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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작은책 산재 상담소

 

조금씩 지더라도 함께 가 보자

권동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공인노무사

 


2009년 8월 26일 19시에 첫 회의를 열었지. 소송단의 구성원 중 변호사는 3명이었고, 노무사 3명은 너와 나 그리고 김민호 노무사님었어. 그날 첫 회의에서 우리는 소송단의 명칭을 “삼성전자 백혈병 소송단”으로 확정했어. 그리고 “담당 산업의학의사(공유정옥)가 본 이 사건의 쟁점, 이 사건 상병 백혈병 등 기존 판례에 대한 쟁점 발제, 토론(권동희), 이 사건 상병의 위험인자 등에 대한 의학적 검토 토론, 직업성 암에 대한 의학적 연구성과 및 한계(박영만), 심사사건까지의 원고 증거목록에 대한 검토, 비슷한 사건에 관한 해외 사례 검토 등” 2주에 한 번씩 총 8번의 준비 회의를 하기로 했었고 그렇게 진행했지. 

 

한국 최초, 아니 세계 최초로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성 암이 산재인지 여부를 밝히기 위한 소송은 6명의 회의로 그렇게 시작되었어. 아니, 정확히는 너의 고민과 제안으로 시작된 거지. 그때 너는 민주노총 경기법률원에서 고 황유미 님 등의 산재 사건 실무를 담당했었고, 산재가 불승인된 이후 소송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법률원 본부에 있는 나에게 얘기했었어. 그때 나도 산재에 대한 경험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고, 이게 과연 소송에서 될 것인지 확신이 없었어. 그래서 기존 판례 등을 검토해 보았고, 법률원의 공식 회의에서 이 사건의 소송 진행 여부를 부정적으로 보고했어. 해 봐야 질 것이 뻔한 사건이고,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이 사건을 사실상 삼성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 삼성은 ‘반도체 공장에 화학물질은 있지만 모두 노출 기준 이하로 적법하게 관리되고 있다, 노동자가 백혈병 비호지킨 림프종에 걸릴 만한 발암물질은 없다, 호흡보호구 등 모든 규정을 지켜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변명했어. 그런 말은 나중에 삼성이 피고 보조참가인으로 소송에 참여한 이후에도 일관된 주장이었지.

 

사진 제공_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아무튼 그때 나의 걱정과 너의 주장이 겹쳐서 이 사건의 소송 여부는 한 번에 결정되지 못했지. “다퉈 보자고, 여기에서 물러설 수는 없는 거 아니냐.”라며 세 번이나 나를 설득했어. 나는 그런 너의 강직함과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 불승인이 조금씩 나오는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고 황유미 님과 고 이숙영 님이 함께 근무한 기흥사업장 3라인에서 같은 상병인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흔들렸어. 그렇게 우리의 이 무모한 소송은 법률원의 공식적인 결정으로 진행하기로 했었지. 

 

2차 소송단 회의 후 나는 백혈병과 비호지킨 림프종과 관련된 판례 분석을 맡기로 했어. 당시만 하더라도 판사를 통해서 판결문을 입수하는 것이 가능했지. 법률원 변호사를 통해 “백혈병, 비호지킨 림프종”으로 검색되는 모든 판결문을 부탁해서 하급심 판결문 41건을 받을 수 있었어. 대법원에서 인정된 2건과 함께 분석했어. 일주일 동안 판결문을 분석해 보니, 내가 가졌던 편견도 많이 깨졌고, 직업성 암 사건에서 법원 논리의 인정 근거, 한계를 찾을 수 있었지. 무엇보다 우리 사건도 이제 좀 해 볼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하는 안심이 들었는데, 2차 회의에서 일주일 동안 내가 분석한 발제문을 들은 다른 소송단원들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여 무척이나 기뻤지. 그렇게 우리는 하나씩 하나씩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소송을 준비했고, 2010년 1월 8일, 무려 93페이지에 달하는 소장을 완성할 수 있었어. 그렇게 진행된 1심 소송은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지. 거의 2주에 한 번씩 모여 소송 경과와 쟁점, 변론 준비, 서면 검토, 증거 방법 및 자료 검토 등을 했었지만 그 누구도 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하지 못했어. 

 

피고 보조참가인으로 대형 로펌을 선임해서 소송에 참여한 삼성의 반격은 만만치 않았고, 어용학자를 이용한 거짓 비난과 반올림의 힘겨운 투쟁은 계속되었지. 1심 소송은 5명의 원고 중 고 황유미, 고 이숙영 님의 백혈병 사망을 산재로 인정한다는 판결(서울행정법원 2011. 6. 23. 선고 2010구합 1149 판결)이 선고되었어. 사무실에서 조마조마하게 선고를 기다리던 나는 결과를 듣고 환호성을 질렀지. 다 이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어. 근로복지공단은 항소했고 유족들과 노동자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지. 다시 3년여의 항소심 소송이 진행되었고 2014년 8월 21일 서울고등법원은 1심과 같은 판단을 했어(서울고등법원 2011누23995 판결). 정말 최초로,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이 산재로 확정되는 순간이었어. 그동안 소송을 담당했던 변호사들은 바뀌었지만, 너와 나, 그리고 김민호 노무사님은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무료 변론에 최선을 다했어. 나는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고, 산재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어. 반올림과 많은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의 적극적인 헌신과 노력, 연대가 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었겠지. 이후 한국의 직업병에 있어 가장 유의미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을 가져온 성과뿐만 아니라 2018년 8월부터 반도체 디스플레이 종사 노동자에게 발생한 8개 상병(백혈병, 다발성경화증, 재생불량성빈혈, 난소암, 뇌종양, 악성 림프종, 유방암, 폐암)을 일정한 조건에서 산재로 추정하는 지침을 만들어 내기도 했지. 무엇보다 무노조로 유명한 삼성의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과 합의를 끌어내는 성과가 있었지.

 

사진 제공_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그런데 여전히 직업병 특히 직업성 암 산재 사건에서 노동자들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어. 전문 조사라고 불리는 역학조사는 1년 이상이 소요되고 있고, 2년, 3년이 걸리는 경우도 많아. 반올림과 <한겨레>의 보도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되었지. 직업성 암 사건이 늘어나긴 했지만 4백 건도 되지 않아. 암환자 중 2~4퍼센트가 직업병으로 추정된다는 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터무니없이 적은 수치지. 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자신의 암이 산재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판결도, 사업주가 산재에 비협조하는 관행과 법률도 전혀 바뀌지 않았어. 

 

얼마 전 너는 산재법 시행령 별표 3 직업병 인정기준 개정 포럼에 민주노총 추천위원으로 참여한다고 내게 알려 왔지. 여전히 엄격하고 좁은 법령과 과학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직업환경 의사들의 완고한 태도, 노동부의 무성의와 경총의 반대에 휩싸여 고심하는 너를 보니 마음이 안 좋더라. 오래전 우리가 삼성 소송을 시작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산재 노동자들의 상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고, 직업병을 대하는 관료의 태도는 오히려 보수적으로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어. 그래도 부딪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질 수 없다고 나를 설득하는 그때 너의 모습은 한결같아 다행이야. 조금씩 지더라도 함께 가 보자. 그게 우리의 길인 것 같아. 나의 후배이자 동지, 이종란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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