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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까지 산불 껐는데… 밥은?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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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자정까지 산불 껐는데… 밥은?

 

신현훈/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국가공무직지부 산림청지회 정책부장

 

 

2022년 3월 4일. 점심을 먹고 난 12시 40분. 산불이 났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장비를 갖추고 울진으로 가는 길 양쪽으로 거센 불길이 타오르고 눈에 보이는 세상은 온통 연기로 가득하다. 어디서부터 불을 꺼야 할지 막막한 순간 집 옆에서 물을 퍼 나르는 사람이 보였다. 집 뒤쪽 산 아래까지 불길이 내려와서 집으로 옮겨붙을 지경이다.

진화 살수차를 집 옆으로 대자마자 빠르게 진화 호스를 꺼내 들고 불길을 잡았다. 바람이 거세고 부는 방향도 일정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집주인으로 보이는 아낙은 주저앉아서 넋이 나간 듯 보였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불길이 서서히 잡히고 집으로 옮겨붙는 것은 막았다. 이제 산으로 올라가면서 남아 있는 불씨들을 모두 꺼야 한다.

해가 지고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불을 껐다. 그래도 안심하기는 이르다. 곳곳을 살피면서 남은 불씨가 없는지 둘러보고 또 둘러봐야 한다. 산에서 내려오니 집주인은 고맙다며 먹을 것을 준비하겠다고 한다. 피곤하고 지친 탓에 빈말로도 싫다는 말도 하지 않고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 치우고는 다시 불길이 타오르는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타오르던 울진 산불을 끄는 데 열흘이나 걸렸다.

 

 

산불을 진화하는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들. 사진 제공_ 공공운수노조 산림청지회

 


우리 국유림관리소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 열두 명이 여섯 명씩 나뉘어 아침 여덟 시에 산에 올라 다음 날 아침 여덟 시까지 하루 24시간씩 산불을 껐다. 센바람이 불었고 연기가 많아서 쉽게 불길을 잡지 못해 밤낮으로 산에서 지냈다. 입춘이 지나고 우수 경칩이 지난 3월이라고 해도 밤이 깊은 산속은 정말 춥다. 산불 끄느라 길도 없는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옷은 땀에 젖어 마를 새도 없다. 산으로 가져다주는 김밥을 먹다 보면 젖은 옷이 체온을 빼앗아 간다. 추운 겨울 어두운 산속 시간은 아예 멈춘 것만 같다. 그러다가 갑자기 새벽이 찾아오면 진화 헬리콥터가 물을 싣고 날아오른다.

 

지난 3월에 발생한 울진-삼척 산불. 진달래꽃 뒤로 산불이 번지고 있다. 사진 제공_ 공공운수노조 산림청지회

 

산불이 나면 큰 불길은 진화 헬리콥터가 잡는다. 일단 큰 불길이 잡히면 특수진화대가 잔불과 속불을 끈다. 산불 끄는 데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속불이다. 낙엽이 쌓이고 쌓여서 다져진 땅 밑으로 불길이 숨어 있다가 바람이 불면 하루 이틀이 지나서도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밤새도록 살피고 또 살펴서 속불까지 모두 꺼야 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50년 살다가 경상북도 울진으로 내려온 때가 2011년이다.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하다가 산림청에서 특수진화대를 모집한다는 걸 알았다. 마침 일도 끊겨서 체력 검정만 통과하면 된다는 말만 듣고 서류를 냈다. 2017년부터 산림청 계약직 특수진화대로 일한 나는 2020년 새로 생긴 무기계약직(이하 공무직)으로 뽑혔다. 5개 지방산림청 28개 국유림관리소 특수진화대는 435명이다. 이 가운데 160명만 공무직이고 나머지 275명은 여전히 1년마다 새로 계약하는 기간제 노동자다.

2019년 고성에서 큰 산불이 나면서 산림청 특수진화대가 산불을 끈다는 사실을 시민들이 알았다. 특수진화대가 일당제 계약직이란 것도 알려져 특수진화대 일부는 공무직으로 채용된다. 고용시장이 불안정한 마당에 그나마 직장을 갖는다는 걸 다행으로 알고 지내기는 하지만 특수진화대 모두 신분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이다.

특수진화대 시범 운영을 시작한 2016년부터 임금은 한 푼 오르지 않고 7년 동안 그대로다. 바뀐 것은 일당 10만 원 계약직에서 월급제로 바뀌고 공무직이 생긴 정도다. 평생 고정 월급제로 지내야 할지 모르겠다. 2022년 2월 15일 영덕에서 난 산불을 시작으로 울진 산불이 꺼진 3월 13일까지, 한 달 동안 일한 시간이 400시간이다. 산에서 지낸 시간만 250여 시간이다. 그런데 이 시간은 공짜 노동이다. 산림청 특수진화대는 연장근로를 해도 이를 수당으로 받지 못한다. 초과근로 수당만큼 시간으로 계산해서 휴가로 준다. 휴가를 벌기 위해서 연장근로를 한 셈이다. 그나마 벌어 놓은 휴가를 쓸 때도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산림청에서 지정한 날 강제로 휴가를 쓰라면 써야 한다. 산불 끄느라 연장근로가 많았던 2, 3월 임금과 연장근로가 하루도 없었던 4월 임금이 250만 원으로 모두 같다. 산림청이 짠 예산에 초과근로 수당은 처음부터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국유림관리소에서 300킬로미터 떨어진 함양까지 산불 끄러 가면서도 같이 간 공무원들에게 주는 출장비를 특수진화대원에게는 주지 않는다. 산불 끄느라 저녁을 굶고 관리소로 돌아와도 공무원이 받는 저녁 밥값을 특수진화대는 못 받는다. 밤 11시, 12시에 집에 가서 아주 늦은 저녁을 먹을 때까지 쫄쫄 굶는다. 산림청이 공무직, 계약직 특수진화대에게 줄 출장비, 매식비를 예산에 짜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무직 노동조합이 있는 수십 개 중앙행정기관 임금협상 자리에서 기관 교섭 대표가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예산 편성 권한이 없습니다. 기획재정부 지침을 벗어난 예산을 짜 넣을 수가 없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래서 중앙행정기관 임금협상은 하나 마나다. 산림청 기관장은 산림청장이지만 회사로 보자면 산림청 사장은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대통령도 아니다. 산림청 노·사가 임금인상에 합의해도 기획재정부 문턱을 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 나라 예산 결정을 국회에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마저도 기획재정부가 정한 범위 안에서다. 중앙행정기관 예산 담당자들은 공무직 노동자 기본급 인상 계획을 짜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매년 전년도와 같은 호봉표만 만들면 된다. 작년 인건비 예산, 사업비 예산을 그대로 옮겨 붙이면 예산 편성은 끝이다.

 

7년째 계약직 특수진화대 일을 하는 동료가 공무직이 되려면 산림청에서 결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기획재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산림청에서 일하는 직원 모두가 받는 가족수당을 특수진화대만 받지 못한다. 특수진화대가 가족수당을 받으려면 기획재정부를 찾아가야 한다. 특수진화대가 위험수당을 못 받는 까닭은 산림청장이 고약해서가 아니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특수진화대가 하는 일을 위험 직종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림청에 공무직 노동조합을 만든 지 1년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임금협상만 네 번 했다. 2021년에 시작한 임금 교섭을 끝낼 수가 없다. 열 번 스무 번을 교섭해도 합의를 할 수 없다. 중앙행정기관 모든 공무직, 계약직 노동자들 삶 주변을 떠도는 유령, 기획재정부를 교섭 자리에 불러내지 않고는 임금협상은 끝나지 않는다.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에서 오는 5월 28일 파업을 하겠단다. 산림청 진짜 주인이 누군지 가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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