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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루스처럼 세상을 떠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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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루스처럼 세상을 떠난 선생님

권동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공인노무사

 


존경하는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 위원님들에게 마지막 의견 진술을 드리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 사건 재해자 고 서울 선생님은 경기과학고등학교에 근무하던 중 육종암, 정확히는 유윙씨 육종이라는 희귀암으로 2020년 7월 29일 사망하였습니다. 이후 그의 사망에 대해 인사혁신처는 지난 2023년 4월 공무상 재해로 승인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이 사건 심사청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대리인인 저 또한 1983년생인 고인이 3D프린터에서 나온 발암물질로 사망했다는 직접적이고 명확한 증거가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위원님들도 잘 아시다시피 이와 관련된 연구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에서도 이러한 특수성을 반영해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보낸 바 있습니다. 그 의의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역학조사와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에서는 인과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인과성, 즉 과학적인 인과관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공무상 재해에 있어 인과성은 법률적 인과성에 근거한 판단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위원님들도 인지하다시피 공무상 재해든, 업무상 재해든 질병과의 상당인과관계를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습니다. 그 상당인과관계는 의학적인 관련성보다 넓은 개념일 뿐만 아니라 보험제도의 취지상 명백하고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법원은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무상 재해 판결에 있어 대법원은 소방관의 소뇌위축증 판결(대법원 2017. 9. 21. 선고 2017두47878 판결)에서 ‘소뇌위축증은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현대의학에서 소뇌위축증의 발병 원인을 명확하게 찾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유전이나 대사질환, 독성물질이나 유해화학물질의 흡입 등과 같은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라고 설시한 후 소방관의 열악하고 유해한 환경이라는 요인으로부터 추정하여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또한 이 사건 상병과 유사한 혈관육종에 대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서울고등법원 2019. 9. 19. 선고 2017누42349 판결)에서도 ‘혈관육종은 매우 드물어 매우 희귀한 질환으로서 그 발생 원인이 불분명하여 유전적, 환경적으로 여러 요인이 추정될 뿐이고 소방관 직종에서 특별히 혈관육종의 발생 확률이 높다고 볼 만한 객관적으로 유의미한 통계자료는 없다’고 하면서도 염화비닐 등 유해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하여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이런 판결의 영향으로 2020년 9월 인사혁신처에서 김영국 소방관의 혈관육종을 공무상 질병으로 승인한 바 있습니다. 

 

존경하는 위원님들도 아시다시피 첨단산업에서 유해물질과 특정 상병과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증명 책임을 당사자인 재해 공무원에게 돌리는 것은 매우 부당합니다. 정부에서 ‘무한상상실’이라고 하여 지원하였고, 3D프린터의 유해성을 전혀 알려 주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밤낮으로 연구하면서 온몸으로 유해물질을 흡입할 수밖에 없었던 고인에게 과연 증명 책임을 돌리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요. 

 

고인이 얼마나 노력하는 교사였는지, 그의 블로그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고인의 블로그를 보면, ‘2013년 이후 창조경제, 메이커 교육 확산과 함께 3D프린터는 급격히 학교를 비롯 우리 주변으로 들어왔다. 그 가운데 나도 3D프린터를 들고 여기저기 다니며 학생들과 체험활동 부스도 운영하며 확산에 작게나마 기여했다. 내게 3D프린터는 내가 머릿속에 상상한 것들을 뚝딱 만들어 주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장난감이었고,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동고동락하다시피 하며 엄청나게 많이 사용했다.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괜찮겠지 하고 마음 편히 생각하며 도깨비방망이를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보호구나 환기 시설, 안전교육도 없었고, 무려 5대를 동시에 가동하면서 학생들에게 열과 성의를 다한 그에게 과연 책임이 있는 것인가요. 학교에서 시간이 부족해 집에서도 3D프린터를 돌린 그에게 교사로서 자질과 능력을 탓할 수 있는 것인가요. 과연 정부에서 단 한 번이라도 3D프린터에서 벤젠, 에틸벤젠, 스틸렌, 포름알데히드 등 각종 발암물질과 용접 작업 시보다 많은 나노입자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려 준 적이 있었던가요.

 

다시 돌아가 저는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의 판단이 법원의 상당인과관계 판단 기준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법원(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은 이미 ‘첨단산업분야에서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 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 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 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고 서울 선생님은 사망 당시 37세에 불과했습니다. 고인의 죽음에 대한 많은 언론보도와 공무상 재해 신청 이후 학교 현장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국회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이제는 유해성에 대한 인식을 하고 조금씩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3D프린터의 유해성이 많이 알려져 이제 학교 현장에 가 보면 국소 배기장치를 설시한 곳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의 안타까운 사망이 학생들과 교사들의 안전을 위한 고귀한 희생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고인은 분당경영고 재직 시 과학 동아리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3D프린터와 로봇을 이용해서 꿈과 상상력을 찾아 주기 위해 노력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 동아리 이름이 바로 ‘이카루스(Icarus)’입니다. 이카루스는 밀납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에 다가가려고 하다가 추락해서 사망한 그리스 신화 속 인물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또한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학생들을 지도하고 더 좋은 교육을 위해 창의적으로 열심히 노력한 고귀한 희생을 우리 사회가 이제는 수용해야 합니다. 그 길은 바로 공무원재해보상제도라는 틀 안에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최종 진술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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