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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분신은 산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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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분신은 산재인가?

 

권동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공인노무사


지난 3월 24일, 강남 대치동에 있는 아파트에서 경비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박 씨가 인사권도 없는 소장, 입대의회장의 비호 아래 칼춤 추는 관리소장의 부당한 인사 조치 및 인격적 모멸감을 견디지 못하고 일터에서 투신자살했다’는 내용의 전단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 1일 노동절 아침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서 건설노조 강원본부 양회동 제3지대장이 분신했습니다. 그는 유서에 “제가 오늘 분신을 하게 된 건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 힘들게 끈질기게 투쟁하며 싸워서 쟁취하여야 하는데 혼자 편한 선택을 한지 모르겠습니다. 함께해서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동지들 옆에 있겠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경비노동자에 대한 갑질을 규탄하며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조와 아파트노동자 서울공동사업단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선경아파트 앞에서 추모 기자회견을 열었다. (2023년 3월 17일) 사진 제공_ 노동과세계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 열사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2023년 6월 21일) 사진 제공_ 노동과세계

 

며칠 전 저는 밤늦게까지 저와 동갑내기 노동자의 자살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남긴 유서 말고 그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그의 카카오톡 톡서랍 메모에서 그가 매일 남긴 글들을 찾았습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살고 싶어요. 살려 주세요.”라고 간절한 목소리를 남겼습니다. 수개월 동안 혼자만의 글을 남겼던 그는 결국 자신의 사무실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습니다. 저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당신과 같은 처지에 있었던 경비노동자 박 씨와 양회동 지대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살고 싶었을까, 당신처럼 얼마나 많이 가족들을 생각했을까, 살고 싶다는 그 간절함에 얼마나 외로웠을까’라고 말입니다. 

 

2014년 10월 7일 오전 9시, 당신(고 이만수 열사)은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주차장에서 시너를 몸에 끼얹고 분신을 하셨습니다. 제가 당신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뵌 것은 그로부터 수십 일이 지나서였습니다. 당신이 소속된 서울일반노조에서 상근하는 후배 노무사가 사건 수임을 의뢰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사안의 특수성과 분신 산재 사건을 잘 알지 못했고, 그냥 입주민의 학대에 가까운 괴롭힘 때문에 분신했기에 당연히 산재 승인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산재 사건 수임을 거절했고, 노조에서 직접 대리해서 해 볼 것을 권했습니다. 몇 번이나 맡아 달라는 요청을 결국 받아들여 일단 당신을 만나 보러 병원 중환자실로 향했습니다. 그때 배우자와 함께 들어갔는데, 당신은 제게 무엇인가를 간절히 말하려 했지만, 심한 상처와 고통으로 거의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던 그 모습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이후 당신은 2014년 11월 7일 ‘전신 60퍼센트 정도의 3도 화염화상’으로 사망했습니다. 당신의 사건은 연일 언론에서 다루어졌고,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국회의원들도 병원으로 찾아왔으며, 그해 연말을 뜨겁게 달군 사건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961회)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전 국민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해 국정감사장에서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에게 많은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압구정 신현대 아파트 입주민들의 비인격적인 대우에 분신항거해 사망한 경비노동자 이만수 열사의 영정사진이 열사가 일하던 초소 의자 위에 놓여졌다. (2014년 11월 11일) 사진 제공_ 노동과세계

 

저는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분신자살은 산재로 인정된 적이 없다”는 사실과 “분신은 정신적 이상 상태가 아니라 정신적 의식의 고양 상태의 표출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초 저의 생각과 다르게 산재가 인정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고, 사건을 진행하는 내내 무척이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습니다. 추가적인 이유서도 쓰고 자료도 많이 제출했지만, 판정일(2014년 11월 28일)이 다가오면서 불안했습니다. ‘만약 산재가 승인 안 된다면 그 많은 비난을 어떻게 받아야 하나’, ‘당신의 가족과 노동조합, 민주노총의 헌신적인 투쟁과 많은 이들의 연대를 물거품으로 만들면 어떻게 하나’. 처음에 노동조합에게 ‘산재가 맞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정말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다행히 당시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고인의 재해 경위와 업무 내용 등 관련 자료 일체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위원회의 정신건강의학과, 직업환경의학과 등 전문가 의견은 ‘① 업무 중 입주민과의 심한 갈등과 스트레스로 인하여 기존의 우울 상태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 능력을 감소시켜 자해성 분신을 시도한 것으로 판단된다. ② 기존 상병과의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업무상의 스트레스가 상당 부분 인정 가능함. ③ 업무 수행 과정에서 보여지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할 때 업무적으로 누적된 스트레스가 극단적인 형태로 발현되어 발병한 것으로 보이는 바,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사료됨.’의 소견으로 업무와 고인의 사망 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위원 다수의 소견이다.”(2014판정 제2053호)라며 산재로 인정했습니다.

 

당신의 사건이 산재로 인정된 이후 2017년 7월 6일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리던 안양우체국 소속 집배원 고 원영호 님이 우체국 앞에서 분신 후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5월 강북구의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 최희석 님이 입주민의 지속적인 폭언, 폭행, 협박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두 사건 모두 당신의 산재 사건과 판정서 등이 참고되었고, 산재로 승인되었습니다. 

 

노동자의 분신 사건도 산재로 인정될 수 있다는 선례는 노동운동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진전입니다. 저는 당신의 사건을 담당하면서 산재 인정 범위는 노동운동의 투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어요.

안타깝게도 경비노동자가 입주민의 갑질과 불안정한 고용 문제로 시달리는 처참한 상황과 보수 정권의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미친 탄압은 변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있습니다. 고 양회동 지대장님의 이야기처럼 노동자들은 “힘들게 끈질기게 투쟁하며 싸워서 쟁취할 것”입니다. 그것이 노동운동의 역사이며, 당신과 같이 온몸을 던져 우리에게 일깨워 준 열사들의 간절하고 소중한 뜻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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