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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커피에 가려진 제빵사의 인권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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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빵과 커피에 가려진 제빵사의 인권

 

이현주/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작년 3월부터 우리 지회 탈퇴자 수가 급증하여 매달 백여 명씩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인가 싶더니 나중엔 ‘와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싶었죠. 그동안은 탈퇴서가 한 달에 한두 장 될까 했던지라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탈퇴서 쓴 조합원 한 명, 한 명 다 연락해 봤어요. SPC 파리바게뜨 제빵, 카페 기사들은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근무하고 있는데 탈퇴서 쓴 이유는 하나였어요. 근무시간 중에 관리자가 찾아와 탈퇴서 쓸 때까지 매장에서 안 나가고 계속 옆에 서서 써 달라며 버티거나, 틈만 나면 연락하거나, 매장에 매일 찾아오거나 했어요. 한 기사님이 말했어요.

 

“정말 쓰고 싶지 않았어요. 매장엔 점주님도 같이 계신데 계속 찾아와서 관리자가 큰 소리로 노조 얘기를 하니 너무 스트레스 받고 버티기가 너무 힘들어서요…. 죄송해요.”

 

물론 개인의 의사로 탈퇴서 쓴 분들도 계시겠죠.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관리자가 찾아와 어쩔 수 없이 탈퇴서를 썼다 얘기했어요. 승진 시기를 앞두고 찾아와서 민주노조 탈퇴하지 않으면 앞으로 승진도 되지 않고 계속 근무하던 매장에서 더 일하기도 어렵다는 내용들이었습니다. 회사가 원하는 노조는 따로 있다고 얘기한 관리자도 있었대요.

저는 관리자에게 집요하게 탈퇴 강요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입사 후 제 동기들은 한국노총 가입하고 많게는 세 번까지 진급이 될 동안 저는 처음 입사할 때와 같은 직급에 머물러 있어요. 평범하게 회사에서 주기적으로 받는 평가점수도 잘 유지해 왔는데, 민주노조인 걸 알고 고의적으로 승진 누락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작년 7월엔 퇴사했던 관리자가 지회로 제보해 주었어요. 민주노총 탈퇴시키고 한국노총 가입시키면 한 명당 5만 원씩 준다고요. 매일 아침 회의 때마다 윗사람이 민주노총 명단 뽑아서 “일하지 말고 탈퇴서 받아 와라!” 했대요. 기사들이 열심히 일해 벌게 해 준 돈을 회사는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 불법적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몇 달 전 녹취에 의하면 이제 괴롭혀 탈퇴시키는 건 끝이 났고 남은 민주노총 인원들은 어떻게든 퇴사시키고 ‘민주노총 0퍼센트’ 만드는 게 목표라며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대요. 우리 노조에서 아무리 공문을 보내고 부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얘기해도 회사는 언제나 같은 답변을 주었어요. ‘그것은 관리자들 개인의 일탈이다, 회사는 전혀 관여한 부분이 없다, 회사와는 상관이 없다’며 발뺌하니 너무 답답한 심정이었습니다.

 

2022년 3월 28일 결국 임종린 지회장은 단식을 시작했고,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우리 지회에 그나마 남아 있는 조합원들 지키겠다고 사람답게 회사 생활 하게 해 달라고요. 단식 선언 기자회견 당일 근무 중이라 참석하진 못했지만 더 이상 조합원들 괴롭히지 말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바치겠단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돌아 눈물이 고이곤 합니다. 지회장님 단식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찾아간 적이 있어요. 저는 하루만 끼니를 걸러도 힘이 다 빠지고 속이 쓰린데 며칠 동안 물만 마시는 걸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몸 상태는 어떤지 물어보니 아직은 괜찮다 버틸 만하다고 말했지만 이미 회사에서 상처받은 마음이 아물려면 한참이나 걸리겠죠.

 

단식 5일차, 임종린 지회장 단식투쟁 일기. 사진 제공_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5월 6일 기준 단식농성 40일 차예요. 마스크 너머로, 많이 수척해져 건강을 잃은 모습이 보입니다. 더는 괜찮은가 물어볼 수가 없어요. 그냥 딱 봐도 너무 안 좋아 보이니까요. 모두를 위해 본인을 희생하는 게 그저 안쓰럽고 또 안쓰럽습니다.

SPC 파리바게뜨가 자행한 부당노동행위를 모두 인정하고 피해자인 기사님들에게 사과해서 하루빨리 이 단식투쟁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지회장님이 부모님께서 해 주신 따뜻한 집밥 먹는 걸 보고 싶어요.

지난 1월엔 지방노동위원회, 5월 2일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노조에 따른 진급 차별이 있다. 부당노동행위가 맞다’는 판결도 받았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SPC 파리바게뜨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얼굴도 안 보이고 있다가 단식 13일 차에 회사에서 찾아왔대요. 비타민 음료 사 가지고 왔어요. “단식 중이라 못 먹는다. 가져가라.” 했더니 “단식도 종류가 있지 않냐, 국회의원들도 다 이런 거 먹으며 한다.” 하는 얘기를 들으니 너무 어이가 없었어요.

단식13일차, 임종린 지회장 단식투쟁 일기. 사진 제공_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현재, 회사의 개입으로 민주노총 탄압하고 한국노총 가입 권유한 게 드러나 부당노동행위를 한 사업부장 6명과 제조장 2명은 검찰 송치되었습니다. 회사와는 지금까지 여섯 번째 대화 자리를 가졌어요. 하지만 아직도 똑같습니다. “저흰 부당노동행위 몰라요. 전 그런 행동 한 적 없어요.” 하며 손사래를 칩니다.

 

SPC 파리바게뜨의 휴가 사용법은 이상합니다. 교섭 대표 노조가 맺은 단체협약에 7회 휴무 이후에 보건이나 연차를 사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기사님들은 휴무가 그보다 적어 아파도 일해야 하고 임신해도 회사 눈치가 보여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건휴가를 사용하겠다 말하면 인력이 부족하다며 휴무를 그만큼 줄 수 없고, 7회 이상 쉬지 못하니 보건 승인을 해 주지 않습니다. 제가 그만큼 쉬려면 다른 기사님의 휴무를 차감해야 한다며 휴가 사용에 눈치를 줍니다.

주 52시간을 넘기면 회사에서 자꾸 전화가 와요. “이번 주 52시간을 넘게 일하면 휴무 하나를 더 줘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니 빨리 끝내라.” 하면 그 압박에 못 이겨 점심시간 한 시간을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해요. 아니면 연장근무 해도 연장 ‘NO’를 눌러 주 52시간 근무한 걸로 맞춰야 합니다.

SPC 파리바게뜨가 노동 인권 탄압을 중단하고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일터가 될 수 있도록 지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할 거예요. 많은 시민들도 함께 응원하고 지켜봐 주세요!

단식 24일차, 임종린 지회장이 몸이 힘든지 집회에서 잠시 눈을 감고 있다. 사진 제공_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우리의 요구사항입니다. SPC 파리바게뜨는

첫째, 부당노동행위 인정하고 사과하라!

둘째, 부당노동행위 가해자 즉시 처벌하라!

셋째, 부당노동행위 피해자 원상복구 회복하고 민주노조 탄압 중단하라!

넷째, 조합원 차별 중단하고 기사들 노동 인권, 휴식권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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