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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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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감옥에서 온 편지(3)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가난의 도시》 저자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번개가 치자 푸른색 용으로 온몸을 감싼 ‘용’이 벌떡 일어나 고쳐 앉습니다. 평소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라 천둥번개가 무서운가 봅니다. 호랑이도 낮잠을 자다가 깨어나 “야, 창문이나 다시 달자.”라고 한마디 합니다. 텔레비전에서는 하루 종일 태풍 소식이 들려옵니다. 맨날 싸우는 게 일상인 사람들이 태풍 앞에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가 싶더니 창문을 거꾸로 잘못 끼워 넣었다고 아웅다웅 책임을 떠넘기며 또 다툽니다. 평범한 감옥의 풍경입니다.

 

빗방울이 거칠어지자 오늘 오전 운동 시간이 취소되었습니다. 다들 짜증이 오르는가 봅니다. 호랑이가 좁은 방 안을 어슬렁거리고 용이 창틀을 잡고 오르락내리락하며 하늘을 원망합니다. 그러다 천둥번개가 치니 잠시 조용해집니다. 석이 씨는 킁킁거리며 틱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면 호랑이와 용이 갈구기 시작합니다. 답답하고 짜증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쳐 버리겠다는 겁니다.

 

석이 씨는 감각이 남들보다 뒤처지는데 귀가 아주 밝습니다. 하루 종일 수면제에 취해 자면서도 누군가 사탕을 깨물면 눈을 번쩍 뜹니다. 접견 오는 사람이 없고 영치금도 떨어져 얻어먹는 편인데 귀 밝은 건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라고 사람들이 놀립니다. 한번은 새벽에 관물대에서 우유를 꺼내 들고 빨대를 꽂아 슬그머니 먹는다는 게 그만 ‘쪽’ 하고 마지막 빠는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자 석이 씨가 벌떡 일어나 두리번거리다가 뒤돌아 누워서 다시 코를 골며 잠이 듭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데, 그의 코골이는 옆방에서도 항의가 들어올 정도로 굉장합니다. 언젠가는 방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코 고는 소리 때문에 감방 생활 적응이 안 된다, 평생 징역을 살았지만 이런 코골이는 처음 본다며, 전방 조치 해야 한다고 난리가 난 적이 있습니다. 담당 교도관조차도 저런 코골이는 별도의 수용시설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가 또 예산 타령하며 어쩔 수 없다고 그냥 참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며 달랩니다.

 

물론 나와 오리 형님은 그를 다른 방으로 쫓아 버리려는 음모에 반대 의견을 들고 나섰습니다. 특히 서울역 광장에서 생활하시는 오리 형님은 이러면 안 된다, 고생하는 사람끼리 ‘동병상련’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며 적극 반대했지만, 사실은 오리 형님도 그에 못지않은 코골이입니다. 석이 씨와 오리 형님 두 사람 다 합을 맞춘 듯 새벽녘에 동시에 코를 골기 시작하면 나머지 방 사람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멍하니 앉았거나 이들을 흔들어 깨우는 등 한바탕 또 소란스러워집니다.

지난번 글에 이곳 방 크기가 14.27제곱미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화장실과 물건을 쌓아 놓는 관물대 자리와 설거지하는 싱크대를 제외하면 실제 크기는 더 줄어듭니다. 1인 최소 수용 면적이 2제곱미터이고 다섯 명이 정원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수용 인원이 8명으로 늘었습니다. 자다가 눈을 떠 보면 호랑이, 용 등이 뒤엉켜 자고 있습니다. 도망갈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막다른 곳입니다. 우리 방은 우울증·공황장애 등으로 약을 먹는 수용 방인데 언제 폭발할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석이 씨처럼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은 타깃이 되어 사람들의 갈굼을 당하거나 스트레스 해소 대상이 됩니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그 빌미를 석이 씨의 틱 반응이나 코골이로 돌리기 때문이며 나아가 사소한 행위조차 따지고 책임을 묻습니다. 연고자가 없는 석이 씨에게 접견물과 구매물을 나눠 주며 그에게 혜택을 베푼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좁은 우리 속에서 벌어지는 일상입니다만, 저는 이를 석이 씨와 그를 괴롭히는 사람들 탓으로만 돌리고 싶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최근 벌어지는 ‘묻지마’ 폭행과 사회로 확대해 보면 어떨까요? 경쟁적인 사회 속에 미래를 알 수 없는 세상이라고 합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고령화 사회, 어렸을 때부터 왕따와 학교폭력에 시달리며 자라는 아이들, 누군가를 괴롭히고 그걸 통해 행복을 느끼는 사회라면 그건 감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디든 개인의 책임만 묻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구조를 바꿔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맨날 반복적으로 하는 추상적이고 교훈적인 말이지만 달리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이제 점심 식사 시간입니다. 오늘도 사발면입니다. 며칠 전 서울구치소에서 식중독이 발생해 몇백 명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저녁 뉴스 보도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설문조사를 한다며 야단법석을 떠는 것 같습니다. 큰 사건이라면 큰 사건일 텐데요. 게다가 폭염으로 운동 시간도 제한되고 이제 태풍 영향으로 또 제약받게 합니다. 어쩔 수 없지요. 감옥인데요. 감수해야겠죠. 하지만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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