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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죽어도 나와야 하는 직업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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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부모가 죽어도 나와야 하는 직업

이용덕/ 택배노동자

 

택배 한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2년 동안 소장이 세 번 바뀌었는데, 처음에 같이 일한 소장은 택배는 부모가 죽어도 나와야 하는 직업이라고 했다. 아파도 쉴 수 없었다. 여름에는 비 오듯 땀을 흘려 항문이 허는 날이 많았다. 겨울에는 빙판이 진 언덕길을 오르다 여러 번 미끄러져 다치기도 했다.

 

동료들은 3년 전 코로나가 터진 후 물량이 30퍼센트 정도 늘었다고 했다. 늘어난 물량을 감당하느라 늦게까지 일하는 기사들이 많았다. 안 힘든 택배가 어디 있을까마는 구역에 따라 차이가 꽤 많이 나는데, 내가 맡은 구역은 소위 ‘C급지’라 불리는 구역으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밀집 지역이다.

 

승강기가 없는 빌라 배송 풍경. ‘택배 배달 의자에 놔주세요’라고 적혀있다. 사진 제공_ 이용덕

 

물량이 적은 월요일과 토요일을 제외하면 하루 300개 이상의 택배 물품을 싣고 나가야 했는데, 밤 9시 이전에 끝나는 날이 거의 없었다. 일을 처음 배울 때는 새벽 두세 시까지 일하곤 했다. ‘까대기’라 불리는 분류작업은 아침 7시부터 시작된다. 물량이 많을 때는 까대기가 오후 1시나 2시에 끝났다. ‘2시 출차는 살인’이라는 말도 있는데, 짐을 다 싣고 오후 1시나 2시에 첫 배송을 시작하면 숨 돌릴 틈도 없다. 쉬지 않고 일해도 밤 9시 이전에 끝내긴 어렵다.

더군다나 내가 일하는 택배사는 ‘똥짐’이 많기로 유명한데, 똥짐이 많은 날엔 배송이 두 배로 힘들다. 부피가 크고 무거운 짐을 ‘똥짐’이라 부르는데 똥짐의 종류는 다양하다. 쌀, 감자, 옥수수, 양파 등 농산물이 있고 반찬 가게, 배달 가게, 음식점에서 시키는 그릇이나 용기가 있다. 여름에도 농산물이 많지만 11월엔 특히 농산물이 많아서, 하루에 쌀이 30~40박스 이상 온다. 명절에도 부피가 크고 무거운 각종 선물 세트가 많이 온다.

 

배달할 물건들이 택배 차량에 쌓여있다. 사진 제공_ 이용덕

 

노동자들은 당일 배송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당일 배송을 하지 못하고 배송을 미루는 걸 ‘재운다’고 하는데 물량이 많은 날이나 똥짐이 많은 날에는 다 싣지 못하니 재우는 물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재우지 않으면 효율이 너무 떨어져 재우기도 한다. 차도 올라가지 못하는 산동네 빌라 5층을 매일 가면 시간이 너무 걸리니까 이틀 치를 모아서 배송한다. 

당일 배송 좋은 거 누가 몰라요? 그런데 내가 못 견디겠는 걸 어떻게 합니까? 같이 일하는 태원이의 하소연이다. 원청에서 수시로 지표를 보여 준다. 전략 고객사 물건을 당일 배송하지 않으면 기사가 1000원을 물어내야 한다. 이 압박이 기사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분명 있다. 재우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재워야 하는 물건이 있어도 재우지 못하고 최대한 많이 싣고 나가야 한다. 

 

배고픔을 참아 가며 일해야 하는 많은 직업 중의 하나가 택배다. 점심 혹은 저녁을 챙겨 먹는 기사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기사들은 굶고 일한다. 정 참을 수 없으면 김밥이나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는데 그 시간조차 아까울 때가 많다. 배송 물량이 많은 기사는 9시 이전에 배송을 끝내기 위해, 배송 물량은 적지만 집하를 해야 하는 기사는 집하 시간 때문에 시간에 쫓긴다.

지난 설 때 물량이 하도 많아 새벽 1시까지 일했다. 국밥집에 배송을 갔는데, 그 시간에 주인이 국밥 한 그릇을 포장해 줬다. 집에 와서 허겁지겁 먹다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비슷한 경험은 꽤 많다. 직접 구운 빵과 과일을 문 앞에 놓고 새벽 3시까지 기다려 주던 고객이 있었다. 아이스박스를 너무 늦게 배송해 미안하다고 했는데, 이제라도 와 줘서 고맙다고 했다. 하루 12~13시간, 아니 1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버티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배려와 존중, 격려… 그것만으로 계속 버틸 수는 없다.

 

한 주민이 건네 준 비타민 음료와 물. 사진 제공_ 이용덕

 

심야 배송 금지라는 이유로 밤 9시 이후에 완료 스캔을 찍을 수 없다. 미리 완료를 누르고 배송을 이어 가는데 고객들의 전화가 빗발친다. 완료 문자는 들어왔는데 물건이 어디 있냐고. 일일이 설명하는 기사들도 있지만 너무 신경이 쓰여 아예 핸드폰 꺼 놓고 배송하는 기사들도 있다. 영수 형님은 자기들(원청) 빠져나갈 구멍만 만들어 놓았다고 했다. 구역이 너무 넓고 물량이 많아 심야 배송을 할 수밖에 없는 기사들이 많은데 인원 충원과 노동조건 개선 같은 근본 대책보다는 전산 막아 놓는 걸로 면피를 하려고 한다.

 

끼니를 거르고 일하다 보니 위장병이 생겼다. 저녁 7시나 8시쯤 배송을 하러 간 집에서 된장찌개, 김치찌개 냄새를 맡으면 너무 괴롭다. 참고 일한 후 집에 와서 폭식을 하니 위장에 탈이 났다. 기사들은 근골격계 질환은 기본이고 위장병, 심혈관계 질환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린다.

 

그래도 돈은 많이 벌지 않느냐고 묻는 고객들도 있다. 현우는 그런 고객에게 가장 많이 번 달의 수수료 내역서를 보여 준다고 했다. 이렇게 벌 수는 있는데 골병들 각오는 하라는 말을 꼭 덧붙인다고 했다. 

건당 수수료는 택배사마다 다르고 같은 택배사라 하더라도 구역에 따라 다 다르다. 내가 일하는 구역은 ‘C급지’라 건당 수수료가 900원이다. B급지는 850원이다. 6000개를 배송하면 540만 원이다. 주 6일 근무에다 연월차는 말할 것도 없고 휴가도 하루 없이 아파도 쉬지 못하면서 뼈 빠지게 일하며 받는 수수료다. 더군다나 이건 매출이지 수익이 아니다. 540만 원에서 소장이 10퍼센트를 떼어 간다. 부가가치세, 종합소득세, 보험료, 기름값, 차량 할부금, 식비 등을 제외해야 한다. 하루 1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생각하면 시간당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수준의 월급(수수료)을 받는 셈이다.

언론에선 연봉 1억을 버는 기사들이 많다고 하지만 허상이다. 아내나 아들과 함께 배송하고 집하도 아주 많이 해서 1억을 버는 기사가 있기야 하겠지만 대다수 기사들의 상황과는 아주 거리가 먼 얘기다.

정부나 사장들은 우리 보고 사장이라고 하는데 아무런 권리도 없는 사장이 있을까? 물량과 구역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수수료도 내 맘대로 정할 수 없다. 쉴 수도 없다. 원청의 물량을 원청의 지시대로 배송해야 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일 뿐이다.

 

2020년 22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숨졌다. 2020년 10월 12일 한진택배 동대문지사에서 근무하던 36살 김모 씨가 자택에서 쓰러져 숨졌는데, 그가 동료들에게 보낸 문자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어제도 집에 도착 (새벽) 2시, 오늘 5시”

아무리 생각해도 택배노동자의 노동시간은 너무나 길다. 하루 1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 무리한 욕심일까?

 

긴 연휴가 끝나고 물량이 산더미처럼 쏟아지고 있다. 어제 390개, 오늘 380개. 많이 재웠는데 재운 물건이 자다가 깰지도 모르겠다. 서로 이틀만 버텨 보자고 하는데, 이번 일요일과 월요일도 연휴, 다음 주까지 후폭풍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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