회에서도 지역에서도 열고, 우리가 직접 만든 책 모양 날개를 달고 교육부 앞에서, 서울역 광장에서 집회도 했습니다. 도서관만 덩그러니 놓아두지 말고 전문 인력인 ‘사서(교사)’를 배치하기 위한 대규모 시민 선전전과 서명운동도 벌였습니다. 올해는 ‘기후위기 대응’에 함께하는 의미로 학교도서관 내에서 북 큐레이터와 각종 행사들을 진행하며 학생들과 교직원들에게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실천 활동을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냈습니다.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하게 이어 가려고 합니다.

2012년 서울역 광장 집회 후 사서들이 직접 만든 책모양 날개를 달고 행진하는 모습. 사진 제공_ 교육공무직본부 전국사서분과


 이제는 처우도 좀 개선되었고, ‘사서’에 대한 인식도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남아 있습니다. 1학교에 1사서를 배치하라는 요구는 일부 교육청들의 편법으로 정규직 사서교사가 아닌 ‘기간제 사서교사’를 채용하는 방식으로 채우고 있고, 일부 교육청에서는 (교육공무직)사서 한 명이 10여 개의 학교를 다니면서 도서관 운영을 해야 하는 ‘순회사서’ 제도를 고집하고 있기도 합니다. 학교도서관을 그저 도서를 ‘대출하고 반납만 하는 기능’을 하는 곳으로 여기는 관료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임시방편, 땜질식 학교도서관 정책이 학생들의 독서권을 무시하는 처사가 되었습니다. 이는 서울, 강원, 대구 지역의 방중비근무(방학 중 무급) 사서들의 고용 형태에서도 드러납니다. 이 지역 교육청들은 학교도서관 사서들의 임금 처우를 상향하기 싫어서 방학 때는 도서관을 닫아 버리거나 타 직종들의 업무를 가중시키면서 운영하게 하거나 ‘자원봉사’라는 미명 아래 학부모들에게 대신 운영하게 하기도 합니다. 사서의 고용 형태가 안정화되지 않으면 더욱 질 좋은 교육 서비스를 할 수 없습니다.
 

 사서들끼리 종종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 사서들은 백조와 같다’고요. 얼핏 들으면 좋은 말 같지만, 물 위에 우아하게 떠 있으려면 수만 번의 물갈퀴질을 쉼 없이 해야 하는 백조처럼, 우리가 하는 일이 햇살 잘 드는 도서관 한편에서 ‘책이나 읽고 대출 반납이나 하는’ 그런 모습으로만 보이는가 봅니다.


 늘 정돈된 서가의 책들과 깨끗하고 가지런히 놓여 있는 열람 책상들, 예쁘게 치장한 포스터들과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서들의 모습을 그리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실상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도서관 사서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아이들이 한 시간만 왔다 가면 널브러지는 책들을 이전과 같은 상태로 다시 정리해야 하고, 아이들이 읽을 양서를 구입하기 위해 수천 번의 마우스 클릭을 하며 온갖 서평문을 읽고 책을 찾습니다. 구입한 책들은 분류하여 제자리에 정리해야 하고 학년별로, 학생들의 성향별로, 교과별로 다양한 주제들을 찾아 도서 목록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책을 읽고 있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완독’을 하기엔 벅차지만, 그래도 대강이라도 읽어 보지 않고 학생들에게 책을 추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학교 도서관에서 기후 위기 추천 도서전을 열었다. 사진 제공_ 교육공무직본부 전국사서분과


 사서들은 손가락의 지문이 닳아서 핸드폰에 지문 인식을 못 하기도 하고, 손가락, 손목 관절염으로 고생하기도 합니다. 한 학교가 보통 1만~2만 권의 책들을 소장하는데, 그 책들을 들고 나르고 하면서 생기는 고질병이랍니다. 새 책은 새 책대로 오래된 책들은 오래된 책들대로 먼지와 씨름을 하다 보니, 기관지나 호흡기 질환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학교도서관은 공기질 측정 의무 대상도 아니고 산업안전보건 대상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도서관에 와서 소곤대는 아이들, 새로운 책이 들어왔나 찾아보는 아이들, 책을 읽고 어떤 독후 활동에 참여할까 눈길 주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힘든 하루지만, 버텨 내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 일들이 힘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동을 폄훼하고 우리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 것들이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최근 시도 교육청과의 교섭에서 교육청 한 관료는 사서들은 업무의 책임도와 난이도가 낮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서들의 역할을 과소평가할 뿐 아니라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말이었습니다. 비정규직 사서들은 ‘교사’가 아니니 ‘독서교육을 할 수 없다’며 사서들의 교육적 역할도 빼앗아 가려는 교육청들의 어불성설입니다.
 

 사서로서 많은 자괴감이 드는 학교 생활이지만, 비정규직이기에 그 차별은 온몸으로 체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직원’이라 부르지만, 여전히 ‘교사도 공무원도 아닌 자’로 칭해지며, ‘교육공무직’이라는 이 다섯 글자조차도 법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 교육 운영에서 소외되어 필요할 때만 찾는 교직원 아닌 교직원 대우를 받습니다.

지난 4월 노동자건강권 쟁취의 날 학교도서관에서 인증샷을 찍은 글쓴이 정인용 씨. 사진 제공_ 교육공무직본부 전국사서분과


 그래서 우리는 교육공무직 법제화가 절실합니다. ‘무기계약직’이니 더 이상 비정규직이 아니라는 말들은 우리를 더 서글프게 합니다. 우리는 그 말을 ‘무기한 계약직’이라고 되받아칩니다. 처우는 정규직의 절반. 우리는 당당한 교육의 주체라고 외치지만, 여전히 존중받지 못하는 학교 현장에서의 소외와 차별. 자괴감이 들고 서글프지만, 그냥 주저앉아 있진 않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견고하게, 단단하게 뭉쳐 떨쳐 일어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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