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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묻는 겁니까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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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왜 묻는 겁니까

최한솔/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노무사

 

얼마 전 ‘좋은이웃’ 청년모임 마니또 운영진 예린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전해졌다. J가 다쳤다고 했다.

“형! J 얼굴에 질산이 튀었는데, 회사가 병원 가지 말라고 했대요. 농도 60퍼센트면 원액이나 다름없는데 말이에요! 형이 회사에 전화 좀 해 주세요!”
예린의 떨리는 목소리에 다급함과 분노가 가득했다. 예린이 재촉했는지 얼마 되지 않아 J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 회사에서는 괜찮다고 병원 가 봤자 소용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요?”

“당연히 병원부터 가야지, 뭘 물어!”

 

회사란 곳이 그렇다. 여전히 존재하는 커다란 중세시대 성과 같다. 성 안의 규칙과 체계에는, 성 밖에서 했던 당연한 행동들도 조심스러워진다. 동등한 근로계약 관계라고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봉건시대에 머물러 있다. 병원에 가면 안 되냐고 두 번을 물은 J는 두 번을 연거푸 거절당했다. 결국 점심시간에 병원을 가기로 결정했다. 물론 회사가 보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와 함께 있었던 좋은이웃 사무국의 이응록 팀장이 운전대를 잡았다.

“이게 말이 돼요? 이런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병원을 가지 말라니, 정말 이해가 안 가네요”

응록도 화가 난 듯 속도를 내었다. 질산으로 인한 재해 관련 산업안전 동영상을 들으며, J의 회사로 함께 향했다.

 

회사 정문 앞에 도착하자 J가 숨바꼭질하듯이 차에 올라탔다. 얼굴을 확인했다. 마치 찬바람에 뺨을 맞은 것처럼 뻘겋게 올라와 있었다. 공단 입구에 있는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질산이 얼굴에 닿은 지 두 시간이 넘어섰다.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눈 밑에서 입술까지 기다란 검은 자국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일하다가 질산이 얼굴에 튀었어요.”

도착하자마자 병원에 이야기했다. 3명의 간호사가 달라붙어 드레싱을 해 주었다. 회사가 병원에 보내 주지 않아 이제 왔다고 하니, 간호사분들이 더 화를 내 주었다. 그제서야 J는 잘못된 것임을 안 것 같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그래도 처치를 하면 빠르게 나을 수 있다니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싸움이 일어났다. J가 처치를 받고 있는 중에 접수 데스크에 있던 간호사가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회사 이름하고 회사 담당자 연락처는 어떻게 되세요? 산재(산업재해요양신청)로 하실 건가요, 공상으로 하실 건가요?”

“일하다가 다쳤는데 당연히 산재지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저희 협력회사인지 확인하고 알려 주어야 해서요. 산재로 하신다는 거지요?”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이 병원만의 정해진 절차이거니 했다. 명함도 건네주고 제가 노무사이니 산재 신청 관련한 것은 치료 후에 알아서 하겠다고 일러두기도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간호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세 번을 같은 질문을 위해 치료실로 들어오더니, 이내 원무과장이 찾아왔다.

“회사에는 말씀하셨어요? 산재하려면 회사에도 알려 주는 게 의무예요. 산재로 하실 거예요?”

“지금 그걸 왜 묻는 겁니까? 뭐 하시는 거예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뒤엉키기 시작했다. 원무과장은 20년 경력을 앞세우며, 노무사가 그것도 모르냐며 몰아세웠다. 산재 신청을 할 거라면 회사에 알려 주어야 한단다. J에게 산재 신청을 위해서는 회사에 가서 사업자등록증을 가져와야 한다고도 했다. 드레싱을 받고 있던 J는 망설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이렇게 하면 어느 노동자가 산재 신청을 합니까! 왜 치료받고 있는데 겁을 주는 거예요?!”

 

공단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라 일하다가 다친 환자들이 항상 가득했다. 그 모두가 이 병원을 찾았을 때 이러한 질문들을 받았겠구나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일하다가 다친 노동자에게 회사 담당자의 연락처를 묻고, 협력회사에게는 노동자가 병원에 온 사실을 알리겠지. 그리고 산재와 공상, 개인 보험이 마치 선택 사항인 것처럼 설명하겠지. 산재는 어렵고 공상이나 개인 보험 처리는 쉬운 것처럼 설명하겠지. 그리고 여느 노동자들도 J처럼 망설이겠지 싶었다. 이렇게나 능숙한 질문들로 산재들이 묻힌다 생각하니 물러설 수 없는 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바탕 하고 난 뒤 J가 치료받는 사이 데스크 간호사가 다시 와 응록과 나의 연락처와 소속을 또 물었다. 거부했다. 이유를 묻자, 또다시 당황하며 물러섰다. 

 

2019년 8월 8일 시화공단의 구)원경전자가 위치했던 공장(시흥시 마유로 144번길 41)
에서 염산이 누출되는 사고가 있었다. 사진 제공_ 월담노조

 

왜 그게 궁금했을까? 왜 그렇게 물었을까? 20년 경력을 자랑하는 원무과장은 그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무엇을 묻고 또 물었을까? 질문이 꼬리를 잇는 사이 J가 치료를 마치고 나왔다. 놀랐을 J에게 미안함이 가득했다. 괜찮아 다쳤을 땐 이렇게 산재 신청하는 게 너의 당연한 권리이고 넌 보호받는 존재야, 하고 말해 주고 싶었는데, 이토록 험난하고 어려운 것이란 걸 보여 준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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