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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에 비상 걸린 양봉 농가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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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이상기후에 비상 걸린 양봉 농가

이순이/ 10년 차 양봉 농민

 


요즘 벌통 내검을 시작하기 전에 왕롱 두세 개를 주머니에 넣고 봉장으로 간다. 왕롱은 여왕벌을 가두기 위한 도구로, 성냥갑 크기에 소쿠리처럼 구멍이 송송 뚫린 투명한 플라스틱 제품이다. 내검을 하다가 막 태어나려는 처녀왕을 발견하면 얼른 왕롱에 가두고 시녀벌도 대여섯 마리 넣어 준다. 그러고는 햇빛을 오래 받으면 여왕벌이 죽을 수 있으므로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다가 여왕벌이 없는 벌통을 발견하면 그곳에 넣어 준다.

 

지난 10년간은 성적이 좋은 벌통에서 3일 된 애벌레를 옮겨 담아 인공적으로 우수한 여왕벌을 키워 내서 계획적으로 벌통 수를 늘려 왔는데, 올해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이변이 많이 생기면서 여왕벌이 다수의 벌들을 데리고 벌통을 떠나는 분봉이 거의 날마다 일어났다. 원래는 새로운 여왕이 태어나기 하루나 이틀 전에 원래 있던 여왕벌이 꿀벌 군사들을 이끌고 나가기에 분봉 나간 벌통 안에는 처녀왕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은 처녀왕이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여왕이 분봉을 나가 버려서 여왕벌 없는 벌통이 많아졌다. 그래서 내검을 하다가 처녀왕이 태어나면 반갑게 맞아 왕롱에 가두었다가 무왕군 벌통에 넣어 주기를 반복하고 있다.

 

소비(벌집판). 사진_ 이순이

 

4월 한 달 동안 분봉으로 늘어난 벌통 수가 서른 통이 넘었다. 오죽하면 남편이 “10년 동안 일어날 분봉이 올 한 해에 다 일어난 것 같네요!”라고 말할 정도다. 기후변화로 3월부터 4월까지 차례로 피고 지던 꽃들이 3월 중순에 한꺼번에 피었던 모양이다. 우리 눈에는 꽃이 보이지도 않는데 난데없이 벌집에 꿀이 잔뜩 들어찼다. 어떤 분은 “30년 양봉하면서 3월에 이렇게 많은 꿀이 들어오는 건 처음이라 불안하기까지 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월동 식량으로 꿀장에 채워져 있던 설탕 꿀(사양 꿀)과 섞이지만 않았더라면 정말이지 꿀을 떠내고 싶을 정도로 꿀이 많이 들어왔다.

벌통 안에는 먹이로 한 장만 남겨 놓고 나머지 꿀장은 빼내어 빈 벌통에 보관해 두었다가 먹이가 모자라는 벌통에 한 장씩 넣어 주었다. 예전 같으면 설탕물을 조금씩 부어 주며 외부에서 꿀이 들어오는 것으로 착각하게 해서 여왕벌이 알을 낳도록 부추겼는데 3월에 꿀이 팍팍 들어오니 여왕벌이 알을 낳아야 할 공간까지 꿀로 채워졌다. 그리고 알을 낳기 위해서 헛집을 많이 만들었는데 헛집은 모두 수벌 집이라서 얼른 떼어냈다. 아까시 꿀을 따기 위해 꿀벌 수를 늘리는 데 기를 써야 할 시기이기에 꿀장을 꺼내고 공소비(비어 있는 벌집판)나 소초광(벌집 모양의 기초가 잡혀 있는 벌집틀)을 급히 넣어 주었다. 

 

너무 이른 시기에 꿀이 많이 들어오면서 산란이 부리나케 나가고 꿀벌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바람에 때아닌 3월에 분봉 걱정을 해야 했다. 너무 일찍부터 분봉열이 일어나서 벌통마다 꿀벌들이 여왕벌을 모시고 벌통을 떠날 역모가 이뤄지고 있었다. 인공 분봉을 내자니 수벌이 아직 성숙하지 않고 기온도 낮아서 교미를 할 수 없는 시기였다. 일단 분봉열을 잡기 위해 계상을 올려 벌통 내부 공간을 두 배로 넓혀 주고 공소비와 소초광도 많이 넣어 주었건만 하루에 네 번이나 분봉이 발생하기도 했다. 새 여왕이 태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벌통 속을 이 잡듯이 뒤져서 여왕벌의 번데기인 왕대를 꼼꼼히 뜯어냈건만, 새 여왕은 계속 태어나고 기존 여왕은 꿀벌 군사들을 이끌고 벌통을 떠나는 분봉이 한 달 동안 끊이지 않았다.

 

한 달 넘게 사투를 벌이듯 벌통 뚜껑을 여닫으며 꿀 따러 갈 채밀군은 더욱 꼼꼼하게 내검을 하고 꿀벌을 꽉꽉 눌러 채워 두고 채밀군 표시를 해 두었건만, 하루아침에 분봉이 나면서 벌통 속이 휑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꿀벌을 넘치도록 채워서 꿀 따러 나가려 했던 벌통은 텅텅 비어 버리고, 자격 미달로 빼 두었던 벌통이 오히려 실해지는 바람에 채밀군을 표시하는 테이프를 떼었다 붙였다 하다 보니 벌통들이 뒤죽박죽 섞여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3일 후에 1차지로 이동을 가기로 했는데 어제 아침에는 서리가 내렸다. 서리가 내리면 꽃대가 얼어서 꽃이 말라 버리고 꿀은 나지 않는데 말이다. 대구로 이동을 간 지인은 아까시 꽃이 피고 꿀이 비치기에 설탕 꿀(사양 꿀)을 빼내는 작업인 정리 채밀을 했는데 서리가 내리고 꿀이 나지 않으면서 벌들이 굶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뒤죽박죽 기후 속에서 우리는 1차지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었다. 일단 내일 당장 칠곡에 가서 아까시 꽃 상태를 살펴보고, 그 근처인 왜관으로 이동해 있는 지인의 벌통 안을 살펴보며 결정을 해야 할 것 같다. 한 번 이동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이 만만치 않기에 이동하기 전까지 이리 재고 저리 재느라 머리가 돌 지경이다.

 

양봉장. 사진_ 이순이

 

지난 두 달 동안 우리 양봉인들은 기후변화가 던져 주는 뜬금없는 상황들로 위기를 겪으면서 동분서주했다.

작년에는 전라도와 경상남도 지역에서 꿀벌들이 사라졌고 올해에는 전국에서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어서 꿀벌값이 두세 배로 올랐다. 많은 양봉 농가들이 꿀 따기는 포기하고 꿀벌 수를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데 그게 맘대로 될지도 의문이다. 기후변화의 위기 속에서 양봉인들은 벌통 속을 더 자주 들여다보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꿀벌을 지키는 일에 몰두하고 있으니 정부와 연구원들도 우리 농부만큼 노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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