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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누구나 아프면 쉴 권리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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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일하는 누구나 아프면 쉴 권리

이유미/ 전 서울시사회복지법인 보육사,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준) 회원

 


저는 서울시 산하 사회복지법인 시설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사로 일했습니다. 오래 근무한 것은 아니었지만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 곁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사랑도 주고 돌보는 직업이 좋았습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작년 여름, 유방암 3기 말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암 선고였지만, 서둘러 암 제거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현재도 병원에 통원하면서 방사선 치료 중입니다.

 

항암 7차 치료를 받을 당시 이유미 씨. 사진 제공_ 이유미

 

멍울이 만져졌을 때 바로 ‘이거 암이겠구나.’라는 느낌이 들어, 시설에 연락하여 병원 진료를 위해 출근을 못 할 것 같고, 서울시 사회복지시설 종사자에게 ‘유급병가’제도가 있다는 것을 지인을 통해 알게 되어, 혹시나 심각한 결과가 나오면 병가를 내야 할 것 같다고 시설장에게 말하였습니다.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유급병가제도>를 안내한 문서에 따르면, ‘연 60일 범위 내에서 병가를 사용할 수 있고, 입원이나 수술, 통원 치료 등 사유 발생 시 진단서를 시설에 제출하면 시설장 승인을 거쳐 사용’하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또 ‘출근이 불가능할 정도의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어렵다고 인정될 때 시설장 승인하에 사용할 수 있도록’ 안내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설장은 “아프다고 병가를 내면 어떻게 하냐”, “우리 시설은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하였고, 심지어 ”정말 이기적인 것 아니냐”, “지금까지 병가 낸 사람이 하나도 없고, 우리는 병가가 없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유방암 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하고 바로 조직검사에 들어간 다음 출근을 했을 때 처음 보는 법인 팀장이 시설에 와 있었고, 면담을 하자고 했습니다. 어떤 질병인지 조직검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법인 팀장은 질병으로 인한 권고사직으로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좀 더 안정적이고 근무 환경이 좋던 직장에서 일하다가 더 힘든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법인이라 선택했는데, 정작 사람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전혀 없는 말과 행동에 기가 막혔습니다. 우선은 수술과 치료가 급해서 공공운수노동조합에 상담과 도움을 받아 무급병가를 얻어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 시설은 지금까지 근무 형태로 인한 시간외수당, 국정 공휴일 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사회복지사(보육사)들과 시설장 사이에 문제와 다툼이 많았고, 그로 인해 두세 달 동안 2명이 그만두고 제가 입사하였습니다. 저도 근로계약서의 내용 중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 시설장에게 물었더니 시간외수당, 공휴일 등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5인 미만 시설로 법인에서 따로 나오는 작업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복지를 실천하는 시설에서 복지를 없애기 위해 거짓으로 분리 작업을 하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지인을 통해 공공운수노동조합에 가입했습니다.

 

시설과 대화가 되지 않아서 노조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노조에서 저를 대신해 서울시 지원의 유급병가를 위해 서울시 담당자 및 시설장과 몇 개월 소통하였지만, 서울시는 유급병가를 신청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시설장의 승인으로 시설에 책임을 전가하였고, 시설장은 시설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이유를 들며 끝내 유급병가를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암 수술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법인 팀장과 시설장이 제게 연락하였으나 면회가 전혀 안 되어 퇴원하는 날 병원으로 찾아왔습니다. 한 달 무급병가가 있으니 서류에 서명을 해야 한다고서는 서류는 보여 주지 않고 또 퇴사를 종용하고 화만 내다가 갔습니다. 이후 노조에서 법인 팀장과 시설장을 만나 지속적으로 병가, 유급병가와 휴직 등을 요구하였고 2023년 2월 23일 6개월 휴직이 끝난 후 퇴사 건도 노조에서 시설과 대화하면서 실무적인 것들을 도와주었습니다. 항암 중에도 시설장은 전화와 문자, SNS 등으로 사람을 괴롭혔기에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었으나 직접적인 대화는 노조에서 해 주었습니다.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준)은 지난 3월 19일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하는 누구나 아프면 쉴 권리 보장하라”며 모두를 위한 상병수당제도 실시를 촉구했다. 맨 왼쪽이 이유미 씨. 사진 제공_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준)

 

법인은 크지만 시설은 4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동료들은 제가 노조에 가입했다는 것에 대해 어이가 없다고 했으며, 왜 노조에서 병가, 휴직, 퇴사 등의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냐, 노조가 뭔데 이 일에 참견하냐는 등 저와 노조가 상식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영세 근로자나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입원 및 검진 기간 동안 못 번 생활비나 수당을 지급하는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 제도가 있다고 하였는데 기준이 중위소득 100퍼센트 이하의 소득 기준(207만 7892원)이라, 저는 그것보다 조금 더 받는다는 이유로 자격 조건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암 선고 이후 조금의 보장도 받지 못하고 결국 퇴사하였지만,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성격으로 암 수술과 항암 과정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잘 지나왔습니다. 그럼에도 항암제가 너무나 독하고 부작용으로 음식들을 제대로 먹을 수 없고 신체의 기능들을 망가뜨리니까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머리와 마음은 멀쩡한데 나의 몸은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없고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상태인 것 같은데 몸이 너무 허약해져 있으니, 내가 오늘을 넘길 수 있을까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프랑스에서 살고 있어 이렇게 혼자 있다가 마지막 인사도 못 하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고 아픈 것도 미안했습니다. 아픈 것 자체가 신체적으로 너무 힘들어 도움도 필요하고 병원 치료비에 경비, 생활비까지 하나의 문제가 많은 문제들을 야기했습니다. 직장을 못 다니니 급여가 전혀 없었기에 청약저축 했던 것을 해약해서 치료비와 생활비로 쓰고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형제자매가 주위에 살고 있어서 그나마 돌봄을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옆에서 돌봐줄 가족이 한 명도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요? 최근에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다 끝났습니다. 가족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여기에 유급병가까지 있었다면 이 사회에 얼마나 더 감사했을까요? 저는 지금까지 긴 세월 동안 다양한 공부를 해왔습니다. 앞으로 남은 삶을 조금이라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전문 분야에서 사회복지계로 옮겨 왔는데, 몇 세기에 살고 있는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저는 항암과 방사선 치료보다 부작용이 더 무서운 것을 봅니다. 운동기능은 예전에 비해 10퍼센트 정도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때까지 휴양하고 암 진단 전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병에 걸릴 수 있고, 아플 수 있습니다. 아프면 눈치 보지 않고 또 생계를 걱정할 필요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치료를 받은 후 직장으로 복귀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업주가 승낙하지 않아도, 최소한 국가가 일하다 아픈 사람들을 차별 없이 보호하기 위해 법으로 유급병가제도를 강제하고, 상병수당을 의무적으로 지급하여 아픈 사람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치료받고 복귀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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