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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위기를 이겼는데 임금체불이라니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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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이야기_ 지역공공병원 만들기(4)

 

덕분에 위기를 이겼는데 임금체불이라니

문정주/ 의사. 《뚜벅뚜벅 이탈리아 공공의료》 저자

 

코로나19 전담병원인 지방의료원에 직원 임금이 체불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방호복을 입고 땀에 젖은 의료인이 격리된 환자를 위해 밤낮없이 헌신하는 모습이 널리 알려지던 때, 수많은 사람이 그 모습에 감동해 힘을 얻고 ‘덕분에 챌린지’에 수만 명이 동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남원의료원에서 중간급 이상 88명이 그달 임금의 절반만 받았고 강릉의료원에서는 한 달 전부터, 강진의료원에서는 석 달 전부터 임금 중 일부만 받았다고 했다. 남원의료원은 특히 대구에서 확진된 환자 수십 명을 이송받아 지역 경계를 넘는 연대를 실현한 병원으로, 임금체불 소식은 듣는 이를 당혹하게 했다. 특별한 보상은 없을지언정 월급도 제대로 지불되지 않았으니 배신감이 얼마나 클까 싶었다. 뒤늦게 정부가 코로나19 전담병원 손실보전 금액을 늘려 해결했다지만, 이 사건으로 지방의료원의 운영 기반이 얼마나 허약한지가 생생히 드러났다.

 

보상은커녕 임금체불이 현실

실은 지방의료원에 임금체불은 잦다. 서울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일어나며 일부는 해마다 반복될 정도로 고질적이다. 겉으로는 적자 경영이라 하나 근본 원인이 따로 있다. 바로 법이 정한 운영체제다. 법에 지방의료원은 주민의 진료사업, 공공보건의료사업, 보건교육사업 등을 하는 기관이며(지방의료원법 제7조) 재원(財源)은 첫째로 사업의 수익금, 둘째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출연금 및 기부금이다(법 제18조). 대표적 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이지만, 운영에 드는 돈을 사업으로 벌어야 한다는 데서 기업과 다를 바 없고 환자 진료를 주요 수익원으로 한다는 데서 사립병원과 다를 바 없게 정해 놓았다. 게다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조금·출연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대목에서(법 제17조) 운영체제의 성격을 말해준다. 지원을 반드시 한다는 보장이 없어 지방의료원 스스로 최대한 운영비를 충당해야 하는, 이른바 독립채산제다. 

애초에 지방의료원이 환자 진료로 높은 수익을 올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돈보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고, 취약계층 보호 등 사립병원이 꺼리는 ‘돈 되지 않는’ 일을 도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익 단가라 할 수 있는 건강보험 수가는 주로 사립병원의 진료 행태를 반영해 정해지는 것으로 공공병원의 활동을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는다. 외래진료 건당 진찰료와 검사료와 주사료, 입원환자의 날짜당 입원료와 식대와 수술료 등, 시행된 항목별로 하나씩 더해 계산하므로 진료나 검사 건수가 많고 입원환자가 많으면 금액이 커지지만, 진료가 아닌 활동, 다시 말해 감염병 대응이나 취약계층 보호에는 아예 수가가 없다. 그뿐 아니라 인구가 적고 환자도 적은 농어촌에서 산부인과나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진료과 유지에 들이는 비용에는 아랑곳하지 않아 적자가 불가피하다. 법이 주문하는 독립채산제가 공공병원의 기본 임무와 정면으로 상충하는 것이다. 

적자 상황에서 의료원 경영진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은 임금체불, 즉 직원에게 빚을 지는 것이다. 불가피한 빚인 것을 인정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비를 지원해 해소하는데, 문제는 이에 관해 어떤 예측도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보조금·출연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법조문 외에는 과연 줄지, 어떤 용도로 얼마나 줄지, 언제 줄지 등에 정해진 바가 없으니 선심 쓰듯 내려보내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을 지방의료원은 그야말로 기다려야 한다. 정부(보건복지부)가 관할권을 갖고 지방자치단체(시·도)가 관리감독권을 행사하지만, 그 어느 쪽도 운영비를 지원할 의무를 지지 않는 이 상황을 과연 무엇이라 이해할까.

 

게도 구럭도 놓쳤다

공공병원의 기업식 독립채산제는 1981년에 전두환 정권이 도입했다. 시·도립병원을 지방공사로 만들며 내세운 이유는, 박한 공무원 월급으로 의사를 구할 수 없으니 운영에 자율권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시청·도청에 소속된 공무원 체제이던 병원을 의료원으로 간판을 바꾸게 하고 시장 가격에 맞춘 급여로 전문의를 초빙해 운영비를 벌라 했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가 권력을 장악한 시대였던 만큼 정권의 방침은 거침없이 이행되었다. 당시 이에 관한 정치권 논의는 고사하고 국민 여론이나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에 관한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지방공사 의료원에서 의사들은 점차 비정규 계약직으로 변해갔다. 의료원 운영진은 의사에게 고액 연봉을 보장하는 대신 수익을 평가해 재계약 여부에 선택 수단을 갖고자 했고, 의사는 의료원을 평생직장으로 여기는 대신 짧게 근무하며 높은 소득을 올리고자 해, 불안정한 계약직 고용의 이해타산이 서로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병원의 의료 발전을 가로막는 변화였다. 무엇보다 팀워크가 약해졌다. 단순해 보이는 외래진료에도 의사와 간호사, 임상병리사, 원무직원, 청소원 등 여러 직종이 필요하며 입원진료와 응급의료에는 더 많은 직종이 가세해야 한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같은 팀워크가 의료에 요구되며 여기서 의사의 리더십은 가장 중요하다. 수준 높은 의료는 뛰어난 리더십이 있어야 가능한데, 이걸 단기 계약직으로 머물며 조직에 대한 책임도 권한도 없는 의사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의료원은 의사가 있어도 의사의 리더십은 없는 병원, 수준 높은 의료를 시행하기 어려운 병원이 되었다. 

2005년에 정부는 지방공사 의료원을 지방의료원으로 한 번 더 바꾸었다. 공공의료 강화를 표방한 정책에 따라 의료원을 공기업에서 제외해 행정자치부가 아닌 보건복지부가 관할하고, 국가 예산을 지원해 시설·장비를 개선하게 하며, 공공성에 무게를 싣는 평가를 시행한다. 하지만 이 정책이 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적었다. 정작 지방공사 문제의 핵심인 기업식 독립채산제와 의사의 불안정 고용은 손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의료원을 기업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지방자치단체 대부분에 여전히 남아 있다.

미흡한 정책 아래 문제는 악화됐다. 의사 구인난은 여전하고 의사에게 지급하는 연봉 액수는 더 높아졌다. 2019년 지방의료원 의사의 평균 연봉은 2억 1천여만 원, 최고 연봉은 6억 5천만 원에 달한다. 의료원 인력 다수를 차지하는 직원의 평균 연봉이 약 4천 5백만 원이므로 의사는 직원보다 무려 4~5배 많은 돈을 받는다. 고소득에 매달 꼬박꼬박 성과급을 받는 의사, 그보다 훨씬 낮은 연봉에 때때로 임금 체불을 겪는 직원, 이 사이에 간격은 해마다 더 벌어져 자칫 갈등으로 번질 우려마저 있다. 의료원에 기업식 운영체제를 도입한 지 40년, 의료 발전은 가로막히고 조직 안정마저 흔들린다. 이 체제를 고수할 이유가 있을까.

 

선진국의 총액 예산제, 기본 예산제

전환이 시급하다. 공공병원의 임무에 적합한 운영과 재정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미 학계에서 유럽식 총액예산제와 기본예산제가 제안되었다. 총액예산제는 공공기관에 일반적인 재정 방식이다. 연간 인건비, 관리비, 사업비 등을 기준에 따라 산정하고 이를 지급받아 운영하는 것으로 지자체, 경찰서, 소방서, 학교 등에 널리 적용된다. 연간 예산이 지급되므로 운영이 안정되며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 의료 수준을 높이고 기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기본예산제는 운영비 중 일부인 필수의료 제공을 위한 의사·간호사 인건비를 사전에 정액 지급하는 방식이다. 연간 예산 총액을 지급하지는 않지만, 의료원 운영 안정에 상당한 효과를 줄 수 있다.

두 가지 방식 모두 유럽 등, 국민의 건강과 의료에 관한 국가의 책무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는 공공병원에 이미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경제 규모로는 이미 선진국이니 전환을 미룰 이유가 없다. 의료를 돈벌이로 여겨서야, 공공병원에 기업식 운영을 적용해서야, 임금체불이라는 후진적인 사태가 일어나서야, 선진국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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