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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접견이 취소됐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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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감옥에서 온 편지(2)

 


아들 접견이 취소됐다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가난의 도시》 저자

 


서울구치소 운동장 양지쪽 담벼락에 민들레 싹이 눈에 띕니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나자 여러 가지 상념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번 징역은 조용히 독서하며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겠다는 다짐과 다르게 또 싸우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방에 돌아와 접견을 기다렸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백일 때부터 아빠 면회를 다녔던 아들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녀석이 초등학교 때 아빠의 부재로 마음의 상처가 컸을 거라 생각하면 항상 미안했지만 잘 커 줘서 고마웠습니다. 예정된 시각이 되어도 호출되지 않자 담당 교도관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습니다. 운동을 나가 접견이 취소되었다는 말만 되돌아왔습니다. 규정이 바뀌어 운동과 접견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빠를 만나러 서울구치소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갈 녀석을 떠올리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최인기 씨가 보낸 손 편지.

 

어떤 때는 한 주 내내 접견을 하느라 운동을 하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운동 중 교도관이 호출하면 접견을 병행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방 수용자에 따르면 코로나19로 많은 게 바뀌었다며, 또 교도관 인원이 감소된 것도 그 원인이라 합니다. 어쨌든 부당한 수용자 인권침해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더 있습니다. ‘지인 등록’을 한 사람만 책을 넣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서울구치소에 직접 와서 지인 등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술 작가 최현숙 님의 책도, 또 다른 지인의 책도 불허가 되었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불허된 책은 본인에게 되돌려진다는데 그 결과는 알 수 없거나 어떤 책은 도중에 분실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찾을 수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서울구치소나 교정 시설에 지인 등록을 하라는 말만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서너 달 지나고 시간이 흐르자 생각이 분명해졌습니다. 방 안에 붙어 있는 수용 생활 안내문에는 모든 수용자가 아플 때 담당 직원에 호소하면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되어 있지, 수갑을 채우고 폭언을 들으며 ‘안전방’에 수감된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일요일, 휴일을 제외하고 하루 30분씩 운동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 접견과 운동이 겹치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언급하고자 합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5월 하순에 접어들자 날씨가 급격히 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수용되어 있는 방은 14.27제곱미터입니다. 7명이 한 방에 모여 있습니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으면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설거지를 마치고 씻고 나면 5시 30분쯤 됩니다. 저처럼 편지를 쓰거나 책을 보거나 신문을 보거나 드라마에 빠져 각자 감옥의 오후 시간을 보냅니다. 오후 7시가 되면 이부자리를 깔고 취침 준비에 들어갑니다. 아마도 이 시각 바깥에서는 막 퇴근을 하거나 슬슬 누군가를 만나 술자리를 가질 텐데요. 감옥에서는 일찍부터 잠자리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최 사장이 어젯밤 있었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옆에서 자는 오리 형님과 새벽에 잠자리 문제를 두고 서로 다퉜다는 것입니다. 형님은, 새벽에 자꾸 최 사장이 자기 옆구리를 발로 걷어차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최 사장은 “좁은 감옥에서 그럴 수도 있지, 무슨 소리냐”며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흔히 있는 풍경입니다. 옆 사람 코 고는 소리는 당연한 거고 입에서 나는 단내까지 모두 감수하며 자야 합니다. ‘콩나물시루’라는 말이 바로 이런 상태입니다.

 

얼마 전 저녁 뉴스에서 교정 시설 실태에 대한 보도가 있었습니다. 폭행 사건 등 교정 사고가 매년 증가한다고 합니다.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폭행 사건 등 교정 사고가 2012년 373건에서 2021년 598건으로 늘었다 합니다.
한때 구속적부심, 보석 신청을 통해 도주 우려가 없으면 불구속 방식으로 재판하자는 사회적 여론이 있었으나, 검찰 출신 대통령이 되다 보니 무작정 일단 가둬 두고 보자는 거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재범의 위험과 증거인멸 위험이 높지 않아도 법정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치르게 되면 수용자 과밀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국가의 위법 행위로 이어집니다.

 

1인 최소 수용 면적은 2제곱미터입니다. 하지만 서울구치소 제가 있는 방의 크기는 14.27제곱미터입니다. 7명이 물품 관물대와 싱크대 그리고 화장실과 휴지통 면적이 차지한 곳에 촘촘히 모여 있는 셈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으로서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과밀한 공간에서 24시간 재판을 앞두고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결국 2016년 헌법재판소에서 “존엄과 인격권이 침해당했다”며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 후 대법원에서도 배상금 지급 판결을 내렸습니다.

 

올여름도 날씨가 무더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벌써부터 수용인은 과민해집니다. 강렬한 압박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물리적 현실과 환경 간의 거리를 만들기 위해 애씁니다. 어떤 이는 신문을 찢어서 스크랩을 하거나 좁은 방 안을 쓸고 닦기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또 화장실에 들어가 청소를 하거나 목욕을 합니다. 끝없이 뭔가를 만들거나 쉴 새 없이 떠들고 이야기하고 잠자고 그러다 사소한 일로 다투기를 반복합니다. 저는 독서를 하는 편인데 어느 땐 읽는 책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책장만 넘기며 의미 없는 책 읽기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설이 열악하지만 확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교도관도 피해자입니다. 이들도 긴장 상태에서 재소자와 충돌하는 경우가 늘어 2012년 43건에서 2021년 111건으로 교도관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인권침해를 둘러싸고 여러 차례 구치소를 상대로 면담 요청을 했습니다. 결국 교무과장 순시 때 항의를 했고 곧 기동대에 의해 다시 끌려가다시피 했습니다.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하고 공황장애를 호소했는데 환자에게 폭언과 폭행 수준으로 연행하다시피 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동 계장과 기동대 직원에게 운동과 접견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과 지인 등록자만 책을 넣을 수 있는 것을 집중적으로 따졌습니다. 비로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사과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이 수순에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다만 기타 구치소 처우 개선 건은 ‘국가인권위원회’와 ‘법무부 인권국’에 권리 구제 청원을 제출하면서 서울구치소와는 일단락을 지었습니다. 얼마 전 두 기관에서 접수증이 날아온 상태입니다. 이제 두 곳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볼 예정입니다.

 

독방에서 자라고 있던 ‘스킨답서스’ 몇 포기를 여럿이 수용되어 있는 이곳 혼거방에도 옮겨 심었습니다. 지난 2월과 3월에는 거의 죽어 가는가 싶더니 이제 조금 더 자라 푸른색이 짙어지고 활기를 찾는 듯합니다. 이번 주에는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습니다. 창가에 내놓으면 바람과 비를 맞아 푸르름을 더할 것입니다. 이건 시련이 아닐 것입니다. 바람과 비가 오히려 이들이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이 서울구치소 교도관 여러분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구보다 이들의 노고를 잘 알고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작은 변화의 노력으로 읽히길 바랍니다.

 

감옥에서 온 편지(1)_ 너 죽고 싶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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