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읽기

건설노동조합은 정말 ‘건폭’인가

월간 작은책

view : 1293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건설노동조합은 정말 ‘건폭’인가

이윤재/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

 


새벽 5시 30분경 전화벨이 울린다. 누구보다 일찍 새벽 첫차를 타고 일터를 향하는 건설노조에서는 흔한 일이다. 덜 깬 잠이 확 달아날 정도로, 수화기 너머로 수십 년간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고령의 조합 간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현장으로 나서려는 길에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수사관들이 압수수색을 진행한다며 와 있단다. 평생을 경찰서 근처도 안 가 본 건설 노동자들에게 2023년 벽두부터 벌어지고 있는 일상이다.

 

지난 1월 19일 서울경찰청은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및 지부 산하 사무실 5곳을 압수수색했다. 사진 제공_ 전국건설노조

 

어쩔 수 없이 그 새벽에 자문 변호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황급히 출근한 사무실 건물 근처에는 경찰 버스 여러 대가 도착해 있다. 이윽고 출근 시간에 맞춰 언론사 카메라 기자들을 대동한 경찰 수사관들이 지부 사무실로 들이닥친다. 변호사의 영장 확인을 거치겠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형사팀 전부 들어오세요.”라는 지휘에 따라 경찰관들이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려 하고 상근 동지들이 죽을힘을 다해 저지하며 적법 절차에 따른 영장 확인과 집행을 요구한다.

 

힘없는 이들에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법치란 이렇게 폭압적이고 편의적이다. 숫제 대통령이 ‘건폭’이라는 신조어로 매도하고 국토부 장관이 연일 조폭이니, 가짜 노동자니 왜곡을 하는 마당에 수사기관이든 현장의 건설 자본이든 건설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존중’을 찾기는 쉽지 않을 노릇이다. 한편으론 퍽 감사한 일이다. 그대들이 언제 이렇게나 건설 노동자에 관심을 보였던가? 물경 대통령과 장관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감읍할 지경이다.

그들이 진정 건설 현장의 불법행위를 개선하고 건설 현장의 실상을 알고 싶다면 수십 년간 방치되고 은폐되고 외면당해 온 노가다, 아니 건설 노동자의 절절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다.

 

건설 일자리는 일당직이다. 잡코리아에 ‘GS건설 시공인 모집(○○개월)’ 공고를 본 적이 있는가? 없다. 건설사는 공개 채용으로 사람 쓰지 않는다. 그럼 건설 현장 일자리는 어떻게 구하나? 고용노동부(워크넷)가 구직자와 구인자를 매칭해 주나? 우리나라 정부는 그런 일 하지 않는다. 쉽게 볼 수 있는 인력사무소, 알바천국 같은 최저일당 10퍼센트 수수료 떼고 허드렛일만 시키는 사람 장사 천국이다.

 

그럼 ‘오야지’라고 불리는 도급사장을 찾아야 한다. 현재도 건설 노동자의 80퍼센트가량은 이 방식을 통해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오야지들이 하는 일은 현장 소장, 건설사에 ‘우리 식구 써 달라’고 돈 봉투 찔러 주고, 그렇게 일자리 따내서 식구(건설 노동자)들 일당 떼어먹는다. 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돈을 벌어 가는 것이다. 내일 출근만 할 수 있다면 오야지 사장에게 감사하다. 불법하도급이 근절될 수가 없다. 정부의 대책은 무엇인가?

전국건설노조가 제작한 다단계 하도급 비판 만평. 사진 제공_ 전국건설노조

 

노조 만들어 하는 주된 활동이란 게 중간 착취하는 사장 배제하고 직접고용 일자리를 요구하고 단체협약 맺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걸 ‘채용 강요’라고 한다. 그렇다면 강요받은 건설사는 공정한 채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현 건설산업의 왜곡된 고용 구조는 누구 책임이고 대안은 무엇인지 국토부 장관 원희룡은 답하라. 나라에서 고용을 주선하든지, 원청사가 하든지….

 

 

고용안정 요구를 정부가 '채용강요'라고 하자 전국건설노조가 제작한 만화. 사진 제공_ 전국건설노조

 

건설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은 그간 유료 직업소개소에 돈을 내고 일했다. 하지만 노조가 있어서 무료 취업지원센터에서 일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다. 똥떼기(중간 착취)도 없어졌다. 건설업체와 근로계약서, 전자카드 등으로 투명하게 계약해서 없어졌다. 쓰메끼리(임금 체불)로 60일씩 임금을 못 받던 일도 사라졌다.

 

건설 일자리는 특수고용직이다. 트럭(기계) 값이 억 원대면 뭐하나. 할부금, 기름값, 보험료에 1년 중 일할 수 있는 날은 손에 꼽히고 몇 달씩 임대료 떼이는데. 게다가 기계 임대료는 임금 채권이 아니라 떼먹혀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 트럭 일 하면서 먹고사느라 개별적으로 건설사들 상대로 ‘내 기계 써 달라’고 영업도 못하고 임대료도 제값 받을 수 없으니 노조 결성해서 고용 요구, 단체협약 요구한다. 이게 공정거래법 위반이면 사장님 하기 싫으니 IMF 이전처럼 건설사가 건설기계 도로 가져가라(1997년 IMF 이전에는 원청 건설사가 덤프트럭, 타워크레인, 굴삭기 등 건설기계를 직접 보유하고 조종사들을 직접 고용했다. 그러나 IMF 이후에 종합건설사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건설기계 및 기술자들을 전부 임대사(하청)로 외주화하였다).

 

건설 일자리는 위험하고 힘들다. 그래서 노조 조합원은 위험 작업 시키면 관련법에 따라 거부하기도 하고 고발하기도 한다. 또 조합원들이 골병들지 않게 노동 안전 현장 활동을 한다. 노조가 있어서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용기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상반되게 산재 사망의 대다수는 비조합원이 차지한다.

일자리만 힘든가? 현장은 얼마나 열악한가? 화장실도 없어서 건물 안에 용변을 봤다. 하지만 노조 만들어서 현장에 화장실이 생겼다. 휴게실도 없어서 점심시간에 박스 깔고 쉬었다. 노조 덕분에 이제는 휴게 공간에서 옷도 갈아입고 쉴 수 있다.

 

건설사는 공사 기간이 곧 돈이기에 노조만 제거하면 군말 없고 값싼 외국인, 비조합원을 맘대로 쓸 수 있으니 노조와 건설 자본은 이해가 대립된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건설노조 엄단해서 선량한 노동자 보호’하겠다며, 노동조합을 불온시하고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 정부 부처의 수장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처사이다.

차라리 솔직해지자. 현 정부는 노동자 보호하는 정책 못 한다. 지난 정부에서도 ‘건설산업 혁신 방안’, ‘제4차 건설근로자 고용 개선 기본계획’ 등을 통해 기능인력 정규직 고용 유도, 입·낙찰 시 시공 인력 상시 고용률 반영, 직접 시공 확대, 불법하도급 근절, 적정 임금, 건설안전특별법, 포괄임금 폐지 등을 발표했으나 아무것도 안 했다. 왜? 건설사들이 동의하지 않으니까! 지난 정부에서 위의 정책을 주도했던 국토부, 고용노동부 관료 누구라도 해명해 보라. 그런데 현 정부는 한술 더 떠 건설사의 민원인 건설업 외국인 노동자 취업 비자를 풀고 불법 형태의 고용도 눈감아 주기로 했다.

 

건설산업은 복잡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불투명하다. 연간 260조 원이 투입되는 복마전 시장이다. 재벌의 돈줄이 여기에 있고, 일부 노조의 비위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건설노동조합은 단체협약을 통해 고용안정, 노동조합 전임 활동 등을 보장받고 있다. 이것이 위법한가?

 

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은 지난 2월 28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 제공_ 전국건설노조

 

우리는 그동안 건설산업을 투명하게 바꾸기 위해 분양 원가 공개도 필요하고, 건설안전특별법도 필요하고, 하도급 구조를 투명하게 바꿔 직접 시공 및 직접 고용이 필요하다고, 고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주장하며 투쟁해 왔다. 그러면서 많은 걸 바꿔 왔다.

정부에 묻는다. 건설산업 정상화의 방안이 노동조합 때리기인가? 이제 답을 해야 할 차례이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자동입력방지 스팸방지를 위해 위쪽에 보이는 보안코드를 입력해주세요.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세요.

창닫기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