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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는 처음이라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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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는 처음이라

조이든

 


 19살. 대안학교를 다닌 나는 남들보다 1년 일찍 졸업을 했다. ‘용돈을 벌어야겠다.’ 내 인생 첫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집에서 가까운 한 중국집 홀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남의 돈 벌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엄청난 충격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메뉴 이름들과, 뜨겁고 무거운 짬뽕 그릇, 손님의 컴플레인, 잦은 실수에 보이는 눈치, 또 마감 때 할 건 왜 이리 많은지….

 녹초가 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이게 맞나? 정말 모두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건가? 이렇게 매일매일을 보내면 한 달은 버틸 수 있을까?’ 나약한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끔찍하게 다가왔다.

 

 출근 3일째 되는 날. 아직 메뉴도 못 외웠고, 포스기도 못 다루고, 진상 손님을 응대하는 법도 모르는데 손님들은 들이닥쳤다. 그날은 주말이라 주문이 평소보다 훨씬 많았고 그만큼 바빴다. 나는 우왕좌왕하기 일쑤였고 같이 일하는 오빠들은 내가 많이 답답했는지 날카로운 말투로 내게 말을 하곤 했다. 그 말들이 가슴에 콕콕 박혀 어찌나 아프던지, 굳게 먹은 마음은 금세 말랑말랑해져서 툭 치면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몇 번 울음을 삼키다가 어느새 퇴근할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울적한 마음으로 집에 가고 싶지는 않아서 근처 호수 공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지금 나의 상태와는 반대로 오월의 초록빛이 가득한 공원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벤치에 앉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오늘 있었던 일들을 마구 쏟아 냈고, 역시나 얼마 못 가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전화를 끊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날 좋은 주말 오후의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고, 나뭇잎은 바람에 흔들리고, 호수의 물결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모든 것의 중심엔 흘러감이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 흐름에 몸을 맡기기로 다짐했다. 시간이 다 해결해 주겠지. 더 먼 곳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지, 후회와 미련 같은 단어들과는 멀어져야지. 이미 시작한 거 뭐 어쩌겠어, 잘해 보자!

 

 나는 내 엄마뻘 되는 매니저님과 20살 대학생 오빠, 주방 이모와 아저씨들, 월급은 제때 꼬박꼬박 주지만 성격은 조금 더러운 사장 밑에서 일했다. 그리고 돈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장은 평소에는 푸근한 미소를 보이며 친절하게 말을 걸어 왔지만, 자기가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별것도 아닌 걸로 언성을 높였다. 나는 그런 것들에 도통 무뎌지질 못했는데, 그에게 한 소리 듣거나 실수를 해서 꽁해 있을 때면 매니저님은 언제나 장난스럽게 귓속말을 해 왔다. “어우~ 또 지랄이야~.” 그러면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기 마련이었다. 그녀에겐 어떤 상황이든지 시트콤으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능청스러움과 노련함에 많이 기대어 일을 했다.

 

 

 

 역시 시간이 약이던가, 사장의 짜증도 한 귀로 흘릴 줄 알게 되었고, 더 이상 짬뽕 그릇이 뜨겁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몇 달은 더 다닐 수 있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 때쯤 첫 월급이 들어왔다. 최저시급이었지만, 백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받았다. 내 통장에 그렇게나 큰 숫자가 찍혀 본 적은 없었는데, 정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숫자였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일 뿐이었다. 오빠에게 빌린 돈을 갚고(5개월 할부였다), 새 핸드폰을 장만하고(당연히 중고, 이것도 할부), 텅 비어 있던 옷장을 채우고, 가고 싶었던 공연을 예매하고, 친구들이랑 약속을 잡으니 저금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 통장은 어느새 다시 ‘텅장’이 되었다.

 

 노동하고 돈을 번다는 것. 인생의 쓴맛을 경험했지만 달콤한 맛도 보았다. 고마운 친구에게 밥 한 끼 사 줄 수 있었고, 생일 선물로 마음을 전할 수도 있었다. 가끔은 서점에서 산 새 책에 밑줄을 쫙쫙 그으며 읽었고, 좋아하는 가수를 보러 매주 홍대에 공연을 보러 가는 사치도 부렸다. 이렇게 수많은 행복의 값을 지불했다. 울적한 마음으로 퇴근하는 날이 많아도, 주말만을 바라보며 버텼다.

 

 그렇게 5개월 정도를 일했다. 매일같이 걷는 출퇴근길, 수십 번 올랐던 계단, 누구보다 자주 보는 사람들과 익숙한 기름 쩐내. 그 모든 것들이 지겨워질 때쯤 내 마음은 이미 한계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고, 내 마음만큼 피부도 많이 연약했는지 손에는 습진을 달고 사는 중이었다. 지난여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첫 알바를 그만뒀다.

 단순히 돈을 벌고 쓰는 것만이 아닌, 그 과정에 있던 수많은 시간들이 생각난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보고, 느끼고…. 그 속에서 나는 온전히 나로서 존재했다.

 

 해 보니 알겠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 매일 출근길이 즐겁진 않더라도 퇴근할 때 ‘이 일 하기 정말 잘했다.’라는 생각이 하루라도 든다면. 그런 일을 찾는다면 나는 행운아가 아닐 리 없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려면 계속해서 수많은 노동을 해야겠지. 그리고 이 경험은 나에게 아주 좋은 굳은살이 되어 줄 것이다. 모든 노동은 헛되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또 새기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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