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읽기

내가 아는 그 “합방”이 아닌갑다

월간 작은책

view : 2425

살아가는 이야기

요즘 중딩 교실 이야기

 

내가 아는 그 “합방”이 아닌갑다


안정선/ 경희중학교 교사

 

교사들끼리 모여서 아이들 어휘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걱정을 한 적이 있다. 너무나 쉬운 말도 몰라 자꾸 질문을 한단다. “내일모레가 시험인데.”라고 했더니 “아니,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내일모레라굽쇼?”라고 대꾸해 나를 경악하게 한 건 귀엽게 봐 준다 쳐도, ‘조차지’ 이런 말은 요즘 쓸 일이 없어서 모른다 쳐도, ‘객관적/주관적’을 모르고 ‘추상적/구체적’을 모른다면, 그리고 비유가 뭐냐고 묻기에 ‘빗대는 거’라고 말해 주니 ‘빗대는 거는 또 뭐냐?’고 묻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진도를 나가야 하는 걸까?


중1 교실에서는 단어 뜻 설명하다 지치지만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 2학년쯤 되면 자꾸 질문해 봐야 자기 품격만 떨어진다고 생각해서인지 점점 질문도 하지 않고 그냥 알아듣는 척, 수업을 열심히 듣는 척한다. 그러면서 영육 분리, 유체 이탈, 그리하여 자신의 혼을 자기 집 컴퓨터 모니터 앞 게임 장면으로 분리 발송하거나 안드로메다 어디쯤으로 유영시키곤 한다. 얼마 전 토론 수업 때는 한 학생이 “모병제로 제도를 바꾸려는 시도보다 지금 현재의 군대 인프라를 탄탄하게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때 손을 들고 용감하게 “선생님, ‘인프라’가 뭐죠?”라고 질문한 학생을 이 자리에서 칭찬하는 바이다. 많은 아이들이 그 말을 몰랐을 것이다. 속으로는 “저 쉬키 쫄라 어려운 말 쓰네.”라고 생각하면서도 질문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와중에 용기를 내 질문을 던져 주다니….


교실에서는 천진한 멍뭉미를 뿜으며 ‘난 그으~런 거 모홀라요~, 난 아무것도 몰~라아요오~’ 이러고 앉아 있던 아이들이 수업 끝나는 종소리를 들으면 갑자기 생기발랄해져서 교실 밖으로 뛰쳐나간다. 코로나 이전의 장면이긴 하지만 친구의 목을 두 팔로 감아 안으며 화장실에 같이 가는 중2 아이들 대화를 우연히 엿들은 적이 있다. “꼼짝 마! 넌 묵비권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으며….” 우정의 체포인 걸까. 방금 합리적 어쩌고 능동적 저쩌고 이런 말도 못 알아듣는 척하던 아이들이 ‘묵비권’이 뭐 어째? 


“야, 넌 왜 말을 못해? 선택적 함구냐?” 읭? 중1이 선택적 함구 그런 말을 안다고? 생물 시간에 배웠는지 호르몬의 부조화를 논하고 물리적 법칙이 어쩌고 할 때는 뒤를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평상시 까불기만 하던 꼬맹이거나 독서나 공부와 거리가 멀어 보였던 아이들이 그런 용어를 쓰면 ‘아, 나는 선입견이 많은 교사인가 보다.’ 스스로 반성하게 되곤 한다.


하긴 엽기 토끼가 한참 유행할 때였던가, ‘엽기’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의미와 쓰임새가 국민 어휘가 되어 버리는 현상에 의아함을 품은 적이 있었다. 아무리 어려운 말이라도 자주 들으면 쓰게 되고, 사용하는 단어 수준에 따라 국민들의 품격도 오르락내리락하게 되는 것 같다.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그런 단어도 모른다고 한탄하지만 어쩌면 ‘그런 단어’를 쓸 일이 없어서 모르는 건지도 모른다. 어떤 어려운 단어는 자기들만의 세계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또 어떤 단어는 아무리 쉬워 보여도 옛날 말이라 안 써서 모르는 걸 수도 있다. 


수업 중에 주마간산(走馬看山), 전화위복(轉禍爲福), 이런 고사성어가 나올 때 그게 뭐예요? 묻는 경우는 부지기수이다. 이건 한자로 된 말들이라 모르는가 보다, 싶기도 하지만 아주 쉬운 속담의 뜻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어떤 국어 선생님이 문장의 짜임을 가르치던 중 교과서에 나온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가 홑문장인지 겹문장인지 물었다고 한다. 문맥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고 ‘배’가 먹는 배냐, 바다 위의 배냐 묻더란다. 중3인데 이 속담을 모르나 싶어서 “너네 오비이락(烏飛梨落) 몰라?”라고 물었는데 많은 학생들이 해맑은 표정으로 “선생님, 저희가 그런 걸 어찌 알겠어요?”라고 되묻는 표정을 짓더란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라는 속담이 나왔을 때 한 학생이 옆의 친구에게 “왜 ‘낱말’을 새가 먹어? ‘반말’은 또 쥐가 먹는다고?”라고 해서 선생님을 뒤집어지게 했다나.


한번은 매체의 윤리성에 관한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이 어떤 유튜브 채널을 즐겨 보는지 발표하는 중에 어떤 학생이 큰 소리로 “두 사람 그냥 합방하면 좋을 텐데~.”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아무리 시도 때도 없이 야한 말 한마디라도 던져 보려고 기를 쓰는 호르몬 과잉 분비의 사춘기 소년들이라지만 저런 말을 그냥 막 던진단 말인가? 그야말로 ‘벙 쪄서’ “어허, 할 말 못 할 말 가려서 하게!”라고 말했다. 수업 마치고 불러서 조용히 훈계를 하겠노라 마음먹고. 그런데 맥락을 살펴보니 ‘아무래도 내가 아는 그 “합방”이 아닌갑다.’ 싶었다. 그 말을 한 학생의 평소 행실도 그렇고 아무리 아이들이 들쭉날쭉이라 해도 그렇게까지 그런 단어를 막 던지는 건 이상했다. ‘브라보, 브라보, 아빠의 청춘’을 ‘브라자, 브라자, 아빠의 청춘’으로 바꿔 부른 90년대의 어떤 남학생 이후 교실 발언 중 가장 수위가 높은 단어 5위 안에 들 것 같았던 그 ‘합방’이란 말은… 사실은… ‘합동 방송’, 즉 서로 다른 채널을 가진 유튜버들이 함께 방송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이럴 때 누가 문맹인 걸까? 저들의 언어 세계에 들어가면 나야말로 말귀 못 알아먹는, 어휘력 짧은 사람일 것이다. 게임 용어, IT 용어가 나오고 휴대폰에 자주 사용되는 앱 관련 설명을 들을 때 열다섯 살 내 제자들의 입에서 술술 나오는 전문용어를 못 알아듣는 나야말로 ‘어휘력 달리는’ 어른일 것이다. 그러니 ‘어휘력’의 기준은 1960년대 어드메쯤에서 멈춘 한국문학의 어휘들, 혹은 시작한 지 20년도 넘는 7차 교육과정의 중등 교과서 속 단어들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다. 하여 나는 저들을 대할 때 어금니 꽉 물고 ‘무슥한 자슥들(무식한 자식들)’이라 부를 일이 아니라 ‘어떤 언어에 관해서는 취약한 점이 있으므로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지장 없을 만큼 꼭 필요한 어휘를 알려 드려야 하는’ 어리나 고귀하고 도도한 고객으로 여겨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자동입력방지 스팸방지를 위해 위쪽에 보이는 보안코드를 입력해주세요.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세요.

창닫기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