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읽기

너 죽고 싶냐?

월간 작은책

view : 534

살아가는 이야기

감옥에서 온 편지(1)

 

너 죽고 싶냐?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가난의 도시》 저자

 


소지(사동에서 일하는 재소자)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눈을 떠 보니 감옥입니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잠시 달콤한 잠에 빠졌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모든 수용자는 곧바로 독방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몇 시간 전 판사는 판결문을 읽었습니다. 6명의 노점상 단체 간부들에게 최고 2년 그리고 저의 경우 1년과 각 형 3년 두 개로 총 1년 6월을 1심에서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들어왔습니다. 약 10년 전 사건입니다. 3년 가까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서울 강남 노점상 단속과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을 둘러싼 사건 그리고 동작구청 단속 사건입니다.

 

독방은 두 평 남짓 크기의 방입니다. 양팔을 벌리면 벽에 닿습니다. 가운데 정면으로 입구가 있고 천장 아래로 전등불이 24시간 지치지 않고 켜져 있습니다. 들락거리는 입구에는 가로 40센티미터 세로 20센티미터가량의 직사각형으로 뚫린 구멍이 있습니다. 식구통입니다. 이곳으로 밥과 반찬 그리고 식수 등이 들어옵니다. 2월 초라 아직 독방 안은 서늘하지만 의외로 바닥이 미지근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15년 전 마지막으로 출소할 때 난방공사가 시작되던 기억이 납니다.

 

오후 물 배급 시간입니다. 소지가 따뜻한 물통을 식구통에 밀어 넣어 주며 ‘지낼 만하냐’고 묻습니다. 젊고 앳된 얼굴의 재소자입니다. 법정 구속을 예상해 내복을 두껍게 입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들어왔는데 입감 절차에서 안경만 챙기고 겨울 관복과 담요 두 장만 지원받았습니다. 걱정을 많이 했지만 막상 독방에 들어오니 방 안이 따뜻해 잠시 놀랐습니다.

 

최인기 씨가 감옥에서 보내온 손 편지.

 

저의 감옥 생활은 1994년 여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게 시작이었습니다. 그 후로 들락거린 게 이번이 일곱 번째입니다. 당시만 해도 텔레비전은 물론 시계도 선풍기도 없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더위와 싸우며 버텨야 했습니다. 방에 볼펜 한 자루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식사는 보리 7, 쌀 3 정도의 비율로 지급되었으며 식사의 질도 지금과 비교하면 떨어져 김치는 별도로 사 먹어야 했습니다. 바닥에 배식포를 깔고 둥그렇게 앉아 머리를 조아리며 먹어야 했습니다. 그 후로 몇 차례 서울구치소를 들락거리며 느낀 것인데,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도 바뀌지 않고 영원불변일 듯한 수형 시설의 행정도 조금씩 변화되고 있었습니다. 각 사동별로 세탁장과 목욕 시설을 갖추어 가을부터 봄까지 10분씩 샤워를 하거나 빨래를 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소지가 식구통을 열고 지나간 신문을 넣어 주었습니다. 무료한 시간을 때우려 한참 코를 박고 읽다가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굴러다니는 칫솔에 치약을 발라 변기가 반짝반짝 윤이 나게 꼼꼼히 청소했습니다. 창틀을 닦고 방 구석구석 쓸고 닦기를 반복했습니다. 특이하게 화장실 옆에 ‘스킨답서스’가 무성하게 자라 천장 높이까지 솟아 있습니다. 2020년 4월부터 키우기 시작했다며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주라는 메모가 쓰여 있습니다. 어디선가 화초를 구해 방에서 키우기 시작한 듯합니다. 며칠 동안 방이 비어 있었는지 바짝 말라서 물을 듬뿍 적셔 주었습니다.

 

점검을 마치자 식사가 나왔습니다. 쌀밥과 고깃국입니다. 배불리 저녁을 해결했습니다. 신문을 마저 보고 법무부 마크가 찍혀 있는 담요를 한 장 깔고 푸른색 조끼를 속에 받쳐 입은 채 잠자리에 잠들었습니다. 감옥은 춥고 배고픈 곳이라는 인식과 다르게 첫날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른 시간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애써 잠을 청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전등 불빛이 거슬리기 시작했습니다. 시찰구로 교도관의 감시의 눈초리가 느껴집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답답함이 울컥 밀려옵니다. 담요를 밀치고, 벌떡 일어나 차가운 물로 세수를 했습니다. 정신을 차리려는 이유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화장실 문을 열고 찬 바람을 쐬었습니다. 건너편 사동의 불빛만 환히 눈에 들어올 뿐 우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습니다. 닫힌 문이 조여 오고, 천장이 내려앉는 느낌과 함께 불안감이 밀려옵니다. 이곳에서 영원히 나가지 못하고 죽을 거 같았습니다. 발로 문을 쿵쿵 치며 문 열어 달라고 외쳤습니다. 식구통에 손을 내밀고 교도관을 불렀습니다. 교도관은 폐방 시간이라 문을 열 수 없다고 합니다. 작은 박스를 오려 밥풀로 단단히 고정시켜 놓은 사물함을 뜯어 식구통 바깥으로 던지며 “살려 달라”고 외쳤습니다. 머리를 벽에 박으며 하소연하자 여럿이 달려오는 소리와 함께 감옥 문이 열리고 몇 사람이 저를 번쩍 들어 올려 복도로 끌고 나온 뒤 목을 누르고 손을 뒤로 한 채 수갑을 채웠습니다. 맨발로 끌려가는데 “CCTV는 목소리가 녹음이 안 돼.” 그러면서 “너 죽고 싶냐? 죽을래?”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동에 있는 사무실로 끌고 가 수갑을 푼 뒤 이번에는 손수건으로 팔을 감은 채 압박용 수갑을 다시 채운 뒤 목 쪽으로 끌어 올리자 팔이 끊어질 듯 고통스러운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잠시 후 야간 근무를 서는 교도관이 수갑을 풀게 하고 물을 한 컵 떠 주어 조금 진정이 되었습니다. 구치소에서 나눠 준 조끼가 찢어져 있고 겉옷도 찢어진 채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의무과에서 준 신경안정제로 보이는 약을 먹은 후 ‘안전방’이라 불리는 곳에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두 평가량 되는 방은 자해를 방지하기 위해 바닥과 벽이 푹신푹신하게 스펀지로 둘러쳐져 있고 화장실만 덩그러니 놓인 채 온통 밀폐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다음 날 ‘사실관계서’ 한 장과 신경안정제를 받아서 다시 저의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밤마다 공포감과 우울감이 밀려왔습니다. 영원히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또 순간순간 자신의 나약한 정신력에 대한 부끄러움과 수치심 때문에 매일매일 고통스러웠습니다. 의무과에서 준 노란색 알약을 먹고 새벽이 되어 겨우 잠들었습니다. 이렇게 일주일을 독방에서 보내고 여럿이 함께 생활하는 곳으로 전방 배치되었습니다.

 

열흘 만에 운동장에 나가서 30분 주어진 운동을 했습니다. 철조망이 둘러쳐진 담장 너머로 청계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랜만에 숨 쉬는 공기는 달았고 바람은 아직 찼지만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온 편지(2)_ 아들 접견이 취소됐다

https://www.sbook.co.kr/read?tpf=board/view&board_code=15&code=4124

 

#민주노련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가난의도시
#최인기작가
#노점상철거
#서울구치소
#작은책
#일하는사람들의글쓰기
#노동자글쓰기
#생활글
#작은책정기구독 신청 : https://www.sbook.co.kr/subscrip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자동입력방지 스팸방지를 위해 위쪽에 보이는 보안코드를 입력해주세요.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세요.

창닫기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