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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병원 민영화? 안 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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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병원 민영화? 안 될 말!


문정주/ 의사. 《뚜벅뚜벅 이탈리아 공공의료》 저자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에 공공의료는 없다. 부동산, 수도권, 디지털, 청년에 관해 장밋빛 구호와 계획이 몇 장씩 넘쳐나고 심지어 게임, 반려동물에도 깨알 같은 약속이 화면 가득 펼쳐지는데 의료는, 특히 공공의료는 목록에서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국민의힘 대선 정책공약집도 마찬가지다. 눈에 띄는 것은 오히려 ‘공공의료를 쪼그려뜨리기’라 불러야 할 내용이다. 국립의료원 등 공공병원의 모든 병상을 코로나19 전담에 투입한다니 그 병에 걸린 사람 외에는 공공의료가 필요없다는 건가. OECD 최저 수준인 의사의 증원과 공공병원 확대는 간 곳이 없고 대신에 사립대병원 분원 설치만 있다니 사립대병원 확대가 대통령이 진두지휘할 일인가.

 

보건의료 시민단체들은 윤석열 정부 인수위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제공_ 무상의료운동본부

 

달나라 사람이 쓴 걸까. 공약집에는 공공의료의 가치도 필요도 인정하지 않는 정신, 코로나19 대유행이 휩쓰는 이 세상을 초탈한 정신이 호기롭다. 만약 달나라가 아닌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이 그렇게 썼다면 가히 ‘정신 승리’다.

 

격차와 불평등에 해결책은 공공의료

그중에도 황당한 것이 지역 의료에 관한 공약이다. ‘지역 간 격차’를 다루는 일인만큼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격차는 지금 심각하다. 단순한 격차 수준을 넘어 불평등이다. 격차의 원인은 우리나라 특유의 ‘시장 의료’에 있다. 시장이 의료체계를 대신하는 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의료를, 건강보험이 가격을 통제하기는 하지만, 물건처럼 시장에서 사고팔며 이용한다. 시장은 대도시와 수도권에서만 크다. 인구도 구매력도 큰 이곳에는 의료기관이 촘촘하고 의료인도 많지만, 지방 소도시와 농어촌에는 시장이 작거나 아예 없기도 해 아픈 사람이 진료받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지역 간 격차가 벌어지고 불평등이 심해진다. 

 

시장이 만든 격차를 시장이 해소하지는 못한다. 해법은 공적 체계와 공공의료다. 국가가 관리하는 공적 체계로 공급되는 공공의료가 격차를 해소한다. 치안, 소방, 교육, 행정과 마찬가지로 필수의료를 국가 책임으로 공급할 때 격차가 줄고 불평등이 완화된다. 그러므로 소도시, 농어촌, 오벽지 어디에든 주민이 쉽게 이용하며 마음 놓고 진료받을 공공병원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 병원이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국민의힘 공약은 자가당착을 보인다. 지역 격차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공공의료에 눈을 주지 않으니, 달나라 정신에 갇혀 공공의료의 가치도 필요도 인정하지 않으니,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공약에 적어 놓은 ‘국립대병원·상급종합병원의 공공성 강화’는 격차 해소책이 아니다. 다만 엉뚱한 속내를 드러내줄 뿐이다.

 

상급종합병원이란 매머드 대학병원을 가리킨다. 그중에 국립대는 소수일 뿐 절대다수가 사립대다. 전체의 40퍼센트가 서울에 있고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있어 지역 편중이 극심하다. 수익성을 중시해 환자를 치료하며 감염병 진료같이 ‘수익이 박하고 위험한’ 일에는 한사코 몸을 사린다. 코로나19 대유행에도 마찬가지여서 국가적 재난 대응에 협력과 헌신은커녕 입원 문턱을 높이고 확진자 진료를 기피했다. 그뿐인가. 2020년 여름, 코로나19 입원진료를 전담하던 공공병원 의료진이 탈진할 만큼 격무에 시달리고 있던 때,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정부의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확대 추진에 반대해 파업을 벌여 응급환자 진료까지 거부했다. 그 ‘배후’에 이들 병원이 있었다. 국가적 재난에 아랑곳하지 않는 파업에 국민 상당수가 공포를 넘어 분노를 느꼈지만, 병원 당국은 파업을 수수방관하거나 지지했고 환자들이 처한 곤경을 외면했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수도권에 편중돼 있고 수익을 따르는 병원에게 지역 격차 문제의 해결을 맡긴다니, 국가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린 병원에게 ‘공공성을 강화’한다니. 특히 그 병원에 ‘공공병원을 위탁 운영’한다는, 즉 공공병원 민영화를 시도한다는 대목은 엉뚱하고 위험하다.

 

민영화는 일찍이 실패했다

공공병원 위탁은 이미 경험된 바 있다. 민영화를 강력히 추구하던 정부가 시행한 정책이다. 민간에 매각해 완전 민영화하거나 또는 위탁하게 했다. 대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이었다.

 

지방의료원은 서울, 부산 같은 대도시를 비롯해 공주, 남원 등 중소도시와 영월, 울진 등 농어촌에도 분포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산하기관이며 전국에 35개소 있다. 일제강점기에 자혜의원으로 시작해 도립병원, 지방공사의료원 등으로 불리다가 2005년에 ‘지방의료원법’이 제정되면서 지금의 명칭과 직제를 갖게 되었다.

 

민영화의 시작은 1990년대 후반이었다. 전국민 의료보험제도가 뿌리를 내리던 시기, 사립병원이 크게 늘면서 첨단 장비를 도입하고 새로운 의술을 홍보하며 경쟁적으로 환자를 유치했다. 달라진 환경에 대응하려면 공공병원에도 투자가 필요했다. 그러나 정부는 ‘의료를 사립병원과 시장에’ 맡겨 국가 책임을 줄이는 정책 기조에 집착해 공공병원에 예산 쓰기를 꺼렸다. 점차 건물이 낡아가고 장비가 낙후해지며 병원이 경쟁력을 잃고 적자 경영의 악순환에 빠지자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매각과 위탁을 거론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외환위기였다. 재정부담 절감을 목표로 정부가 공기업과 지방공사 등에 대해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의료원에 대해서도 매각하거나 대학병원에 위탁하라고 지자체에 요구했고 적자 규모를 기준으로 몇 군데 지목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춘천의료원이 강원대학교에 매각되고(1999년) 마산(1996년), 이천(1998년), 군산(1998년), 울진군의료원(2002년)이 대학병원에 위탁되었다.

 

시민사회는 민영화를 반대하며 위탁 이후 상황을 주시했다. 결과는 우려했던 대로였다. 정부와 지자체가 애초 내걸었던 ‘경영수지의 호전’은 없었는 반면 공공성 악화는 뚜렷했다. 무엇보다 대학병원식 진료로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었고, 소아과나 외과 등 비수익 필수 진료가 소홀해졌으며, 계약직 등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 직원의 사기가 떨어지고, 지역 여론도 나빠졌다. 결국 위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지자체에 비난이 쏟아지면서 위탁도 매각도 확대되지 못했고 기존 위탁된 의료원은 몇 년 뒤 대부분 직영으로 되돌아갔다.

 

정부 정책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바뀌었다. 후보 시절에 ‘공공의료 확충’을 약속했던 그는 이를 지키고자 노력했고 특히 의료원을 위한 정책 변화의 초석을 마련했다. 당시 ‘지방공사’, 즉 공기업으로 취급돼 행정자치부의 관리 아래 있던 의료원을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지방의료원’으로 전환하고 기능 강화를 위한 예산을 지원받게 한 것이다. 더는 민영화가 추진되지 않았다.

 

헛된 꿈을 접기 바란다

민영화가 만약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그래서 지방의료원이 몇 개 남지 않았거나 거의 사라졌다면? 그랬다면 코로나19 대유행에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국가가 더 큰 비용을 쓰고, 재정이 휘청거리게 돼 국민의 삶이 쪼그라들며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공공병원 민영화의 헛된 꿈을 접기 바란다. 이미 실패한 정책이다. 더욱이 우리는 지난 2년간 감염병 대유행을 겪으며 공적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공공의료가 얼마나 절실한지, 우리 사회에 공공의료 확충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생생히 목격했다. 국민 대다수가 이미 공공병원 설립과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기득권 세력은 한결같이 의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회피했다. 가까운 과거만 보아도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에 22조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쓰면서도 공공의료에 드는 돈은 아까워했고, 박근혜 정부에서 홍준표 씨는 적자와 노조를 핑계로 진주의료원을 폐쇄해 버렸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때가 아니다. 윤석열 당선자와 국민의힘은 낡고 실패한 노선을 벗어나기를 바란다. 달나라가 아닌 현실과 직면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야, 이미 예고된 닥쳐올 감염병의 재난에 우리가 안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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