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읽기

아파트 가격에 가려진 유령 노동자

월간 작은책

view : 1421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아파트 가격에 가려진 유령 노동자

최우영/ 한국마루노동조합 위원장

 


저는 마루 시공자입니다. 사람들이 딛고 생활하는 마룻바닥을 작업하는 노동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술자라고 알고 있고, 심지어 다른 공정의 작업자들까지도 기술자 아니냐고 합니다. 하지만 마루 시공자들은 노동자도 아니고 특고나 프리랜서도 아니며 아무것도 아닌 유령 작업자입니다. 

시행사, 건설사, 마루 제조회사, 시공 회사, 관리 사장, 그 밑의 관리자, 또 그 밑의 관리자…. 끝도 없는 다단계 구조 속에서 건설사는 마루 노동자를 일용직 노동자로 신고하고 시공회사나 그 밑의 관리자는 사업자등록증도 없는 마루 노동자를 3.3퍼센트 사업소득으로 신고해서 사업자로 만들어 버리는, 한마디로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입맛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노동자입니다. 아마도 21세기 대한민국에 마지막 남은 소작농이 마루 노동자일 것입니다.

당연히 근로기준법은 딴 나라 이야기며 수많은 노동조합이 외치는 노동 3권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작업한 평수 물량으로 임금을 받는 마루 노동자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평당 1만 원의 최저임금 수준입니다. 제대로 된 교섭조차 할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마루 시공 전 준비 작업 중. 사진 제공_ 최우영

 

마루 노동자의 하루는 새벽 5시부터 시작해서 저녁 7~8시 정도가 되어야 끝납니다. 주 80~90시간 일합니다. 어떤 노동자는 한 손엔 김밥, 한 손엔 망치를 들고서 쉬지 않고 작업하기도 합니다. 지방에 일자리가 생겨 객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땐 상황은 더욱 좋지 않습니다. 숙식을 자비로 처리해야 하기에 경비 아끼려고 하루 두 끼 식사를 하며 커피 한 잔으로 허기를 때우고 더 늦게까지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게 일해야 하나?”라고 물으신다면,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최저임금조차 벌 수 없기 때문에 힘들어도 생계를 위해 버티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서 일해야만 하는 작업 특성상 무릎 관절염과 허리디스크, 손목, 엘보 염증은 마루 노동자들에게는 고질병입니다. 4대 보험도 적용되지 않아, 몸이 잘려 나가지 않는 한 스스로 치료합니다. 왜냐고요? 산재 처리 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 힘들다는 소리를 원청과 관리자에게 듣기 때문입니다. 늘 고용불안에 떨고 있는 마루 노동자에게 일거리는 목숨과 같으니까요.

 

마루 시공 작업 중인 최우영 씨. 사진 제공_ 최우영

 

 

먼지와 시멘트 가루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고 숨을 쉴 수도 없다. 사진 제공_ 최우영

 

더 큰 문제는 작업 평수에 따라 임금이 정해지는 겁니다. 사측은 마루 노동자가 작업하기 전 알아야 할 실제 평수를 작업이 끝난 후 알려 줍니다. 이 과정에서 칼질(작업 평수를 의도적으로 낮춰 평수를 떼먹는 것)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이것을 마루 노동자들은 확인할 수도 항의할 수도 없습니다. 직접 확인하려고 하면 입주가 되어 있고 항의를 하면 소위 관리자에게 찍혀서 고용이 안 될까 봐…. 원청이 관리자에게 일감을 주고 고용과 모든 부분에 대해 관리자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구조에서는 관리자가 무소불위의 갑이며 마루 노동자는 을입니다. 이렇기에 불법이 편법이 되고 부조리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법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건설 노동자 퇴직공제금조차 한 달을 꼬박 일해도 단 하루도 적립해 주지 않거나 단 며칠만 적립해 주는 식으로 하루 4~5천 원을 갈취당하고 있습니다. 근로계약서조차 작성한 적 없고 임금명세서조차 받지 못하는 마루 노동자는 임금 체불이 있어도 고용노동부가 아닌 법원에 가야 합니다.

 

작업환경은 두말할 것도 없겠죠. 마루 노동자는 건설 현장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 투입됩니다. 사람들이 입주하기 바로 전이죠. 그러다 보니 그나마 있던 간이 화장실을 철거합니다(더러워서 사용할 수도 없지만). 깨끗한 건설사 직원 화장실은 사용 못 하게 막아 두고…. 그러면 다른 수많은 작업자들은 용변을 어디에 해결할까요? 세대 안 구석진 곳이나 바닥에서 몰래 해결합니다. 결국 마지막 작업 공정인 마루 노동자가 작업을 하기 위해 바닥의 용변과 쓰레기를 치울 수밖에 없습니다. 건설사는 마루 노동자들이 작업량에 대비해 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내버려 두면 스스로 치우고 작업할 것이라는 것을 이용하는 거죠. 

 

마루 공정은 건설 현장의 마지막 작업 공정이라  마루 노동자가 바닥의 쓰레기와 용변까지 치울 수 밖에 없다. 사진 제공_ 최우영

 

남성 마루 노동자에 비해 여성 노동자는 더 열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방광염에 만성변비와 조기폐경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화장실을 안 가도 되니까요. 화장실 문제 때문에 그만두는 여성 노동자도 있습니다. 마루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저런 똥밭과 쓰레기 속에서 일할 수 있냐고 물으면 익숙해져서 괜찮다고 애써 덤덤히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20~30대의 시공자는 찾아볼 수 없으며 숙련공까지 각종 질병으로 현장을 떠나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그늘 속에 침묵하고 있는 고용노동부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대한민국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5000여 명의 전문 마루 시공자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하자 발생, 안전사고 등 피해는 결국 수억 원 아니 수십억 원의 돈을 지불하고 사는 입주민과 건설 회사에게 돌아갑니다.

 

이 모든 불법과 편법에 대항하고 기본적인 권리를 외치기 위해 2022년 6월 13일 노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근로자성을 인정받고 빼앗긴 근로기준법을 되찾아서 노동자가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2022년 6월 23일 프레스센터에서 ‘가짜 3.3 프리랜서 공동기자회견’을 시작으로 2022년 10월 13일 서울 고용노동청에서 기자회견과 근로자 지위 확인 고발, 진정을 접수했으며 2022년 11월 12일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한국마루노동조합의 존재를 알렸고 2022년 12월 14일 빼앗긴 퇴직공제금 제대로 조사해서 적립해 달라는 진정까지, 조합 설립 후 6개월의 짧은 시간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한국마루노동조합과 권리찾기유니온은 2022년 10월 13일 서울고용동청 앞에서 '마루 시공 노동자 근로자 지위 확인 공동진정'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했다. 사진 제공_ 한국마루노동조합

 

마루 제조회사와 시공 회사, 관리자는 일자리를 빌미로 탄압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측이 그렇듯이 먹고살려면 별수 있겠냐는 식이죠…. 원청이 임금을 주고 관리자의 지휘·감독을 받고 작업 지시를 따르며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도 그 누구도 마루 노동자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마루 노동자들이 근로자가 아니면 대체 뭡니까? 현장에선 원청의 지시를 받은 관리자가 프리랜서 계약서를 작성하라 합니다. 거부하면 나가라는 식으로 강요합니다. 마루 노동자들은 거창하고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근로기준법 안에서 정당한 교섭을 통해 정당한 근로시간에 정당한 임금을 받으며 건강하게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뿐입니다.

 

한국마루노동조합은 소수 노조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연대 없이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을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까지 함께해 준 시민단체와 조합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근로기준법을 쟁취하는 그날까지 끝까지 외칠 것을 약속합니다.

 

<작은책> 정기구독 신청 : http://www.sbook.co.kr/subscrip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자동입력방지 스팸방지를 위해 위쪽에 보이는 보안코드를 입력해주세요.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세요.

창닫기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