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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정년퇴직하는 것이 꿈일세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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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작은책 산재 상담소


여기서 정년퇴직하는 것이 꿈일세

 

권동희/ 공인노무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2005년도는 제가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이제 막 산재를 담당하여 열심히 뛰어다니던 시절입니다. 당시 철도노조 조합원이었고, 정년을 몇 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폐암이 공무상 재해로 불승인된 어르신을 만났죠. 젊은 저는 열정에 넘쳤습니다. 그때 제가 면담하면서 궁금했던 것이 있었어요.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웠지만 물어보았어요.

“어르신, 폐암 4기인데, 여기 당장 그만둬야 하지 않나요?” 

웃음 짓던 당신은 그렇게 한마디만 하셨지요. 

“나는 여기서 정년퇴직하는 것이 꿈일세.” 

저를 노무사로 부르지 않고 “권동희 씨, 권동희 씨”라고 부르던 인자하신 얼굴이 생생합니다. 

 

경기도의 한 화물역. 사진 제공_ 전국철도노동조합

 

당신은 1976년에 철도청 인천공착장 화차2공장의 공원으로 입사해서 소위 기계공이라고 불리는 일을 하셨지요. 그리고 제천 화차공착장으로 옮겨 일을 하셨어요. 지금은 잘 볼 수 없지만, 기계공은 차에 필요한 각종 부품이나 보수품을 직접 제작하는 기술자죠. 작업을 위해서는 선반을 이용해 쇠를 깎는 일을 항상 해야 했어요. 당시 제가 있었던 영등포 민주노총 건물 뒤편에 작은 기계 상가들이 밀집해 있어 사건을 맡은 뒤로 유심히 살펴보았어요. 온통 기름때에 검게 물들어 있은 작은 공구 상가들의 아저씨들은 여전히 절삭유(금속 가공유)를 보호구 없이 사용하고 계셨지요. 

 

소송 실무를 맡은 이후 선반 작업과 절삭유에 대해 여러 자료와 논문을 검색해 보았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국내에 절삭유와 폐암의 인과관계에 관한 연구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방송통신대학교 박동욱 교수님이 절삭유에 대한 여러 논문을 작성한 것을 알게 되었고, 일면식도 없는 교수님께 찾아가서 뵙고 싶다고 연락을 드려 만날 수 있었어요. 화창한 봄날 음료수 한 박스 사 들고 가서 박 교수님을 만나 뵈었어요. 교수님은 우리 사건의 여러 정황을 듣고서 안타까워하셨어요. 그렇게 귀한 시간을 내 주신 교수님은 이후에 연락을 주셨는데, 결국 절삭유와 폐암만을 연결시켜서는 인과성이 부족하다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저는 다시 작업 내용을 분석하기 시작했어요.

그 시작은 제천 화차공착장의 현장 조사를 다시 하는 것이었어요. 이미 2005년 6월 15일에 내려가 현장에서 일했던 선반과 절삭유, 바이트, 붕산, 브라스, 그라인더, 용접 등 여러 작업 내용과 도구들을 조사했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갖고 다시 내려갔어요. 천천히 현장을 다시 살펴보고 동료분들을 만나 보았어요. 주요 담당 업무였던 ‘선반 작업, 브라스 성금 작업, 바이트 용접 작업’에 대해 면밀하게 재조사를 진행했고, 진술서와 증인으로 나서 줄 것을 부탁했어요. 오래전 제천 화차공착장은 환풍 장치도 없었고, 작업복 이외에는 보호구가 전혀 없었어요. 브라스 성금 작업 시 염산의 독성 때문에 자비를 들여서 마스크를 구입해야 했고, 동일 공간 내 화차 수선 작업 시 용접 흄과 연탄 가루, 시멘트 가루로 비산되어 작업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공간이었어요. 특히 스프레이 도장 작업도 비가 올 때는 안에서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어요. 정말 열악한 작업 환경이었지만 그때의 상황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이나 작업 환경 측정 결과서는 없었어요. 철도노조가 민주노조로 바뀐 2000년 이후에서야 작업 환경 측정을 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소송 시에는 사건의 주요한 쟁점을 선반 작업 시 사용한 절삭유의 발암성보다 바이트 용접 작업 시 크롬, 니켈 노출에 초점을 두고 서면을 작성, 제출했어요. 지금 보니 1심에서 준비서면만 6번을 제출했네요. 서증 43호증, 외국 논문 3편을 번역해서 제출했어요. 피고 공무원연금공단은 대한의사협회에 감정 촉탁을, 저희는 고려대학교 환경의학연구소에 감정 촉탁을 했다가 회신이 오지 않아 박동욱 교수님께 감정 신청을 했어요. 교수님의 꼼꼼하고 성실한 감정 회신은 대한의사협회의 회신보다 신뢰성이 높아 보였어요. 30년간의 열악한 작업 환경을 증명하기 위해서 제천 화차공착장에 다시 한번 내려가서 조사를 했어요. 

회사에 대한 사실 조회, 동료에 대한 증인 신문 등 오랜 시일을 거쳐 변론이 종결되었고, 서울행정법원은 “당초 철도청의 선반 기계공으로 채용될 때나 그 이후에 별다른 질병이 없던 원고가 약 30년 동안 선반 및 용접 작업을 하면서 폐암의 발암물질인 니켈, 크롬 등의 흄이 다량 비산되는 작업장에서 그 대부분의 기간을 환기 시설도 없고, 방진마스크도 지급받지 못한 열악한 상태에서 작업하여 오다가 이 사건 상병에 걸리게 되었다면, 비록 원고가 이 사건 상병의 중요한 발병 원인으로 알려져 있는 흡연을 하여 왔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이 니켈, 크롬에 원고가 장기간 계속적으로 노출되어 온 작업 환경이 또 하나의 원인이 되어 폐암에 이르렀거나 그 때문에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악화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서울행정법원 2006. 12. 89. 선고 2005구단4291판결)라고 우리 손을 들어 주었어요. 공무원연금공단이 항소를 했지만 판결을 뒤집지는 못했어요. 

 

소송이 마무리되고 한번 내려오라고 해서, 동료분들과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나요. 복불고기를 함께 먹었어요. 그 뒤로 거의 연락이 없었지만 정년퇴직을 했다고 들었어요. 이미 15년 전이지만 저는 그때 “노동이 무엇인지, 노동자에게 있어 정년이 무슨 의미인지” 많이 되묻곤 했어요. 그리고 인근 영등포 기계 상가를 지나다니면서 발암물질인 절삭유 기름때가 묻어 있는 얼굴들을 보면서 한편으론 너무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로 수십 년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노동하는 분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때 어르신은 제게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 주셨는데, 어린 저는 잘 알지 못했어요.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은데, 그때 감사하다고 말하지 못했네요. “아,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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