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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실습생은 아르바이트 대용인가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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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실습생은 아르바이트 대용인가

박선재(가명) / 한국기술교육대 재학생

 


저는 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기술교육대학(이하 한기대) 4학년 학생입니다. 저희 학교는 현장실습이 전공 필수 학점으로 배정되어 있어, 졸업을 위해선 현장실습을 다녀와야 합니다. 제가 현장실습으로 문제를 겪기 전까지는 저도 다른 학생들처럼 의구심 없이 현장실습은 당연히 다녀와야 하는 것, 학교가 취업을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이자 인턴 경험처럼 자기소개서에 기재할 수 있는 경험 영역의 스펙으로 여겼습니다. 재학생 커뮤니티에 간간이 올라오는 현장실습에 대한 비판과 불만도 일부의 특수 사례로만 치부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2022년 1월 천안 풍세산단에 위치한 어떤 제조 공장에 현장실습을 다녀오면서 바뀌게 되었습니다.

 

3학년을 마친 겨울방학, 저는 해당 기관이 학생을 잘 배려해 준다는 IPP(기업 연계형 장기 현장실습) 센터 담당 교수의 말에 4주짜리 단기 현장실습을 신청하였습니다. 첫 출근을 하자마자 생산부장은 학생들을 집합시킨 후 학생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마스크를 벗으라고 강요했습니다. 당시 코로나 시기였고 낯선 공간에 처음 출근하여 의지할 곳이 없는 학생들은 생산부장의 고압적인 태도 앞에서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산부장의 일장 연설이 끝나자, 저희는 직무교육 따위 없이 생산 작업에 투입되었습니다. 25~30미터 길이의 전선을 풀고 3~4가닥씩 케이블 타이로 묶는 단순 반복 작업이 아침 9시부터 17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튿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속칭 ‘은갈치’라고 하여, 케이블을 벨크로가 있는 은박지에 감싼 후 두루마리 모양으로 감는 일에 아침 8시 반부터 17시까지 또 하루를 보냈습니다. 다음 날은 전선 피복을 벗기는 일, 피복을 벗겨서 안에 있는 전선을 자르거나, 전선을 자른 후 커넥터에 전선을 하나하나 꽂기, 열풍기로 피복을 팽창시키는 일 등 제 전공인 기계공학과는 어떤 연결고리도 찾아볼 수 없는 수작업 업무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직무교육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전선을 커넥터에 끼우는 작업. 사진 제공_ 박선재

 

학교에서 홍보만 믿고 온 실습생들의 의욕은 꺾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와 같은 장소에서 동일 업무를 하는 단기계약 근로자가 최저임금을 준수하는 아르바이트 계약서를 저희 앞에서 쓰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7일째 되는 날, 생산부장은 학생들을 공장 사람들 모두가 보는 앞으로 집합시킨 후 ‘대표님이 학생들을 내쫓으라 한다’, ‘불성실하게 작업하는 학생이 몇몇 보인다’, ‘학생들 내쫓으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지?’라고 했습니다. 이에 저는 학생들의 근무 태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이의를 제기하며, 오히려 회사가 학교에 제출한 운영 계획서와 다르게 전공과 무관한 업무를 시키고, 직무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점을 지적하자 생산부장은 되레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특히나 최저임금의 35퍼센트에 못 미치는 월 50만 원의 실습비를 갖고선 “회사에서 이윤을 남기기 위해 조금 투자해서 학생들을 데려다가 하는 거는 기업가로서 당연한 일이야.”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현장실습은 실습 기관의 귀책으로 중단되었지만, 학교는 대체 실습 기관을 구해 줄 수 없으니 계속 다닐 것을 종용했습니다. 대체 실습 기관을 정말 원한다면 저에게 실습 기관을 직접 구해 오라고 했습니다. 이는 학생이 실습 기관을 섭외한 경우 인정할 수 없다고 명문한 운영 규정 따위는 우습게 여기고, 자신들의 의무를 학생에게 떠넘겨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탄원하며 강하게 반발하자 학교는 대체 실습 기관 단 한 곳을 소개하였습니다. 하지만 해당 실습 기관의 운영 계획서 제공도 없이, 구두로 ‘졸업생이 중간 간부인 회사이니 편하게 갔다 올 수 있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한 설명만 하였습니다. 이 기업은 폭언했던 기관의 실습비(최저임금의 35퍼센트)보다도 현저히 적은 금액(최저임금의 20퍼센트 미만)을 지급하면서, 직무교육 방식과 시간 등의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이에 저는 ‘또다시 운영 규정을 지키지 않는 기관에 갈 수 없다’고 회답하였습니다. 학교는 현장실습 지원 및 실습 사실을 전산 기록 삭제로 응수했습니다.

 

학교는 제가 교육부에 제기한 국민신문고에 답하기를, 자신들은 대체 기관을 소개하는 등의 노력을 하였으나 학생의 거부로 인해 실습이 중단된 것이라며 저에게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또한 대체 실습 기관에 보내기 위해 “폭언이 있었던 실습 기관에서 7일 근무한 것을 출석부에는 10일로 반영해 주겠다. 대신 다른 학생들에겐 비밀로 해야 한다. 특히 그 실습 기관에 계속 다니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더욱이.”라고 저를 은밀히 회유한 부분도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뗐습니다. 교육부는 한기대가 고용노동부 산하의 공공기관이면서도 사립대학이기에 자율성을 보장해야 하므로, 학교가 단순히 ‘개선을 노력하겠다’ 식으로 응하면 자신들은 제재할 수 없다며 감시·감독 의무를 회피하였습니다.

 

이후 저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님 도움으로, 2022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였고, 현재까지 인권위의 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장실습은 과거 1960년대부터 시작됐으나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이나 규정이 전무했습니다. 2016년 안전의 문제에서 학생 보호를 위해 ‘대학생 현장실습 운영 규정’이 교육부 고시로 제정, 2018년 9월 현장실습생의 산재보험 가입 의무화, 이후 열정 페이 문제가 2020년 국정감사에서 다뤄져 개정한 것이 2021년 7월부터 시행된 ‘대학생 현장실습 학기제 운영 규정’입니다. 이 개정으로 많은 대학들이 현장실습 규모를 축소했습니다. 상위 30개 학교의 이수 학생 수가 2만 5905명에서 1만 301명으로 60퍼센트 넘게 급감해 버린 것은 그동안 ‘전공과 무관하게’, ‘저비용 노동력 착취’의 수단으로 이용해 왔음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한기대는 여전히 의무 요건을 해제하지 않았고, 때문에 운영 규정을 위반하는 회사를 학교가 구해 오고, 학생들을 그러한 곳으로 보내고, 감시·감독을 회피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저처럼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이 있으면 학사 행정으로 불이익을 줍니다. 다음 학기에 그 실습 기관이 학생들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문제를 겪은 실습 기관은 그다음 학기에도 기계공학과 학생들을 모집했습니다.

 

학교가 운영 규정을 위반하면서도 실습 기관을 모집하지 못해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이 짊어지게 됩니다. 한기대의 2021년 현장실습 참여율이 53.9퍼센트입니다. 실습을 못한 나머지 학생들은 학교의 잘못으로 졸업 유예 등의 피해가 발생할 것이고, 그다음 학년 학생들의 졸업에도 순차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한기대의 졸업 의무 요건 폐지뿐입니다. 단기 현장실습은 실무나 교육과는 무관한 잡무를 맡기는 것이 부지기수고, ‘실습생은 근로자가 아니라서 최저임금 안 지키면서도 사용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대용’으로 악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운영 규정을 어겨 가면서 억지로 학생을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학교는 총학생회에 LINC+(사회맞춤형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 예산 때문에 ‘의무 요건 폐지 불가’라고 설명하였지만 장기 현장실습 참여율(2021년 기준)은 타 대학보다 월등히 높은 1위입니다. 따라서 예산을 받기 위해 단기 현장실습을 강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학생들이 추가 학기나 중장기 계획이 어그러짐을 감수하면서도 4~6개월 장기 현장실습을 가는 것은, 실무를 체험해 볼 수 있고, 취업에 있어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학생의 졸업을 인질 삼아 현장실습을 보낼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바꾸고 장기 현장실습이 잘 운영되도록, 더 양질의 실습 기관을 구하는 등의 방향으로 역량을 쏟는 것이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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