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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하는 세상으로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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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연대하는 세상으로

마혜진/ 고 마채진 님의 유가족

 

여름이 시작되던 6월, 아빠는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던 중 원인불명으로 추락한 1.2톤의 리프트에 깔려 돌아가셨다. 사람들은 이 죽음을 산업재해 사망사고라고 부른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추락, 협착, 매몰 등으로 인한 산업재해 사고는 안전장치와 관리자가 부재한 현장의 노동자들에게만 발생한다. 나는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의 유가족 마혜진이다.

 

솔직히 말해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그다지 해 보지 않았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평범한 가정으로 보이기 위해 우리 가족 또한 적당한 불화는 묻어 두고 적당한 화목으로 포장해 살았는데, 뜯어보면 아빠는 생각보다 더 무뚝뚝했고, 술을 무척 좋아했으며 그 때문에 엄마 속을 어지간히도 썩였다. 아빠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난 후 엄마와 아빠의 싸움은 잦아졌으며 우리는 더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항상 일을 나간다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봐도 가타부타 설명이 없어서. 대화는 줄어들었고 아빠는 항상 술에 취해 귀가했다.

 

그래도 우리는 나름 화목했다. 아빠가 새벽같이 출근하고 엄마가 직장을 옮기고 언니와 내가 취직하면서 더 큰 집으로 이사했고 저녁 식탁에 종종 다 같이 앉아 집에서 술 한잔 마시는 아빠에게 애정 어린 핀잔을 늘어놓기도 했다. 전보다는 관계가 살가워졌지만 나는 더 이상 아빠의 직업란을 적어 내는 나이가 아닌지라 그냥 ‘전기 다루는 일’을 한다는 생각만 할 뿐 물어보지 않았다. 위험한 일은 아니라고. 그렇게 나는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29년을 함께 살았다.

 

사고 당일도 그랬다. 주말을 맞아 여행하던 중 아빠의 부고를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아빠가 왜?’였다. 우리 아빠 주말에 시골 간다고 했는데 갑자기 왜? 대체 왜?

 

장례 첫날, 아빠의 빈소에 들어갔을 때, 한국건설 사장이 조문 왔을 때, 아빠가 건설 현장에서 혼자 일하다 사고가 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둘째 날, 사고 현장에 아무도 없어서 정확한 사고 시간이나 사망 시각을 알지 못해 아빠를 부검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조차도 나는 아빠가 어떤 하늘 아래서 땀을 흘렸는지, 어떤 옷을 입고 마지막 밥을 먹었는지, 어떤 땅을 딛고 정확히 무슨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건지 모르고 있었다. 정신없이 울고 장례를 치르고 아빠의 뜨거웠던 유골함을 봉안당에 모신 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장례 비용이 정산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한국건설 측에서 결제하기로 했는데요.’ ‘사측이 연락 두절입니다.’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우리는 아빠를 보내고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서로의 슬픔을 어루만질 시간도 없이 사고 유가족이 되어 아빠의 죽음에 얽힌 여러 난제를 풀기 위해 길거리에 나서야 했다.

 

빈소에 놓인 고 마채진 님의 영정 사진. 사진 제공_ 마혜진

 

문제는 방법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어떻게 하지? 세 모녀와 사위가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지인을 통해, 직장 동료를 통해, 친구를 통해, 누군가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했다. 처음 연락이 닿은 곳은 임인자 감독님과 정의당(현 녹색정의당) 문정은 위원장님이었다. 이어 우리는 전국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와 민주노총 광주본부로 찾아갔다. 상황을 풀어놓자 깊은 위로와 함께 지금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하는지, 산업재해 사고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려 주셨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가장 큰 문제는 안전관리자의 부재와 2인 1조 원칙 무시, 즉 그곳에 아빠 혼자였다는 점이었다.

 

찾아보니 2023년 6월 13일 화요일에 사업지 관할구청에서 승강기 사용 점검이 예정돼 있었고, 이 일정을 맞추기 위해 현장에서 아빠에게 급하게 화물용 리프트 자동화 설치를 요구한 것으로 생각됐다. 실제로 1차 하청업체(충전엔지니어링) 이한준 사장과 ‘이미 일정이 있어서 13일 전까지는 작업이 어렵다’고 통화한 내용이 아빠 핸드폰에 녹음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결국 홀로 2023년 6월 11일 일요일에 작업을 하러 간 것을 보면 위에서 빠른 작업을 강력히 요구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2인 1조 원칙은 지켜질 리 만무했다.

 

2023년 6월 11일 리프트가 추락해 사망한 고 마채진 님의 사고 현장. 사진 제공_ 마혜진

 

며칠 동안 정신없이 여러 사람을 만나고 통화하고 상황을 전달하고 정리하는 와중에도 한국건설은 여전히 연락 두절이었고 결국 일주일이 지나 우리 가족은 장례 비용을 결제하러 다시 식장에 갔다.

 

KBS 7시 뉴스에서 취재 방송을 내보내고, 뉴스1, 한겨레, 전남일보, 매일노동뉴스 등 여러 신문사에서 기사를 쓰고 ‘광주 봉선동 한국아델리움펜트하우스, 한국건설’이라는 정확한 이름이 거론되자 한국건설 측에서 겨우 연락을 취해 왔다. 우리 유가족이 아니라 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에게.

 

고 마채진 님의 두 딸 마혜진(왼쪽), 마혜운(오른쪽) 씨가 2023년 7월 11일 한국건설 본사 앞에서 시위하는 모습.

 

고용노동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수사 촉구를 외치고 광역중대재해수사과의 근로감독관과 면담을 가졌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2인 1조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잖아요.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안전관리자 부재가 문제가 되잖아요. 승강기안전관리법에 따르면 파손된 렉이 사고의 원인일 수 있잖아요. 어디에 어떻게 중점을 두고 수사하고 있는건가요. 여러 질문을 했지만 우리가 제출한 진정서조차 읽지 않은 과장이 면담에 참여하여 ‘수사 과정의 구체적인 내용은 말해 줄 수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사건의 개요는커녕 노동자의 부당한 죽음, 유족의 슬픔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태도였다. 분명히 진실을 밝히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리라 신뢰했던 국가기관에서 이토록 불성실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고 마채진 님 유가족과 지역 시민단체 및 진보정당은 2023년 7월 6일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책임자인 한국건설 처벌을 요구했다. 사진 제공_ 마혜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1차 현장 감식을 진행하고 원청(한국건설)과 하청(충전엔지니어링) 직원들이 서로 이유를 모르겠다며 리프트가 절대 떨어질 일이 없다고 (바닥까지 추락해 사람이 그 사이에 끼어 사망했음에도) 책임을 떠넘기며 모르는 체하는 동안 그 누구도 우리 유가족에게 먼저 다가와 추모의 마음을 표한 이는 없었다. 그렇게 아빠가 돌아가시고 30일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원청과 하청으로부터 ‘죄송합니다.’라는 사과도, 노동청으로부터 ‘반드시 정확하게 규명하겠습니다.’라는 확신도, 그 누구에게서도 ‘책임지겠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계속되는 소극적인 태도에 답답한 건 피해자뿐이었다.

 

그 사이 광주전남노동안전보건지킴이 김선양 선생님과 전남노동권익센터장 문길주 선생님 등 노동자의 안전과 권리를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 주시는 분들을 만났고 이분들 덕에 다시 한번 힘을 내어 1인시위를 시작했다. 출근 시간과 점심시간에 1시간씩 1인시위를 했다. 한 여성분이 “힘내세요.”라며 빵과 우유를 직접 전해 주셨다. SNS에 글을 올리고 공론화했다. 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KBS ‘출발 무등의 아침’에서 사건을 보도하고 여러 신문사에서 계속해서 기사를 냈다. 시위 4일째, 여전히 모두가 묵묵부답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많은 분들이 슬픔에 공감해 주고 연대하여 목소리를 내 주고 같이 싸워 주고 있다는 사실에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2023년 7월 18일, 아빠가 돌아가시고 38일이 지나서야 한국건설이 사과문을 게시했다.

 

처음에는 법도 사람도 그 무엇도 아빠를 지켜 주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다지만 아빠의 사고가 광주에서 처음으로 적용되는 사례였고 실제로 원청 대표에게 실형이 구형된 사례는 당시 한국제강의 1심 사례 하나뿐이었기에 어떻게 일을 처리해 나가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어려움 속에서 먼저 연대의 손을 내밀고 기꺼이 함께하겠다고 말씀해 주신 분들이 있었다. 모든 과정에 아파하고 슬퍼하고 공감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 가족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관리자가 현장을 이탈하지 않고 사고 현장을 빨리 발견했다면, 아빠가 2시간 동안 혼자서 외롭진 않았을 텐데.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해서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면, 지금쯤 아빠가 손녀를 안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2023년 6월 11일부터 지금까지 항상 가슴 한쪽에 남아 우리 가족을 눈물짓게 만든다. 그리고 하루에 6명의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는 대한민국에서 또 다른 가족들이 나와 같은 슬픔을 느끼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든 그들을 위로하고 힘과 도움이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준상 국장님, 임인자 감독님, 문정은 위원장님, 김선양 선생님, 문길주 센터장님, 박영민 노무사님, 정석진 국장님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화내고 슬퍼해 준 지인들과 평범한 시민분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고, 공정한 조사와 함께 책임자를 합당하게 처벌해 달라 말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처럼 안전사고를 예방하자고 촉구하는 것은 절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안전한 노동환경 구축’이라는 공공의 가치를 위해 다 같이 투쟁한다면 이 세상은 분명히 어제보다는 조금 더 안전해질 것이다. 늘 그렇듯, 누구나 그렇듯,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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