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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항로만 가면 아픈 까닭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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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항로만 가면 아픈 까닭

이현진/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항공운항과를 나와 1997년 말부터 대한항공 인턴으로 시작, 거의 25년 넘게 일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승무원이라고 하면 유니폼 입고 예쁘게 서비스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사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업무가 너무나 많습니다. 카트에는 승객들 식사가 담긴 식판이 채워져 있습니다. 한 카트를 혼자서 서비스하게 되면 112번 허리를 완전히 숙였다 세웠다 해야 합니다. 한정된 공간에 비행기 이륙부터 도착까지 필요한 물건을 다 실어야 하기 때문에 구석까지 물건이 들어차 있습니다. 음료도 드리고 면세품 판매도 하고요. 그런 것들을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써야 하니까 목부터 발목까지 안 아픈 곳이 없어요.

 

 승객 머리 위 짐칸도 이착륙 시에는 완전히 닫아야 합니다. 짐칸뿐만 아니라 좌석 위, 바닥도 보안 때문에 승객 탑승 전후로 위험 물질 등 수상한 물건들이 없는지 확인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비행기 기종도 다양해서 어떤 승객들이 있는지, 알아 놔야 할 것들, 점검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전날부터 확인하고 수백 가지 물건들을 체크해야 합니다. 그게 끝나야 승객들이 탑승할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이현진 씨가 지난 1월 31일 열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기념 《일하다 아픈 여자들》 북토크에 패널로 참석해 항공 승무원의 노동을 증언하고 있다. 사진_ 백승호

 

 저희가 2010년 무렵부터 북극 항공노선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승무원들이 “나는 왜 북극만 오면 머리가 아프지?”, “나는 왜 허리가 아프지?” 말합니다. 평상시에는 아프지 않다가 북극항로만 가면 아픈 승무원들이 있는 게 참 신기하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10년 넘게 북극항로를 운행하면서 산재 인정 사례 난 거 보고서야 북극지방은 우주방사선량이 너무 많아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저희 신입 때는 오로라를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에 기장님들이 구경하고 싶은 사람은 들어와서 보라고 해서 구경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오로라가 방사선덩어리라고 하더라구요…. 오로라 여행 상품도 있지만 매일 그 구간을 다녀야 하는 저희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데 그 누구도 저희한테 그런 걸 알려 주지 않았어요. ‘회사가 비용 절감한다고 북극항로 지나가는데 우리한테는 방사선 영향 미미하대.’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우주방사선은 북극항로뿐만 아니라 모든 노선에 영향을 미치는데 똑같은 노선이어도 북극항로로 가느냐, 가지 않느냐에 따라 피폭량이 3배까지도 차이가 납니다. 2021년 우주방사선 안전 관리가 원자력안전위원회로 넘어가면서 노동조합의 노력 끝에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이 승무원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제정되었습니다(원자력안전위원회가 항공 승무원 건강진단, 안전관리 교육, 항공 사업자 정기 검사 등 안전관리 업무 전담). 저희가 제출한 피폭선량 자료를 보면 유독 대한항공 승무원이 피폭량 최고치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예상치일뿐, 법이 제정되고 나서야 실측 장비가 항공기에 탑재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사용하는 피폭선량 예상 프로그램은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1.4배 이상 적게 예상하기 때문에 실측이 꼭 필요합니다.

 

이현진 씨가 2022년 10월 4일 국회 앞에서 항공승무직 직업성 암 발병 고위험군을 알리고 산재 예방을 주장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_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최초로 우주방사선 산재를 인정받은 친구가 저하고 팀이었던 후배였는데, 백혈병으로 죽고 나서야 산재 승인을 정말 힘겹게 받았어요. 2021년 공공운수노조에서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119 운동’ 할 때 후배의 죽음이 가슴에 남았는지 승무원 중에 숨어 있는 환자들 찾기를 준비했습니다. 비행을 가면 ‘나 오늘 같이 비행한 승무원이 자궁암이었는데 수술받고 3개월 있다가 휴직을 할 수가 없어서 복귀했다더라. 그런데 너무 힘들다더라. 누구는 무슨 암이었는데 복직해서 근무를 하는데 너무 힘들다더라. 그만둬야 할지 생각해야 되겠다더라.’ 이런 이야기들을 진짜 많이 들었어요. 유방암, 피부암, 백혈병 외에도 여러 가지 병이 있었어요. 나한테 언제 어떻게 영향이 미칠지 모르기 때문에 많이 알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유방암 발병 사실을 알게 됐어요. 2022년 7월경에 첫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저희 부모님께는 말씀을 못 드렸어요. 저한테는 딸이 둘이 있는데 처음에 병원 가면 물어보는 게 가족력이 있냐는 겁니다. 딸들에게는 제 암이 가족력이 될 수 있어요. 특히나 여성 암은…. 딸들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많이 힘듭니다.

 

교섭대표노조는 2023년도 임금협상에서 3.5퍼센트 인상을 요구했고 조원태 회장은 연봉이 50퍼센트 뛰었다. 임금협상 잠정합의안 폐기 요구 시위를 하는 이현진 씨와 동료들.

 

 노동조합을 통해 산재 신청을 결정했어요. 그때 저희 가족들은 ‘너무 희망을 갖지 마라, 그러다가 실망하면 오히려 너만 망가질 것 같으니까 희망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라’고 걱정했어요. 오히려 주변 지인들은 응원을 많이 해 줬는데 산재 신청이 쉬운 게 아니라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후에 산재 승인 판정서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기존에 우주방사선 요인으로 승인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위원들은 우주방사선은 빼고 교대근무에 대한 것만 인정했거든요.

 

 암 발병으로 퇴사하신 분들도, 돌아가신 분들도 많습니다. 대한항공에서 객실 승무원들에게만 병가 대체휴가라는 게 있습니다. 저희는 휴가는 물론 휴일에도 쉴 수 없기 때문에 공휴일을 더해서 연간 대체휴가가 나오는데요, 10년 이상 근무한 승무원들은 휴가가 100일 이상 쌓입니다. 그러다가 몸이 아프면 병가 대체휴가를 쓰는데 진단서를 내고 자기 휴가를 써서 쉬는 거예요. 승무원들에게는 병휴직을 1년 이상 못 하게 합니다. 1년 이상 휴직을 하게 되면 ‘너 그러면 사직해야 돼.’ 회사에서 압박하거든요. 그래서 요양을 제대로 못 해서 퇴직하시거나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현진 씨가 지난 1월 31일 열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기념 《일하다 아픈 여자들》 북토크에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사진_ 백승호

 

 2021년 그 후배의 산재 승인 후 1년 반 만에 5명이 더 산재 인정을 받았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작업환경이 조금씩 개선될 때마다 내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많이 위로받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사회에 많이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합니다. 회사도 이 문제를 알게끔, 느끼게끔 해야 하는 게 저희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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