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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 시작한 대리운전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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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 시작한 대리운전

한철희/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선전부장

 


나는 25년간 의류를 만들고 판매하는 의류업을 하였다. 원단을 만들고 옷을 만들어 동대문 매장에서 판매도 하고 브랜드에 납품도 했었다. 2019년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서울패션위크 신진 디자이너 발굴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당선된 후 모든 것을 접고 서울시의 자매도시인 중국 우한의 국제 패션관에 2019년 8월경 입점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원단을 만들고 디자인을 하고 옷을 만들어 중국으로 보냈다. 중국으로 옷을 보내면 아내와 딸은 열심히 팔았고 바이어들의 평가도 좋았다.

하지만 2019년 12월 24일 코로나19로 중국 우한은 봉쇄령이 내려졌고 우리 가족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한 달 가까이 지나서야 중국에 있던 딸은 전세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와 격리수용소로 옮겨졌다.

 

코로나로 인하여 완전히 사업은 꼬여 버렸다. 나는 살기 위해, 아니 살아남기 위해 한국에서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낮에는 한 시즌(S/S) 빠른 봄옷을 만들기 위해 원단 시장으로 공장으로 열심히 다니고 저녁이면 대리운전을 하였다. 부산도 가고 포항도 가고 홍천도 가고 가족을 생각하며 어디든 다녔다.

 

<심야 이동노동자들의 겨울나기> (2022 서울이동플랫폼노동 사진 공모전 버금상, 이철원) 사진 제공_  休서울이동노동자쉼터

 

2020년 2월경 서대문에서 콜을 잡고 김포 쪽으로 운행하게 되었다. 손님을 내려 드리고 차에서 내리니 새벽 2시경이었다. 찬바람에 소름이 돋았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나보다 먼저 와서 첫차를 기다리는 대리운전 기사가 있었다. 나이는 대략 70살 전후로 보였다. 이 대리 기사는 있을지 모를 콜을 잡으려 한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저분은 어떤 사연이 있고 어떻게 살아왔길래 저 나이에 이렇게 추운 곳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생을 잘못 살아온 걸까, 아님 사기를 당했나?
분명 저분도 젊은 청춘이 있었다. 1980~90년대 젊은 노동력으로 열심히 일하고 세금을 내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 추운 곳에서 떨고 있는 저 대리 기사의 노후는 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20년 후 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가방에 있는 핫팩을 하나 건네주니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렇게 아침 첫차가 올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본인은 나이가 들어서 젊은 사람들보다도 콜이 많이 안 보인다고 이야기를 한다. 대리운전 보험료는 1년에 300만 원 넘게 내고 있으며 프로그램비는 4만 5천 원을 낸다고 한다. 그리고 대리운전 회사는 그것도 모자라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데 출근비로 매일 1천 원씩 통장에서 빼 간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왜 나의 노동조건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안 하고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던 것일까!

 

다음 날 집에 와서 알아보니 서울에만 3천 개가 넘는 대리운전 회사가 있었다. 그중에 어떤 회사는 대리운전 기사를 하인이나 머슴 부리듯 하고 온갖 갑질을 일삼으며 대리 기사들의 노동의 대가를 착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어찌하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뿐더러 내 코가 석 자가 아니던가!

 

‘그래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하자.’ 마음먹고 열심히 일하던 어느 날 화곡동에서 손님을 태우고 일산으로 모셔다드리기 위해 운행을 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는데 자동차 앞범퍼가 바닥에 닿아서 떨어졌다. 20대의 젊은 손님은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며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해 댄다. 차에서 내려 앞범퍼를 보니 튜닝을 해서 범퍼가 낮게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너무나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떨어진 범퍼를 잡고 다시 끼워 넣으려고 애를 썼다. 다행히 범퍼가 쏙~~ 하고 다시 맞춰졌다. 젊은 손님은 그래도 소용없다면서 보험 처리를 해 줄 것을 요구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보험회사 직원을 불렀다. 보험회사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보험회사 직원은 어쩔 수 없다며 보험 처리를 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너무나 억울해서 젊은 손님에게 당신이 아무리 조심해서 내려와도 범퍼는 떨어진다고 얘기하자 본인이 차를 몰아서 범퍼가 떨어지면 그냥 보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후진해서 차량을 지하 주차장 위쪽으로 몰고 올라가서 다시 내려왔다. 젊은 손님이 차량을 조심히 천천히 운전하며 내려와도 범퍼는 다시 떨어졌다. 그러고는 내게 와서 없었던 일로 할 테니까 그냥 가라고 한다. 나는 너무나 놀라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너무 속상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다음 날 오후 4시경 젊은 손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혹시 검찰청에 신고하셨어요?”

“아니요. 신고 안 했는데요. 왜요?”

“혹시나 검찰청에서 전화 오면 아무 일 없었다고 꼭 좀 얘기해 주세요.”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고 황당한 일인가! 여러 군데서 신고를 당한 모양이다. 나는 젊은 손님이 말로만 듣던 대리운전 기사를 상대로 사기 치는 보험 사기꾼이란 걸 알게 되었다. 너무나 화가 났다. 이런 일은 대리운전 관련 단체 등에 알려서 또 당하는 사람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해 전 우연히 인터넷 검색으로 대리운전노조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알고 노조에 가입했는데 나는 노조비만 내는 조합원이었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에 전화를 해서 조합 간부를 만나기로 했다.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고 하여 노동청으로 찾아갔다. 그 앞에는 김주환 위원장이 삭발을 하고 이창배 교육국장과 함께 천막에 있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노동자의 요구안(특수고용노동자에게 산재와 고용보험 적용 및 노동기본권 보장 등)을 들고 피켓시위를 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노숙을 하며 생활을 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농성을 하고 투쟁을 한다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전국대리운전노조는 고용‧산재보험 전면 적용 및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2020년 7월부터 89일 동안 농성했다. 사진 제공_ 전국대리운전노조

 

 

나는 며칠간 이들과 함께 생활했다. 불법 해고에 삶의 터전을 잃고 우시는 60대 분들을 보면서 ‘이거 뭐지?’ 하면서 점점 노동조합에 빠져들었다.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인간다운 삶으로 바꾸려는 김주환 위원장과 이창배 교육국장의 삶의 자세는 정말로 진실했다.

“위원장님은 이 일을 왜 하세요?” 하고 물었다.

“그냥 삶이죠!”라고 대답한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단 말인가? 나만을 위해 살아왔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나를 위한 삶, 우리를 위한 삶, 우리 모두를 위한 삶 중에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남은 삶, 내 힘을 보태면 좀 더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

 

2022년 8월 판교역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한철희 씨. 대리운전노조는 카카오모빌리티에 유료멤버십인 '프로서비스' 철회 및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사진 제공_ 전국대리운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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