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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이 있는 일터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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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노동조합이 있는 일터

한인경/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천안의료원지부

 

나는 스물네 살에 간호사가 됐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교대근무 특성상 휴일 근무, 야간 근무가 잦기 때문에 비교적 높은 초봉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도움을 줄 수 있다. 간호사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인데도 고마움을 표하는 환자들을 보면 직업적 긍지와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처음 입사한 곳은 노동조합이 없는 500병상의 병원이었다. 처음엔 일이 바빠 부서의 분위기와 병원의 규정이 어떻게 되는지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일의 숙련도가 올라가면서 주변 상황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팀원끼리 단결이 좋지 않아 이직률이 높은 부서나, 일이 힘들어서 이직이 심한 부서에 10년 된 경력 간호사들을 동네북처럼 일반 병동에서 응급실로,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로테이션을 시켰다. 병원장이나 간호부장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했다. 

교대근무자들은 연차를 사실상 사용하기 어렵다. 병원은 연차수당 지급 건이 목돈이 된다며 연차 촉진제를 사용하거나 미사용 연차를 소멸시키는 등 직원들에게 연차를 반납하게 시키고, 마일리지 제도를 만들어 병원의 진료 쿠폰처럼 기한을 두어 사용하게 만들었다. 또, 병원은 수익을 늘리기 위해 2인실에 침대를 밀어 넣어 3인실로 병상을 가동하고, 휴게 공간을 병실로 탈바꿈하여 많은 환자를 입원시켰다. 간호 인력은 충원하지 않고 2명의 간호사가 60~75명을 간호하게 했다. 

점심시간에 밥을 굶는 건 예사였다.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주사를 놓고 있지만 몇몇 환자들은 병실이 좁네, 휴게실이 없네, 아파서 병원 왔는데 간호사는 없고 죽으라는 거냐, 왜 내가 말한 것은 아직도 처치를 해 주지 않느냐며 언성을 높인다. 간호사는 죽을죄라도 지은 듯 “죄송합니다. 금방 갈게요!”라고 연거푸 사과를 한다. 병실 공간이 협소한 것도, 간호 인력이 없어 처치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모두 간호사 탓을 하니 그것을 감당하는 것도 우리 몫이었다. 

간호사들은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병원이 인증을 받거나 병원 리모델링 계획이 있으면 병실 바닥 청소를 하고, 침대를 옮기고, 커튼을 달고, 이사업체 비용을 아끼기 위해 직원들이 나와 짐을 나르기도 했다.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참고 견뎌야만 했다. 견디다 못해 퇴사하는 동료들이 늘었다. 나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고 싶어 12년 동안 몸담은 곳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그만두게 됐다.

 

2020 국제간호사의 날 기념 보건의료노조 기자회견 "간호노동에 존중을! 충분한 간호인력을! @보건의료노조 대전충남지역본부

 

2012년에 300병상의 천안의료원에 입사를 했다. 직원들이 하나같이 마음이 넉넉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이유로 지원을 하게 되었다. 부서의 선배가 데려간 곳은 노동조합 사무실. 개인적으로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텔레비전에서 봤던 것처럼 ‘파업’, ‘투쟁’으로 항상 분노와 적대감이 가득 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배는 병원의 환경에 적응하기 쉽고 친해질 수 있는 곳, 노동자를 대변해 주는 곳이라고 했고, 처음 만난 지부장님은 “하하! 반갑습니다. 의료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악수를 청하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전에 있던 병원에서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인사하고 눈 맞춤이란 컴퓨터 모니터밖에 없었고, 아파하는 환자, 불만이 섞인 보호자를 대면하기 바빴는데 그런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이 부담 없이 찾아와 차, 과자를 맘껏 먹으면서 힘들었던 것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작은 쉼터 같은 곳이었다. 인력이 없어서 힘들면 개선하기보다는 퇴사를 해야 하는 곳과 달리 천안의료원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면서 어떻게 하면 조합원들이 건강한 삶을 누리고 노동자가 존중받을 수 있을지 힘쓰는 것이 눈에 보였다. 간호 간병 통합서비스라는 제도에 환자 수 당 간호 인력을 법적으로 정했다. 나이트 개수를 정해 8개 이상이면 슬리핑 오프를 받을 수 있게 했다. 나오데(나이트-오프-데이)가 없으며, 마이너스 오프(정해진 인력보다 부족한 인력으로 일할 경우 생기는 오프. 누적된 마이너스 갯수만큼 쉴 권한이 생긴다)일 경우 1.5배로 수당으로 지급받을 수 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육아 단축 시간까지 부부가 2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또, 병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명절 수당, 하계휴가비, 휴게 시간 보장, 각종 회의 및 교육은 근무시간에 시행하는 등 노동조합이 있기에 우리의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을 노동조합이 함께했기에 가능한 것 같다. 

 

나는 지금은 일터의 노동조합 일꾼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행복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한 노동자의 울타리다. 노동조합은 더 좋은 근로조건을 목표로 하면서 사측에 법에서 정한 것은 반드시 준수할 것을 강조한다.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 직장 내 괴롭힘과 갑질, 부당한 처우에 힘들어하거나 울며 직장을 그만두는 일은 없어야 한다. 더 이상 억울함을 참으며 고통스러워하지 않기 위해 노동조합과 함께해야 한다.

노동자는 여럿이 단결할 때 힘이 배가 된다.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노동조합을 통해 우리의 권리를 정당하게 요구하고 얻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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